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터 #인스타툰 #소아청소년
SNS는 일상뿐만 아니라 글, 그림과 같은 작품을 통하여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으로 우리 일상에 자리 잡았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인스타그램에서 만화 형식으로 게시되는 ‘인스타툰’을 본 경험이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데요, 한의계에서도 인스타툰을 연재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작가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평소 인스타툰을 즐겨보는 뱁새와 플라밍고는 이 소식을 듣고 작가님의 이야기가 들어보고 싶어 서울 목동으로 최규희 한의사님을 만나 뵙고 왔습니다. 한의사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침과 한약, 글과 그림으로써 세상과 소통하고 계신 최규희 한의사님의 이야기를, 지금 전해드리겠습니다!
[약력]
경희대학교 한의학과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원 임상한의학 석사
한방내과 전문의
현) 하이키한의원 강남점 진료원장
2024 대한한의사협회 소아청소년을 위한 서적 출판 지원을 통해 ‘하이브리드 이과생’ 출간
인스타그램, 브런치 등에서 필명 ‘최굴굴’로 활동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choigulgul/
브런치: https://brunch.co.kr/@choigulgul
블로그: https://blog.naver.com/choigulgul
들어가며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부족한 글은 그림으로, 서투른 그림은 글로 때우는 것이 특기인 일러스트레이터 한의사 최규희입니다. 부끄럼이 많아서 ‘최굴굴’이라는 필명으로 활동 중이며, '하이브리드 이과생' 저자이기도 합니다.
일러스트레이터 최굴굴
원장님께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골절되어 누워있을 때 할 일이 없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블로그에 올리던 것이 이렇게 확장되었어요. 그땐 정말 그림을 잘 못 그렸는데, 못해도 꾸준하게 그리다 보니 글을 돋보이게 할 만한 그림을 특징 있게 잘 그리게 된 것 같아요.
‘최굴굴’이라는 필명은 무슨 의미인가요?
제 고등학교 때 별명이었어요. 아무도 저를 몰랐으면 하는 마음에 조용히 시작하려고 ‘최굴굴’이라는 필명을 지었는데 브랜드 네이밍을 하기에는 약간 그래서 조금 더 예쁘게 지을 걸 그랬나 봐요.(웃음) 그렇지만 한 번 들으면 사람들이 쉽게 안 잊고, 나중에 ‘최굴굴’ 이름으로 상표권을 낸다고 가정했을 때 비슷한 이름이 없어서 잘 정한 것 같아요. 상표권은 비슷한 이름이 있으면 내기가 어려워지거든요. 제가 캐릭터 관련 수업을 들어보니까 실제로 캐릭터를 만드시는 분들은 검색했을 때 몇 개 이하로 뜨는 것을 캐릭터 이름으로 정한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최굴굴’이라는 이름은 아무 데도 걸리지 않아서 잘 정했다고 해주시더라고요.
캐릭터가 단순하면서도 귀여운데, 캐릭터를 어떻게 제작하셨는지 궁금해요.
제가 그릴 수 있는 것을 그린 거예요. 제가 처음 시작할 때 그린 그림이 있어요. ‘골절일기’라는 시리즈를 블로그에 업로드 할 때 그렸던 것인데, 이때는 조금 더 못생기고 팔다리가 더 길었어요. 공개적으로 업로드를 하고 나니 사람들이 피드백을 주시더라고요. ‘짧은 게 더 귀엽다’라고 말씀해 주시고, ‘다양한 동사를 표현하려면 짧지만 모양도 있어야 한다’와 같은 다양한 건의 사항들을 말씀해 주셨어요. 이런 피드백을 고려하여서 캐릭터를 연구하다가 지금의 ‘최굴굴’이 나오게 된 것이에요.
인스타툰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업로드 되는 건가요?
저는 먼저 주제를 결정하고 그다음에 해당 주제에 대한 글 콘티를 작성해요. 그러고 난 다음에는 글에 맞게끔 툰을 그려요.
