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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나 Jan 20. 2021

알고 보니 꿈의 직장?!

점점 마음에 쏙 들어오는 두 번째 학교

미국 고등학교 특수교육 부서의 자율학습실. 종이 울리면 학생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모여 앉는다. 담당 선생님의 간단한 조회가 끝나면 우리  IA(Instructional Assistant)들은 자리를 돌아다니면서 학생들의 출석 체크를 하고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본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면 그 학생 옆에 앉아서 숙제 또는 공부를 도와주면 된다. 그런데 학생들이 다 도움이 필요 없다고 고개를 저으면? 대략 난감. 처음의 내 모습이었다. 


그들의 공부를 도와줄 만큼 실력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생들과 얼굴을 트는 것도 중요했다. 학생이 싫다고 거부하면 억지로 도와줄 수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 부분이 내겐 쉽지 않았다. 덩치도 커다란 고등학생들이, 게다가 영어는 나보다 훨씬 유창하여 그 아이들이 빠른 속도로 말을 하면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 것도 내겐 벅찼기 때문이다. 하기야, 악센트 있는 영어 발음의, 그것도 처음 보는 동양인 여자에게 나 도와달라고 말하기도 쉽지 않았으리라. 더욱이 이곳엔 수학을 도와줄 수 있는 실력자들이 벌써 포진해 있었다. 전직 수학교사에, 오랜 경험의 IA까지. 휴우, 내가 설 자리가 불안해 보였다. IA들 사이에선 학생을 확보하는 경쟁이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정 도와줄 학생이 없으면 빈자리에 앉아 수학 교과서를 펼치고 공부를 해도 괜찮다는 것이었다. 마음 편한 것은, 그렇다고 눈치를 주는 선생님이 없다는 것이다. 공부를 하는 것도 일로 간주되다니, 그 점은 정말 감사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공부만 할 수는 없는 법. 어떻게든 학생들 마음을 비집고 들어가 공부를 도와주고 싶었다. 이리하여 내가 터득한 방법은 그냥 그 앞에 앉는 것이다. 문제 푸는 것을 지켜보면서 잘못 풀 때마다 이렇게 하면 된다고 팁을 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 학생이 내 가르침을 받아들이면, 그다음은 한결 쉬워졌다. 다음 시간에 그 학생 앞에 앉아서 숙제가 뭐냐고 물어보고 자연스레 도와주는 것이다. 


그중 내게 특별한 인연으로 다가온 여학생이 있었다. 얼굴이 까무잡잡하고 히잡을 둘러쓴 10학년 여학생이었는데, 인사를 나누다 보니 내가 지난해 근무했던 고등학교에서 전학을 왔다고 했다. 그 공통점을 계기로 해서 반갑게 말을 주고받으니 그 학생은 내게 선뜻 수학을 도와달라고 했고, 나는 기쁘게 도와주었다. 그 뒤로 우리는 더욱 친해졌고, 나중엔 점심시간에도 찾아와 내 옆에 앉아 점심을 먹으며 수학 도움을 받았다. F에 가까웠던 수학 점수가 나중엔 A까지 올라오는 것을 보며, 우린 함께 기뻐했다. 사실 겉으로는 별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여학생이어서 왜 특수교육 서비스를 받을까 의문이었는데, 혹시 상처가 될까 직접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내게 인공심장 배터리 교체 수술을 받아야 해서 학교를 며칠 빠져야 한다는 말을 듣고서야 그 아이의 아픔을 알게 되었다.  

 그 뒤로 그 학생이 내겐 더욱 애틋해졌다. 친구가 없던 그 학생에게 말벗이 되어 주고 공부를 비롯한 여러 도움도 줄 수 있어서 나 또한 정말 감사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내게 정말 큰 보람이자 격려가 되었다.  


그 친구 말고도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며 도와줄 수 있는 손길을 늘려갈 수 있었다. 고등학교 수학을 새롭게 공부하는 것도 즐거웠고, 나의 지식으로 학생들을 도와줄 수 있어서 참 뿌듯했다. 비록 영어 실력의 한계를 실감하곤 했지만, 그럼에도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건 참 근사한 일이었다. 이곳에 있으면서 고등학교의 여러 행사들을 참관할 기회가 주어지고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자유롭고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은 보너스였다.  


처음에 이곳에 발을 들였을 땐 얼마나 겁을 먹었던가. 그때 도망가지 않고 더 참고 용기를 냈던 게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내게 새롭게 열린 이곳이 나는 점점 더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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