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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나 Jun 28. 2020

나의 첫 학생과 마주하다

미국 특수교육에 대한 첫인상


미국 고등학교에서 처음 마주한 나의 학생은, 휠체어에 앉아 있는 여학생이었다.

검은 머리의 동양인이었던 그 아이는, 희한하게도 나와 성도 같았다. 부모님이 한국인이었던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아이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몸을 움직이는 것도 여의치 않았기에 시간마다 화장실 침대에 눕혀 기저귀를 갈아주고, 혼자 먹을 수 없었기에 튜브를 통해 물과 분유를 공급해줘야 했다.


학습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그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책을 읽어주고, 밖에 산책을 나가고, 음악을 들려주며, 아트 활동을 하도록 붓을 손에 쥐어주고 같이 손을 움직여 준다거나 장난감을 손에 들려주는 일 등이었다. 말로 가르치기보다는, 육체적으로 돌봐주는 일이었으니, 어찌 보면 간병인과도 같은 역할이었다.  

내가 기대했던 일은 아니었지만, 한편으로 안심도 되었다. 내 부족한 영어로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도와줄까 긴장 잔뜩 하고 들어왔는데, 사실 나에게 딱 맞는 일이었던 것 같다. 일도 빠르게 익힐 수 있었고, 학생을 돌봐주면서 이 학교의 특수교육 수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눈치껏 배울 수 있었으니까.


우리 학교의 특수 학급은 세 교실로 이루어져 있는데, 우리 반은 그중에서도 중증 장애 학생들이 속해 있었다. 학생은 다섯 명이었고, 담당 선생님 한 명에 나와 같은 보조 교사들이 학생들을 한 명씩 맡고 있었다. 자폐, 청각 장애 학생 중에서 내가 맡은 학생이 장애 정도가 제일 심한 편이었다. 그 여학생의 오빠 또한 같은 장애를 가지고 있었으니, 참 안타까웠다. 그 남학생은 지난해에 졸업했지만, 동생과 같이 일 년 더 다니게 해 달라는 부모의 부탁으로 다닐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쉽지 않은 부탁인데, 학교에서 수용해 주었다는 것도 너그럽게 느껴졌다.


미국에서 처음 특수교육을 접하는 내게는, 중증 장애가 있을지라도 일반 미국 고등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것이 참 좋게 여겨졌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 학교에 특수 학급이라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학교에서는 두 남매를 위해 스쿨버스를 따로 집 앞까지 보내 주었고, 등교 시간도 혼잡한 시간을 피해서 다른 학생들보다 늦게 오고 일찍 가는 스케줄로 배정해 주었다. 가끔 호흡 곤란이 찾아오는 남학생을 위해 담당 간호사가 학교, 스쿨버스, 그 어디서나 늘 함께 다니도록 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 각각에 맞춰서 학습 목표를 정해 주고, 매일 일정량의 학습지를 풀면서 공부를 도와주고, 정기적으로 스피치 교육을 받게 했다. 내가 맡은 학생에게는 버튼을 눌러 인사말이 나오게 하거나 선풍기 또는 빛이 나오게 하는 버튼 놀이를 하거나 책을 읽어 주는 등 해 줄 수 있는 교육은 제한적이었지만, 학생들의 상태에 맞춰서 학교에서 노력해 준다는 점이 좋았다.


사실 학교가 학생들에게 더욱 신경을 쓰고 학부모들의 요구에 너그러울 수 있는 이면에는 ‘소송’이라는 것도 일부 작용할 수 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학교의 잘못된 처우가 느껴지면 법적 소송을 걸며 큰 액수의 보상을 요구하는 일부 학부모들이 있기 때문에 학교로서도 더욱 신경을 쓰고 조심을 하는 부분도 있다는 것이다. 학교도 학생을 함부로 대하면 안 되겠지만, 소송을 미끼로 함부로 선생님들을 대한다는 학부모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적도 있다. 이렇게 소송이 악용되면 안 되겠지만,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영향을 미친다면야 뭐. (직접 당해 보지 않아서일까? ^^;)


아무튼 처음 미국 학교에서 특수교육을 접하게 된 내게는, 일반 학교에서 특수교육이 활성화되어 있고, 장애의 정도에 상관없이 학생들에게 활짝 열려 있다는 점이 참 긍정적으로 보였다. 언어의 능통성이 부족한 나에게도 취업의 문을 활짝 열어준 것을 포함해서 말이다. 이곳에 내가 있음을 늘 감지덕지 감사하며, 학교에서의 시간은 너그러이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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