지금 브런치 저장글에는 실제로 지금 연재 중인 시리즈의 다음 화들이 다 들어 있어요.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전체 스토리를 다 관통하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 미리 다 이야기를 구상해 두는 것 같아요.
처음 콘티를 작성할 때는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을 적고, 어느 정도 내용이 정해지고 나면 이야기 흐름에 맞게끔 순서를 재배치해서 전개가 이어지게 만들어요. 그렇게 이야기가 만들어지면 거기에 컷 별로 어떤 그림이 들어갈지 생각하고, 글로 써진 문장을 필요에 따라 대화체로 바꾸며 만화로 표현해요. 브런치나 다른 플랫폼에서도 동시에 연재를 진행하는데, 브런치에서는 줄글로 표현했다면 인스타로 옮길 때는 보통 대화체를 섞어서 업로드를 준비하는 것 같아요.
어쩐지 같은 주제라도 브런치와 인스타그램에 업로드 하시는 형식이 약간 차이가 있다고 느껴졌어요.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떠한 기준을 가지고 플랫폼별로 형식을 나누셨는지 궁금해요.
브런치는 연재라는 폼이 있기 때문에 게시글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가 있어야 해요. 또 브런치는 글의 길이가 길어야 노출이 잘 되기 때문에 업로드 할 때는 글의 길이에 초점을 맞추고, 그림은 간단하게만 한 컷 정도 올리고 있어요. 대신에 인스타그램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주제를 던지고, 그 주제를 움직이는 그림으로 제작해서 업로드하고 있어요. 인스타그램은 릴스와 같은 동영상 형식이 외부 노출이 많거든요.
그래서 저는 플랫폼 특징과 게시글 노출 정도 등을 고려하여서 각각의 플랫폼에 맞게끔 비슷한 내용을 변형하여 업로드하고 있어요. 종종 인스타그램에서 간소화된 형식을 보고 원문을 궁금해 하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그런 분들에게는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브런치 등의 링크를 걸어서 원문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제가 여러 플랫폼에 업로드를 하면서 느끼는 바는, 플랫폼별로 같은 내용이더라도 조금씩 다르게 업로드를 해야 한다는 점이었어요.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했던 초창기에는 인스타그램, 브런치 대신 블로그에 작품을 주로 업로드 했었는데, 갖춰야 하는 조건이 많더라고요. 특히 특정 키워드 몇 가지가 반복돼야 노출이 잘 되는데 그렇게 되면 제가 원하는 대로 글을 쓰기가 어려워서 점점 피하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최근에 책을 출간하고 난 후에는 제 책에 관한 정보를 검색해서 들어올 수 있게끔 광고글 형식으로 블로그 업로드도 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원장님께서 선호하시는 SNS가 무엇이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요!
저는 인스타가 가장 편한 거 같아요. 시각적 효과로 시선을 사로잡기 좋고, 짧고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가장 좋아요.
브런치와 블로그는 더 장문의 글이 필요하고요, 요즘은 장문의 글을 잘 읽지 않는 시대이기도 하고... 또 제가 글을 길게는 못 쓰는 이과라서.(웃음)
인스타그램이나 브런치에 주로 업로드 하시는 주제가 ‘한의사’로서의 이야기보다는 다른 일상적인 에피소드를 위주로 진행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상적인 주제를 주로 업로드 하시는 이유가 궁금해요.
저는 원래 제가 한의사라는 것을 밝힐 생각이 하나도 없었어요. 제가 쑥스러움이 많은 사람이라서요. 가장 처음 연재했던 ‘골절일기’를 다 끝내고 나서 쉬는 기간 동안 이제 다음에는 무슨 글을 연재하나 고민 중에 제가 자신을 숨기고 있으면 더욱 진실한 글은 나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다음부터 인스타툰을 통해서 제 직업에 대해 점차 빌드업하고, 한의사라는 것을 밝히기로 했어요. 그 이야기들을 하나로 묶으니 그동안 열심히 살았던 이야기, 그리고 학창 시절부터 이어 온 진로에 대한 고민을 담은 일대기가 그려지게 되더라고요. 그 덕분에 ‘하이브리드 이과생’ 출판도 하게 된 것 같아요.
