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소나 Feb 27. 2022

우리 집 털북숭이 막내

미국에서 강아지 키우기

큰애가 뉴욕에서 초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무렵, 피아노를 배우러 다니던 선생님 집에 하얀 마티즈 암수가 있었는데, 어느 날 레슨을 가 보니 식구가 늘어 있었다. 어미개가 강아지 새끼들을 낳은 것이었다. 새끼들이 올망졸망 어찌나 예쁘던지, 아이는 강아지의 매력에 폭 빠져 버렸다. 

그때부터 강아지 갖고 싶다는 노랫가락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더니, 생일 때마다 갖고 싶은 선물로 강아지를 꼽았다. 하지만 나로선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두 아이 키우는 것만도 내게는 벅찬데, 손 많이 가는 애완동물은 미안하지만 노 땡큐. 

그때만 해도 토들러였던 둘째가 어느덧 세 살이 되고, 언니 따라 강아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더니 이젠 합창이 되어 버린 아이들 소원을 마냥 무시하기만도 힘들었다. 아이들 생일이 다가오면서 또다시 생일선물 위시리스트로 강아지가 등장하자 나는 타협을 시도했다. 

“미안해, 강아지는 우리가 키우기 힘들어. 대신 햄스터나 기니피그는 어때? 정말 귀엽던데.”

기니피그를 키우는 집에 놀러 갈 때마다 예뻐했던 터라, 타협은 어렵지 않았다. 


드디어 생일선물 사러 가는 날, 아이들 아빠를 대동하고 애완동물 샵을 갔다. 그날따라 종류가 많지 않고 회색 햄스터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남편이 하는 말. 

“이 햄스터는 쥐같이 느껴져서 좀 그런데... 그냥 강아지를 사 주지. 애들도 저리 원하는데.” 

그러더니 차를 돌려서 애견샵으로 직행하는 거다. 그런 그를 말릴 수 없어서 마지못해 따라갔다. 우선 구경이라도 해보자 했는데, 마침 애견샵에 작고 귀여운 강아지 삼총사가 눈에 띄었다. 마티즈, 요크셔테리어(줄여서 ‘요키’), 시추. 그중 눈망울이 예쁜 요키가 큰아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애로 할래요!”

모든 일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나는 끝까지 반대하려 했지만, 이미 기울어진 민심을 막을 수가 없었다. 결국 아이들에게 가장 비싼 생일선물이 안겨졌다. 


-      복덩어리가 아니라 일 덩어리잖아


이리하여 우리 집에 들어온 털북숭이 새 식구. 두 달밖에 안 된, 엄마 품을 막 떨어진 녀석이어서 측은하기도 했다. 큰아이에게 작명권을 주었더니, “She is cute~” 귀엽다며 ‘큐티’(cutie)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1파운드 될까 말까 할 정도로 작고 앙증맞은 큐티는 정말 강아지 인형처럼 귀여웠다. 하지만 똥오줌을 아무 데나 싸고, 이가 가려운지 자꾸 물려고 하고, 밤에는 낑낑대니 고생길이 훤했다. 다른 건 조금씩 가닥이 잡혀 갔지만, 배변 훈련은 쉽지 않았다. 배변 패드에 성공해서 기뻐하다가도 어느 순간 오줌 웅덩이가 바닥에 고여 있고. 모르고 밟기라도 하면 일은 더 많아졌으니 하루하루 힘들었다. 


처음부터 내가 원한 게 아니었고, 아이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이 새 식구가 나는 영 부담스러웠다. 귀엽긴 하지만, 안 그래도 할 일이 많은데 강아지까지 신경을 써야 하니.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나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은데, 누군가 나를 애처롭게 쳐다보는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애써 그 눈빛을 외면하며 외출할 때면 왠지 마음에 죄책감마저 드는 것이다. 에휴, 이 녀석을 어쩌면 좋단 말인고. 


어느 날, 그 강아지와 단둘이 있는데, 문득 내 마음에 이 강아지는 ‘선물’이란 생각이 섬광처럼 떠올랐다.  그래, 아이들에겐 생일선물이었지. 그런데 내게도 선물이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나에게도 선물이라고?


문득 내 처음 애완동물이 생각났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를 마치고 정문을 나서는데, 아저씨가 박스 안에 병아리들을 잔뜩 담고서 학교 앞에 진 치고 있었다. 삐약대는 귀여운 병아리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용돈 탈탈 털어 두 마리를 사 왔다. 엄마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겁도 없이 덜컥 말이다. 다행히 엄마는 새 식구를 맞이해 주어, 박스에 신문지를 깔아서 집을 마련해 주셨다. 

그때 나는 얼마나 좋아했던지, 그 아이들을 먹이기 위해 근처 시장에 가서 배춧잎 등을 주워 오는 수고를 기쁘게 감당했다. 한 녀석은 일찍 세상을 떴지만, 한 녀석은 애지중지 잘 키워서 닭이 되기 바로 전인 약병아리 단계까지 건강히 자랐다. 

그러나 부모님은 더 이상 키우기 힘들다고 모진 결정을 하셨다. 결국 그 아이는 삼계탕이 되어서 우리 집 식탁에 올라왔다. 너무 슬펐던 나는 당연히 입도 대지 않았다. 비록 결말은 새드 엔딩이었지만, 짧은 기간이나마 그 병아리를 키우면서 1학년 꼬마가 얼마나 행복했던지 지금도 기억에 새록새록 남아 있다.  


