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담보리 Feb 07. 2021

[식물다방] 일로 만난 사이, 식물로 가까워지다

- 곧 퇴사하시는 매니저님의 보라싸리가 올봄에 더 잘 자랄 거예요:)

 회사 다닐 때는 매일 같은 팀원들과 아침 인사를 나누고, 점심을 먹고, 회식도, 야근도 자주 하며 지냈다. 주 5일을 꼬박 만나고, 우리 부모님과 먹는 식사보다 팀원들과 함께 하는 식사하는 경우가 더 많기에 진짜 가족 같이 지냈다. (퇴사를 하면, 아무리 힘들었던 회사도 좋은 추억만 남더라)


 그중에 제일 좋아했던 시간, 그래서 퇴사를 하고 내 일을 한다고 했을 때 제일 그리웠던 시간이 있는데 바로 팀원들 혹은 동기들과는 업무 시간에 짬짬이 나누는 티타임이었다. 출근이 없지만, 퇴근도 없는 자영업의 세계에서 나는 식물과 함께 였지만, 사람은 나뿐이라 외로울 때도 많았다.


 그러다 경력이 쌓이면서 외부 업체들의 의뢰를 받아 일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단발성 프로젝트도 있지지만, 아이들 수업을 진행하면서 방학 혹은 학기 내내 만났던 선생님들도 계시고, 매달 만나는 매니저님, 작업 때마다 찾아주시는 타 분야의 프리랜서분들과 함께 하면서 팀원들과 함께 하던 티타임 분위기를 낼 수 있는 시간을 다시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원래 아무리 좋은 사람도 일을 같이 하게 되면 사이가 나빠진다고 하지만 서로 얽혀있는 것이 없어서 그런지, 우리의 대화는 항상 즐거웠고 또 웃음이 가득 찼다. 거이에 우리 사이에 또 식물이 빠질쏘냐. 어색한 사이에 날씨와 주말 이야기가 끝나면 오디오가 비기 마련인데, 나는 식물 이야기가 있기에 걱정이 없었다. 식물은 나의 비즈니스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큰 일을 해주고 있다.


 일단 우리의 식물 이야기는 만나자마자 나오지는 않는다. 몇 차례 회의가 진행되고, 꼭 미팅을 끝내고 엘리베이터까지 나를 배웅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실 제가 무슨 식물을 키우고 있는데요. 얘가 왜 안 자랄까요?



 무슨 어려운 이야기라고 나에게 항상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담당자님들. 그냥 편하게 막 물어보셔도 되십니다!! 그리고 잘 자라는 경우는 거의 없이, 아이들이 어디가 아픈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때 정말 잘 대답해드려야 나의 비즈니스에 신뢰도가 올라가는지라, 더 신중하게 이야기를 듣고 답변을 드린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케이스가 있다. 매달 식물 관리로 만나는 매니저님은 '보라싸리'를 키우신다고 한다. 어느 정도 레벨이 돼야만 키우게 되는 '보라싸리'라서, 사실 처음 질문을 받았을 때는 살짝 긴장을 했다.


 다행히 '왜 꽃이 피지 않을까요?'라는 질문이었고, 이에 대한 답은 매니저님이 스스로 고백해버린, '자꾸 늘어지는 줄기가 지저분해서 잘라줬다'는 말에 있었다. 새로 나온 줄기에 꽃대를 달고, 꽃을 피우는 보라싸리의 성질 때문에 줄기를 자르면, 꽃대를 계속 자르는 거라고 말씀을 드렸다. 본인이 스스로 잘라버린 꽃대에 화들짝 놀라셨다.


 그리고 질문을 받았던 지난봄을 지나, 입춘이 막 지난 올 2월. 매니저님은 아주 환한 얼굴로 보라싸리에 꽃이 폈다고 말씀해주셨다. 꽃 피는 게 뭐 그렇게 큰 일이라고... 하지만 우리 둘은 신이 났다. 비록 예년에 비해 너무 추웠던 올 겨울이었던지라 많은 식물들이 얼어 죽었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보라싸리가 꽃을 피지 않았던가.



 회사를 다니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대단한 일인지 알기에, 이렇게 식물로라도 웃을 일이 많이 생기셨으면 좋겠다. 이건 내 진심이다.


 그리고 지난주, 클래스 콜라보를 위해 미팅을 다녀왔다. 문을 열고 사무실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화분들. '직업병이야 참아라', 속으로 생각하면서 못 본 채 하려 했지만, 무의식적으로 눈이 갔다. 그렇게 재빨리 식물 스캔을 마치고 미팅에 참여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미팅 종료 후에는 식물 상담이 이어졌다. "혹시 저 아이가 죽을 걸까요?" 질문 끝에 시선이 닿은 곳에는 멋들어진 소나무 분재 하나가 잎이 하얗게 된채로 놓여이었다. '네',라고 했지만 마음은 좋지 않았다. 담당자분께서 너무 애지중지 키우고, 아니 관리하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소나무가 죽었다는 팩트는 전달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분의 정성이 죽은 소나무에서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느 사무실로 미팅을 가든 식물은 놓여있다. 어느 회사든 식물과 에피소드 하나 정도는 있는 듯하다. 그 이야기만 모아도 너무 재미있을 것 같다. 식물이 잘 자라고 있는 곳과의 일은 왠지 더 열심히 하고 싶다. 식물을 아끼는 마음이라면, 함께 일하는 사람도 소중히 생각할 것 같다는 나만의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감사하게 지금까지는 참 좋은 분들과 일을 해오고 있다. 그리고 2021년 올해도 또 다양한 곳과의 콜라보가 진행될 예정이다. 비록 일로 만난 사이지만, 식물 덕분에 난 또 좋은 사람과 함께 하고 있다. 그분들께 좋은 식물 브랜드와 일한다는 느낌이 드실 수 있도록, 내가 더 노력하고 열심히 해야겠다. 항상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식물다방] 원예과 교수님들과의 식물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