‘하이브리드 이과생’을 뽑아주신 분께서는 제 글이 한의사가 쓰지 않을 법한 이야기를 써서 더 좋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일반적으로 한의사라면 건강 이야기를 많이 쓰는데, 그런 글은 다른 한의사들도 많이 쓰기 때문에 경쟁력을 찾기가 쉽지 않아요. 한의사가 쓰지 않을 만한 이야기를 한의사가 쓰는 것이 더 경쟁력 있는 것 같았어요. 한의사가 쓰지 않을 것 같은 글을 쓰고,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리지 않을 것 같은 그림을 그리고... 이런 것들이 오히려 저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던 것 같아요.
원장님께서는 전에도 그림을 배우시거나 지금처럼 창작 활동을 하신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는 그림을 진짜 못 그리는 사람이라서 어렸을 때부터 미술 시간을 제일 싫어했어요. 지금도 그릴 수 있는 것이 한정적이에요. 그렇지만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난 후 그림을 많이 그리다 보니까 스스로 조금씩 실력이 늘고 있는 것이 느껴졌고, 다른 작가님들의 작품을 통해서도 많이 배우면서 발전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잘 모르니까 작가님들께 궁금한 점을 여쭤보면 많이 알려주시더라고요. 작가님들이 쓰는 프로그램부터 시작해서 어떤 식으로 사용하는지도 많이 알려주셨어요. 또 일러스트와 관련한 온라인 화상 수업도 듣는 등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난 후 오히려 그림을 더 많이 배우게 된 것 같아요.
작가 활동을 하시면서 그림이라는 수단을 선택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왜냐면 제가 글을 그렇게 잘 쓰지 않기 때문이에요. 근데 부족한 글을 그림으로 보충하면 글도 살고 그림도 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제 소개를 할 때는 부족한 글은 그림으로, 서툰 그림은 글로 메꾸는 한의사라고 얘기를 많이 해요. 그 두 가지가 보완되면서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잘 썼다고 생각할 수 있게끔 만들 수 있더라고요.
최근에 출판하신 책 ‘하이브리드 이과생’이 2쇄가 확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요, 책 ‘하이브리드 이과생’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하이브리드 이과생’은 저의 학창 시절과 학부 시절 고민을 녹여 만든 진로 고민 툰 입니다. 원래는 인스타툰으로 연재를 진행하던 작품이었는데, 한의협에서 개최하는 소아청소년을 위한 서적 출판 지원 공모전을 통해서 빛을 보게 되었어요.
그동안 책 출간을 해보고 싶어서 전부터 제안서를 많이 제출했었는데, 다 떨어졌었어요. 그런데 ‘하이브리드 이과생’은 되더라고요. 된 이유를 분석해 보면, ‘하이브리드 이과생’은 차별화되는 주제로 저만이 쓸 수 있는 글이라서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한의사이자 일러스트레이터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죠. 한의사가 아니면 쓸 수 없는 글이었는데, 또 한의사는 쓰지 않을 글을 썼으니까요.
학창 시절 및 학부 생활
외고를 졸업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외국어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어떻게 이과 수능을 준비하셨는지 궁금해요!
학교 성적은 학교 성적대로, 수능은 수능대로 따로 봤어요. 외고는 선택과목이 사회, 정치 같은 것들이니까 낮에는 학교 수업을 듣고, 밤에는 학원에 다니면서 과학 공부를 따로 했던 거 같아요. 그렇게 준비한 친구가 저희 반에 딱 둘 있었는데 제가 경희대 한의대에 가고 그 친구가 연대 의대에 가서 둘 다 잘됐어요. 외고 친구들은 저와 진로가 완전히 달라 서로 경쟁상대라고 느끼지 않아서 더 좋은 친구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와서 보니까 집단 안에서 자꾸 다른 것을 하려는 습성이 그때부터 생긴 것 같아요.(웃음)
‘하이브리드 이과생’을 보면 원래 의대를 지망하시다가 한의대에 입학하게 되었다고 나와 있는데, 그렇다면 처음 한의대에 갔을 때 어떻게 학부 생활을 보내셨는지 궁금해요.