그리고 내 인생에 다시는 애완동물이 없었다. 더 이상 가녀린 생명 때문에 울고 웃는 일도 없었다. 그러다 아이들에게 떠밀려 강아지 한 마리가 다시 찾아온 것이다. 이번엔 그리 기쁘지 않았고,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어릴 적 병아리 한 마리로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즐거워하던 그 꼬마는 어느덧 장성하여, 애완동물을 일감으로 바라보는 현실 엄마가 되고 말았다. 마치 눈이 펑펑 내릴 때 아이들은 신나서 뛰쳐나가지만, 어른은 잔뜩 쌓인 눈 치울 생각에 허리가 벌써 휘는 것 같고, 도로 사정이 안 좋아질 거란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것처럼. 

그런 내게, 내면의 어딘가에서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 강아지는 나에게 짐이 아니라 선물이라고. 오히려 지친 내 마음에 쉼을 줄 수 있을 거라고. 


-      강아지가 가져다준 선물


그 후로 이 작은 동물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달라졌다. 강아지를 선물로 생각하니 그 아이를 대하는 내 마음이 더 편해졌다. 예방접종을 다 맞은 이후부터 산책을 나가게 된 강아지가 이제는 밖에 나가서 볼일을 보려고 하자 힘들었던 배변 훈련도 자연스레 해결이 되었다. 

그리고는 강아지와 함께 매일 함께 산책을 나가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특히 뉴욕에 있을 때는 날씨가 매섭게 춥거나 눈폭풍이 휘몰아친다고 해도 산책을 나가야 했기에 힘들기도 했지만, 피할 수 없는 일상이었다.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와서는 기후가 좋아서 산책하기가 훨씬 나아졌지만 말이다. 


이곳 미국에서는 반려견들과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다. 강아지와 산책을 나가노라면 다른 개 주인들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게 된다. 지나가다 만난 어떤 할아버지는 나를 붙들고 한참을 얘기하는데, 다는 못 알아들었지만 분명하게 들리는 말. 개가 자기 생명을 살렸다는 것이다. 건강에 문제가 있음을 나중에 발견했는데, 의사 말로는 개를 산책시키면서 부지런히 걷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다는 거다. 


그 말이 가슴에 남았다. 강아지가 아니었으면 나도 이렇게 산책을 다니지 않았겠지. 이 아이 때문에 바쁜 일상에서 한 템포 벗어나 잠시나마 자연을 들이마시며 쉼을 얻는다. 이 아이와 있으니 또 다른 세상이 열린 듯하다. 이전 같으면 쌩 하고 지나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말을 섞게 되고,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 아이들 친구들이 강아지 때문에라도 더 우리 집에 놀러 오고 싶어 하니 우리 아이들 인기 비결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우리 가족이 이 아이 때문에 함께 나눌 일이 더 생기고 이야깃거리가 더 많아진다. 반려견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물론 여전히 번거로운 일은 많다. 여행을 갈 때면 강아지를 받아 주는 호텔을 찾아야 하니 선택의 범위가 좁고 호텔료도 비싸진다. 집을 구할 때도 강아지 받아 주는 집을 찾아야 한다. 접종비, 사료비 다 만만치 않고 먹이고 씻기고 산책시키기까지 일이 많다. 강아지가 아플 때는 마음도 아프다. 늘 건강할 줄만 알았던 녀석이 얼마 전에는 슬개골 탈구와 십자인대 파열로 두 다리를 각각 수술받게 되어 예상치 못했던 목돈을 지불해야 했고, 회복 과정을 지켜보며 안타까워하며 더욱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쩌랴. 이제 이 녀석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의 소중한 가족인 것을. 어느덧 강아지 나이로는 중년인 8살이 되어 가지만 밖에 나가면 여전히 강아지 소리를 듣는 우리 귀염둥이다. 우리 아이들처럼 조용하고 수줍음 많은, 어딜 가나 예쁘다고 한 소리 듣는 이 털북숭이 막내로 인해 우리는 오늘도 웃는다.


해피 스마일! (;

---------------------------------------------------------------------------

Tip. 미국에서 반려견 맞아들이기


뉴욕에서는 애견센터나 동물병원을 통하여 강아지를 구입하거나 개인을 통해 분양받는 등 여러 경로를 통해 반려견을 맞이할 수 있다. 또한 동물보호소(Animal Shelter)에서 유기견을 입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입양 과정에는 소정의 비용(300불가량)이 지불되며, 강아지를 잘 돌봐 줄 가정인지 검토를 받은 후에 입양이 가능하다. 유기견을 입양할 경우 중성화 수술, 예방접종, 마이크로칩 삽입을 보호소에서 다 해주기 때문에 돈을 절약할 수 있다. 참고로, 캘리포니아에는 강아지 공장 등의 문제로 인해 애견 관련 법이 바뀌어 상업적인 애견 판매가 불법이 되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유기견 입양을 통해 반려견을 맞이하고 있다. 인기 품종이나 예쁜 유기견이 새로 보호소에 등록되면 경쟁률 또한 치열하다고. 주인 없는 강아지와 반려견이 필요한 주인이 서로 만나서 행복한 가족을 이루게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