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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나 Nov 26. 2018

새 학교 새 미션!

- 우리가 뛰어넘어야 할 것들

<달려라 우리 딸!>  


캘리포니아의 강렬한 태양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곳, 바로 학교 체육시간이다. 이곳에선 체육을 PE(Physical Education)이라 부른다. 뉴욕에선 학교마다 실내체육관이 있어서 비 오거나 눈이 오거나 덥거나 추울 때면 아쌀한 에어컨 바람 맞으며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운동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 와 보니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중학교엔 실내체육관이 없는 것이다. 덕분에 아이들은 햇빛을 실컷 쬐며 야외 잔디밭에서 열심히 뛰어다닌다. 캘리포니아 아이들이 거무스름하게 그을린 이유가 다 있는 것. 땡볕에서 열심히 뛰어다녀야 하는 것부터가 우리 아이들에게는 미션으로 다가왔다. 특히 우리 큰아이가 중학교에 가면서부터는 미션이 아니라 악몽으로 바뀌기 시작했으니, 무서운 여자 체육 선생님이 버티고 있는 데다가 달리기를 많이 시키기로 소문난 중학교였던 것이다. 누군가가 선생님 심기를 거스르면 기합으로 달리기를 무지막지하게 시킨다, 달리기를 잘하는 애들만 편애한다, 선생님이 너무 싫다 등등 학교만 마치고 오면 체육에 대한 불평이 입에 걸려 있었고 체육 때문에 학교 가기 싫다던 아이.. 아침에 학교 가기 전에 엄마가 뭘 기도해 줄까 하면 늘 “PE”라고 말하던 아이가 1년을 어찌어찌 버티어 냈다.

그런데 그 1년이 지나는 사이에 아이는 점점 달라지기 시작했다. 고전하던 1마일은 어느덧 가뿐히 달리게 되고, 어느 날엔 집에서 팔굽혀펴기를 보여주는데 17번을 해내는 게 아닌가. 나는 한 번도 제대로 하기 힘든 것을 말이다. 다만 달리기만이 아니라 볼링, 탁구, 발리볼, 농구, 하키 등 여러 스포츠들을 조금씩이나마 다양하게 배울 수 있음도 좋았다. 집에 있기를 좋아하고 운동을 게을리하던 이 아이가 단련받고 강하게 훈련받을 수 있는 학교를 만나게 되었음이 이젠 감사함으로 다가왔다. 새로 들어온 7학년들이 체육 시간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어느덧 여유 있게 바라보는 8학년이 된 우리 딸, 잘 버티어주어서 장하다.


1학년 때 전학을 온 작은 아이는 그래도 어린 나이에 왔기에 더 무난하게 새 학교 새 환경에 적응할 수 있으리라 기대를 했다. 그러나 이 아이에게도 운동이 과제. 이곳 아이들은 대체로 수영을 잘하고 야외에서 뛰어노는 것에 능숙하기 때문에 운동을 별로 안 좋아하는 우리 아이들에겐 제일 도전이 되는 부분이다. 큰아이가 학교에서 달리기로 고전하였다면, 둘째에게는 달리기 행사가 그러했다. 매년 오렌지카운티에는 초등학교들이 연합하여 참가하는 OC Run이라는 행사가 있다. 이 대회에 참가하기 원하는 학생들은 매주 금요일마다 게임처럼 달리기 연습을 한 뒤에 실전으로 1마일을 달리게 되는데, 아이들과 재미있게 달리기를 연습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같아서 다른 친구들과 함께 우리 아이도 참가 신청을 하게 되었다. 매주 연습에 꾸준히 참여한 후 드디어 대회 당일날이 되어서 여러 학교 아이들과 함께 달리기 경주에 나선 우리 둘째. 스타트를 힘차게 끊고 출발했건만 이상하게도 다른 애들은 다 들어오는데 우리 아이만 들어오지 않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온갖 불길한 상상을 애써 떨치며 한참을 지켜보았더니 어느 친구와 얘기하며 걸어서 들어오는 모습이 보이는 게 아닌가. 힘드니까 뛰다가 걷다가 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완주했기에 메달을 목에 건 아이는 그것도 힘들었는지 다음 해는 쉬고 2년에 한 번씩 참가하겠다고 한다. 그래, 그래도 포기하지 않은 게 장하다. 흥미를 잃지 않도록 너의 속도대로 한번 가보자꾸나.



   

 <말해라 우리 딸!>  


이전에 다니던 뉴욕의 공립 초등학교에는 영어 점수에 ‘Listening/Speaking’ 영역이 따로 있었다. 그만큼 잘 듣고 잘 말하기는 중요한 영어 능력에 속했다. 타고나기를 수줍음쟁이로 났는지, 우리 큰아이는 항상 그 말하기 부분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고, 선생님과 컨퍼런스를 할 때면 늘 너무 조용하다는 지적을 받곤 했다. 그럴 때면 걱정도 되고 속도 상했지만, 한편으로 나 자신을 떠올려보게 되었다. 나 또한 어릴 때 얼마나 수줍음이 많았던지, 누가 들을까 엄마 귀에만 속삭이던 어린시절을 보내지 않았던가. 우리 남편은 늘 우리 아이들이 날 닮아서 그렇다고 한다. 그래, 뭐 인정하자. 그랬던 나도 지금 이렇게 타국에서 어찌어찌 용케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나 또한 그랬기에 우리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고 또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리라 믿는다.

큰아이는 오히려 중학교에 가면서 더 나아진 것 같다. 말하기 영역의 점수가 따로 없어서 그 부분을 지적받지 않아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이제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다른 과제나 공부는 스스로 잘 감당하고 있어서 한결 걱정이 놓였다. 이렇게 말을 안하다가는 중학교 가서 정말 힘들어질 거라며 “She can be lost in the middle school”이라 경고했던 3학년 담임 선생님의 예언(?)대로 되지 않아서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물론 아이는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법을 더 터득해 나가면서 발표하는 데 있어서 자신감을 더 가져야 할 것이다.


큰아이와 다를 것 같았던 까불이 작은 아이도 이곳 학교에 와서 프레젠테이션 숙제를 만나자 말 한마디를 못하는 것이었다. 이 학교는 특히 발표 과제가 많아서 전학 온 첫해부터 커다란 도전이 되었다. 오자마자 감당했던 첫 번째 숙제는 결국 입을 열지 않아서 비디오 녹화로 대신했다. 두 번째 발표 때도 입을 열지 않자 선생님이 아이디어를 내주어서 한 번은 아이들이 다 다른 곳을 보고 우리 애만 혼자서 책상에 앉아 발표를 시켜 보기도 하고, 내가 참관하여 옆에서 격려해 주기도 하였으나 끝끝내 입을 열지 않아 참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그랬던 아이가 마침내 입을 열기 시작하여 발표를 해내더니 여러 번 횟수를 거치면서 이제는 발표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으니 할렐루야! 다만 조금 더 큰소리로 발표하면 되겠다며 연습을 거듭하는 아이가 기특하기만 하다.


아이들이 이처럼 새로운 과제들과 부딪혀 고전하면서도 적응해 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함께 안타까워하면서도 또 함께 기뻐하고 감사하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가? 뉴욕이든 캘리포니아이든 어떻게든 부딪히며 살아가야 하기에 절실하게 다가오는 나의 미션은, 바로 영어...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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