아버지께서 의사셔서 저도 원래는 의사가 되려고 했어요. 대입 시험을 봤는데, 제가 언어를 잘 못 본 거예요. 당시 경희대 한의대가 언어 영역을 안 봐서 제 성적에서 언어 영역을 뺐을 때 가장 잘 갈 수 있는 학교였어요. 그래서 아버지께 조언을 구하니 한의대에 입학하는 것도 괜찮은 선택 같다고 하시기에 경희대 한의대에 입학하게 되었어요. 이렇게 갑자기 결정하다 보니 한의대에서 어떤 학문을 공부하는지 하나도 알지 못했어요. 게다가 한자를 해야 한다는 사실도 전혀 몰랐고요. 동기들이 방학 중에 서당도 다녀오고, 입학해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보니까 좀 무섭더라고요. 그래서 겉돌았어요. 수업도 점수 잘 준다는 과목보다는 그냥 제가 듣고 싶은 거 찾아서 듣고, 혼자 책 읽고 여행 가는 것을 더 좋아하고.... 학교는 소홀하게 생각했던 그런 학생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대학 입학하고 처음에는 방황하신 건데, 어떠한 계기로 방황을 끝내시게 된 건지 궁금해요.
예과가 끝나면서 교양 수업도 끝났고, 그때 보니까 방황했던 저와는 다르게 다른 동기들은 야무지게 학점도 잘 받고 그러더라고요. 그리고 내가 아무리 다른 과 강의를 듣고 여러 경험을 하더라도 결국에 내가 해야 할 일은 한의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저도 제 갈 길을 알아서 찾아야겠다 싶었어요. 또 시간이 지나다 보니 익숙하지 않았던 한의학 내용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더라고요. 그래서 본과 올라가고 나중에는 전공과목에서 탄력을 받아서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아요. 다 재미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잘 배웠던 것 같고, 그렇게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혹시 방황하셨을 때 한의사 말고 다른 직업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하신 적이 있나요?
환자 보는 게 너무 하고 싶어서 다른 직업은 생각해 보지도 않았어요. 무의식중에 어차피 한의사를 하게 되어 있다는 생각을 계속했던 것 같아요. 만약에 제가 방황했을 때 다른 곳에 관심을 가지면서 마음이 흔들렸으면 불안정했을 것 같은데, 한의사가 내 길이라고 확실하게 중심을 잡고 나니 오히려 다른 것들을 경험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어요.
저도 개인적으로 한의학이랑 관련이 없는 다른 일도 해보고 싶었기에 한의대 내에서 방황했던 시기가 있었는데요, 그런데 지금 당장 내가 이것저것 다른 일을 해도 당장 눈앞에 둔 일을 제대로 못 하면 그것도 부끄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인지 원장님께서 말씀해 주신 내용에 공감이 많이 된 것 같아요.
한의사를 하고 있다 보면 다른 일을 할 기회는 많이 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놓고 있으면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어요.
제가 석사를 하고 박사는 안 했어요. 박사 과정은 돈은 엄청나게 드는데 학위를 받고 나가서 과연 쓸 일이 뭐가 있을까 그런 생각도 있었고요. 당시에 신혼생활을 하면서 드는 비용도 많아서 남편한테 나중에 돈 벌면 박사 과정 시켜달라고 하고 석사까지만 한 거죠. 만약에 그때 박사 과정을 했으면 또 다른 기회들이 많이 생겼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좀 아쉬워요. 이제 나이가 더 드니까 점점 더 도전하기 어려워지는 부분들이 있어서 할 수 있을 때 좀 힘들더라도 뭐든지 해놓는 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원장님께서 한방내과 전문의를 취득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수련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해요.
