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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운 Aug 23. 2021

조작_액상 펜잘의 기억은 조작되었는가

조작(造作)  

[명사]

1. 어떤 일을 사실인 듯이 꾸며 만듦.

2. 진짜를 본떠서 가짜를 만듦. 또는 그렇게 만든 물건.

3. 지어서 만듦.

[유의어] 왜곡1, 제작2, 허구2

출처: 네이버어학사전


다시 방 안이었다. 숨통이 조여 온다. 벽의 이곳저곳을 두드려도 보고, 커튼을 젖혀도 봤지만 그럴싸한 도구도, 나갈 길도 보이지 않는다. 망치? 이런 도구는 대개 쓸모가 없다. 숫자 갖고 푸는 퍼즐이 나오면, 망설임 없이 게임 창을 닫았다. 깊이 생각하기 귀찮다.


마지막 겨울방학인척 생각해봐도 이건 백수생활 시작이다. 이제 대학원 2학년 2학기를 마쳤고 나를 받아주는 곳은 없으며 곧 서른이다. 1년 반 전 회사를 관두고 학생으로 돌아갈 때 모두 각오했던 일이지만 이력서를 한 번 쓸 때마다 감정이 널뛰었다. 자꾸만 밤낮이 바뀌어갔다. 구글에서 room escape game을 쳐서 나오는 이런 저런 방 탈출 게임을 하면 창밖으로 동이 텄다. 눈이 뻑뻑해질 때쯤이면 그나마 잠이 좀 왔다, 지독한 불쾌함과 함께.


불면증은 꼭 두통과 함께 온다. 타이레놀에서 펜잘로, 종목을 바꾸자 좀 더 효과가 좋았다. 그나마도 먹는 양과 빈도가 점점 늘어, 동네 약국에서 날 알아보는 것 같아 서너 곳을 돌며 사오게 됐다.


“액상이 더 잘 들어요.”

성의 없는 말투라서 어쩐지 더 안심되는 약사였다. 클림트의 ‘키스,’ 진통제와 딱히 어울리는 그림도 아닌 것 같은데 그때 펜잘 포장은 샛노란 바탕에 클림트의 키스 그림이 인쇄돼있었다. 엄지손가락보다 살짝 더 긴 길이의 액상 펜잘 병에도 같은 그림이 있었다.


쭉 들이켜니 심장이 느리게 뛰는 듯 기분이 들며, 아주 빠르게 관자놀이의 통증이 옅어졌다. 머리가 안 아픈 건 좋은데, 살짝 무섭다. ‘액상이라 빠른가...’


이건 2010년쯤의 기억이고, 가끔 생각이 나서 ‘액상 펜잘,’ ‘펜잘 시럽’ 따위를 검색해봐도 내 기억 속 클림트의 키스 병은 나오지 않는다. 액상 펜잘의 기억은 조작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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