저희 아버지께서 학생 때 하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임상에 나가서 많은 환자를 보고 논문을 보는 것이 의사로서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셨어요. 그 얘기를 듣고 다양한 환자를 많이 봐야 한 분야에 대한 성장을 깊이 할 수 있겠구나 싶어 수련을 결심했어요.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수련을 누구나 하려고 하진 않았고, 수련하겠다고 진로를 정하면 어렵지 않게 수련을 할 수 있었어요. 지금은 제가 학교 다니던 때와는 다르겠지만, 그래도 저는 후배들을 만나면 꼭 수련하라고 이야기해요. 병원에서 환자를 보는 역량을 좀 더 갖추고 나가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학부생한테 추천하는 활동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세요!
여행이요. 여행 진짜 많이 다녀야 해요. 왜냐하면 한의원을 하면 갈 시간이 없어요.
개원의 경우에는 하루하루가 다 돈이고 매출이기 때문에 정말 쉬기가 힘들어요. 그리고 대진을 맡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에요. 남이 나만큼 열심히 해주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내가 뭔가를 하게 되면 올인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임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정말 없어요.
학부생 때는 방학도 있으니까 길게 갈 수 있는 여행을 한 번 가보세요. 도미토리에서 자고 그러더라도 오래 갔다 오는 것. 그건 나중에 진짜 못 하는 거니까요. 나중에 아이라도 생기면 그 아이를 두고 어디를 가고, 아기가 없더라도 남편을 두고 어디를 가겠어요. 혼자 살더라도 나 혼자 내 생계를 챙겨야 하는데 또 어디를 가겠어요. 안 되는 이유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많이 생기는 것 같아요. 시간 내서 상한론 강의 듣고 임상강의 듣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여행지로는 먼 곳을 좀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호주나 미국! 유럽 여행도 좋은 것 같아요. 짧게 가든 길게 가든 상관없지만 가능하면 길게 다녀오세요. 저는 본과 3학년 때도 여행을 좀 다녔는데 본과 3학년은 과목이 일주일에 하나씩만 있잖아요. 만약 10과목이라고 하면 일주일을 빠져도 결석이 한 번씩만 생기는 거잖아요. 여행하기에 아주 좋죠.
그리고 연애! 특히 CC가 아닌 연애요.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건 중요한 일이에요. 한의사 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사람에 대한 이해 폭이 한의사들끼리만 있으면 좁아지거든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제가 선배한테 들었던 조언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게 신문을 많이 보라는 이야기였어요. 한의사가 세상 돌아가는 일을 너무 모른다고 하시더라고요. 알 필요가 사실 없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걸 알아야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소아청소년 진료 한의사
학부생 생활과 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바로 임상으로 가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힘들었던 점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세요.
저는 전문의를 딴 직후가 개인적으로 어려웠던 시기였어요. 저는 전문의를 따면 취직은 보장되어 있고 약간의 가산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막상 취업하려고 보니까 자기소개서도 써야 하고, 취업 면접도 보고 할 게 많은데 그런 거를 할 줄 모르는 상태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면접을 보러 가는 곳마다 계속 지원자가 겹치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은데 그 사람들은 취업하는데 나만 계속 못 하니까 너무 속이 상했었어요. 처음에는 ‘우리 교수님은 진짜 무책임하다. 나를 꽂아줄 생각을 안 해.’ 이런 생각을 했어요. 물론 그런 건 원래 없는 거죠.
사실 전문의를 딴 것은 내가 나의 역량을 쌓은 것이지 대표 원장님한테 필요할지 불필요할지는 그 사람이 정하는 것이잖아요. 내가 그걸 얼마나 잘 어필을 하느냐에 달려 있는데 저는 전문의를 달면 다 되는 줄 알았던 거죠.
면접에서 많이 떨어져 보면서 나 스스로를 표현하는 연습을 하다 보니 결국에는 전공을 살려서 갔어요. 저는 전공이 폐계내과였어서 비염으로 유명한 편강한의원에 합격한 거죠. 지금 한의원은 소아과 진료를 보는 곳인데 소아는 아토피, 비염, 천식 이런 질환들이 정말 많아요. 이게 소아 때 관리가 잘 안되면 키도 잘 안 크고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고생하거든요. 저는 이런 쪽으로 자신이 있다는 걸 잘 어필해서 면접에 합격한 거죠.
내가 지금까지 한 일들을 잘 포장해서 한의원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해요. 처음 취직할 때는 그걸 못해서 고생을 많이 해서 이직할 때는 일부러 더 준비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실제로 진료를 해보셨을 때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진료와 소아를 대상으로 하는 진료 사이에 특별한 차이가 있을까요?
다르다기보다 소아를 볼 때 제가 개인적으로 더 신경 쓰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질병은 소아나 성인이나 거의 비슷한데, 소아는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상태여서 내가 하는 말이 이 친구한테 큰 영향을 줄 수 있어요. 그래서 말을 조심해서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어른들은 얘기해도 좀 알아서 걸러 듣고, 자기가 아는 선에서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듣는데 아이들은 그렇지 않거든요. 그래서 잘못된 지식을 전달하지 않으려고 더 많이 노력해요.
그리고 소아는 좀 더 예민해요. 그래서 감정적으로 더 많이 공감해 주고 이해를 해줘야 해요. 아직 자라나는 아이들이니까 이 시기일 때는 충분히 이런 행동을 하거나 이런 마음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진료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서 아이들한테 키 크려면 일찍 자야하고, 뭐는 안 먹어야 하고 이렇게 말을 하면 아이들이 화가 이만큼 난 상태로 집에 가요. ‘저 사람은 나의 적이다!’ 저를 자신이 하고 싶은 걸 못 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사실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들은 건강하지 않은 일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더 잘 다독여서 진료를 이끌어가야죠. 아이들은 키가 크고 싶은 마음과 하기 싫은 마음 두 가지가 공존하거든요. 거기서 키 크고 싶은 마음을 이끌어내는 것이 저희의 역할이에요.
소아 한방 치료에서는 주로 어떤 치료법을 많이 쓰나요?
침이나 한약을 많이 사용하죠. 그런데 침은 초등학교 3학년 이상일 때만 사용해요. 나이가 어린 경우에는 레이저 침이랑 물리 치료 기계만 사용해요. 침 치료받을 때 아이들이 긴장하는 그 자체가 오히려 더 안 좋다고 생각해서 최대한 통증을 느끼지 않도록 해줘요. 레이저 침은 빨간빛이 나오는 레이저를 혈 자리 근처에 조사해서 자극되도록 하는 방식이에요. 물론 직접적으로 물리적인 자극을 하는 침 치료가 더 효과가 좋으니까 가능한 학년이 되면 침 치료를 권유하고 있어요.
보통 몇 살 정도의 환자들이 가장 많나요?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내원을 가장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저희 한의원이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한의원이 아니라 사춘기 아이들을 보기 때문에 더 예민해요. 와서 울고 나간 친구들도 있고 엄마랑 싸우고 나가는 친구들도 있어요. 이런 상황을 원활하게 잘 풀어나가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면 더 신뢰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까 한의학 공부만으로 되는 건 아니에요. 공부는 정말 기본이고 이 사람들의 마음을 잘 다독여주고 이끌어가고 끝까지 치료받게 하는 것. 그거 자체가 다 진료라고 생각해서 문과적인 소양이 정말 중요해요.
아이가 있는 것도 소아과 진료에서 도움이 많이 됐어요. 이해도가 확 넓어져요. “우리 아이도 그래요. 우리 아이는 더 심해요. 이 정도면 아주 양호한 거예요.”라고 엄마들한테 말할 수가 있어요.
그러면 환자들은 주로 어떤 것 때문에 내원을 하나요?
저희 한의원은 특히 성장이랑 성조숙증 위주로 많이 와요. 여기에 그 아이가 갖고 있는 기저 질환들. 비염, 아토피, 천식 이런 것들을 기본적으로 다 관리하고 있어요.
고등학교 1학년 정도의 환자들도 많이 내원하는 편인가요?
사실 그 정도 나이에는 아이들이 스스로 와요. 더 어린 나이인 아이들은 엄마들이 데리고 오는 건데 그 뒤로는 아이들이 오히려 엄마를 데리고 오죠. 아이들도 키 크고 싶은 마음이 진짜 많아요.
원장님께서 느끼시기에 이전에 비해서 키 성장이나 성조숙증으로 내원하는 환자들이 좀 더 많아졌나요?
와야 할 사람은 더 많아지고 있어요. 실제로 제가 논문을 쓴 주제가 이 질문 내용과 비슷했는데 결론은 코로나 때 성조숙증 비율이 확 늘었어요. 아이들이 집에만 있다 보니까 움직임이 적어져 체중이 많이 늘고, 성호르몬에 영향을 끼치는 거죠. 그리고 배달 음식의 포장 용기에서 나온 환경호르몬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전에도 많이 늘고 있는 추세였는데 코로나를 기점으로 대폭 증가한 거죠.
그런데 그만큼 진료 환자 수가 늘었냐고 물어보신다면 그건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만큼 한의사의 어깨가 무거워요. 저희 대표 원장님은 한의사 대상으로도 강의를 많이 하세요. 이게 자기의 노하우를 나눠주는 거지만 또 어찌 보면 한의사 전체가 이 질환 자체를 다 다룰 줄 알면 파이가 커지는 거거든요. 누구는 할 줄 알고 누구는 할 줄 모르면 그 특정 사람은 잘 될지언정 파이가 커질 순 없어요. 한의사가 이 질환 자체를 다룰 줄 안다는 인식 개선을 위해서 강의를 하시는데 이것도 매우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마무리하며
한의사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앞으로 이루고자 하시는 목표가 궁금합니다!
그러게요.(웃음) 제가 열심히 생각을 해봤는데 딱히 제가 뭘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건 아니어서 목표가 딱 있는 것도 아니긴 해요.
굳이 답을 해보자면 제가 지금 브런치에서는 건강 분야 크리에이터로 되어 있어요. 그래서 만약 더 전문적으로 건강과 관련된 글을 쓰게 된다면 그걸 잘 써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는 것 같아요.
해보고 싶은 건 북페어에 나가보고 싶어요. 지금까지는 일러스트 페어만 두 번 나갔는데 사실 북페어는 또 다른 분위기라고 해서 너무 궁금해요. 북페어는 보통 독립 출판물을 대상으로 해서 제가 낸 책을 가지고 나갈 수 있을지 아직은 미지수지만, 올해 하반기에 한 번 지원해 보려고요.
진로를 고민하는 한의대생 혹은 청소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저는 하고 싶은 것 다 해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더불어서 진로라는 것은 내가 설정해 두는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그때그때 기회가 찾아왔을 때 그것을 잡아서 할 수 있는 거라는 것도 말씀드리고 싶어요. 항상 자신이 위치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다양한 기회가 찾아와 또 새로운 진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의대생이라면, 제가 인터뷰에서 말했듯 기본적으로 본업을 잘해야 뭐든 하기 수월하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대만드]가 다음에 만나봤으면 하는 분이 있나요?
공공 기관에 소속된 한의원에 근무하시는 한의사분들이 궁금해요. 제가 취업 준비할 때 궁금했었던 건데, 이분들의 이야기가 후배님들에게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긴 시간 동안 일러스트레이터와 한의사로서의 삶에 대하여 여러 질문을 드렸었는데, 원장님의 솔직하고 유쾌한 이야기 덕분에 정말 즐거운 인터뷰였습니다! 앞으로도 한의학과 그림이라는 두 가지 수단을 가지고 세상과 소통해 나가시는 원장님의 행보를 기대하겠습니다 :) 뜻깊은 말씀을 전달해 주신 최규희 한의사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대만드는 다음 시간에 더욱 유익한 인터뷰를 통해 돌아오겠습니다!
Interviewer. 뱁새, 플라밍고
Editor. 뱁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