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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녀기 Mar 10. 2024

바다와 민물의 경계선

특별한 친구와의 만남

다음에 가야 할 곳이 저 멀리 바다 건너 보인다.

어제 무리를 해서 그랬는지 아침은 각자 알아서 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무엇보다 교수님께서도 연구년이시지만 오전에는 연구실 행정 업무를 하셔야 한다고 하셨기에 나와 띵동이는 우리가 머무는 곳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장 첫 번째로 찾는 곳은 카페였다. 이왕이면 스타벅스 카페였다. 물론 주변에 커피 파는 곳은 많지만 노상이고 날이 덥기 때문에 시원한 곳에서 얼음이 한가득 들어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너무 마시고 싶었다. 우리가 있는 곳은 리틀 인디아(Little india)라는 지역이었는데 작은 도시별로 다른 나라 이름이 들어간 곳이 몇 군데 있었다. 싱가포르에 나라 이름이 붙은 도시는 그 이름에 나라를 대표하듯 정말 그 나라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 머물렀던 지역도 인도 사람들과 인도 음식점들이 정말 많았다. 이 주변에는 스타벅스가 없을 것 같아서 조금은 멀리 띵동이와 나가보았다.


길을 몇 번을 건너고 한 30분 정도 걷다 보니 스타벅스가 나왔다. 구글 지도에서는 한참을 돌아가게 안내하는 바람에 조금 더 오래 걸렸다. 우리는 스타벅스에 들어서자마자 오아시스를 만난 듯이 서로 자기가 사겠다고 다퉜다. 결국은 형인 내가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샀다. 우리는 커피 없이는 못 사시는 교수님께 카톡으로 커피 사진과 위치를 보내드렸다. 교수님께서는 많이 부러워하시면서 하고 있는 일이 너무 많아서 우리가 있는 곳까지는 가기 어렵다고 하셨다. 우리는 교수님의 업무가 끝날 때까지 카페에 여유를 즐겼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맨날 탐사만 다니고 동물만 보는 것을 좋아하는 줄 알지만 그 누구보다 도시를 사랑하고 스타벅스는 교수님 만큼은 아니지만 그다음으로 사랑한다.


언제나 탐사를 다니거나 여행을 할 때 꼭 필요한 특히 우리에게 허락된 마약과도 같은 것이 시원한 생맥주커피이다. 그 두 가지 없으면 고된 일정을 버티기가 힘들다. 특히 호주와 중국에 갔을 당시에 맥주가 없었으면 나는 진작에 연구하는 것을 포기했을 것이다.

싱가포르에 오아시스와 같은 곳인 스타벅스

너무 오래 있었더니 추워졌고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마침 교수님께 연락이 왔다. 교수님께서는 점심 식사를 어디서 하면 좋을지 물어보셨다. 띵동이와 나는 이미 카페에서부터 교수님께서 밥 먹자고 하실 테니 미리 평점 높고 가까운 식당을 찾아놓았다. 숙소 근처에는 인도식 음식점이 많았는데 깔끔하고 평점이 높은 집이 있어서 인도식 카레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싱가포르는 높은 물가를 자랑하지만 리틀 인디아에서는 한국 돈으로 만원이면 엄청 배부르게 먹을 수 있고 또 생과일 주스를 먹을 수 있었다.

리틀 인디아에 위치한 인도 커리 음식점

식사를 마치고 주스를 마시면서 먼저 날씨를 확인하였다. 날씨를 보니 오늘은 비가 안 온다고 한다. 전에는 머무는 내내 비가 온다고 했는데 반나절마다 날씨 예보가 바뀌었다. 그래도 오늘처럼 비가 안 오는 날은 드물 것 같아서 우리가 있는 장소에서 조금 먼 썬게이 블로우 습지보호지역(Sungei Buloh Wetland Reserve)을 가기로 결정했다. 많은 새들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직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야생 바다악어를 볼 수 있는 지역이기도 했다.


우리는 숙소에 짐을 챙겨서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를 2번 정도 갈아타야 했는데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야생닭이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어제 봤던 애들보다 더 도심지에 있어서 그런지 사람이 있어도 도망가질 않았다. 교수님께서는 정말 행복하게 닭을 버스가 오기 직전까지 촬영하셨다. 교수님께서 촬영한 야생닭은 또 수업 때 어떻게 활용될지 나도 궁금한데 아쉽게도 더는 교수님의 학생이 아니어서 알 수 없었다.

야생닭을 촬영하시는 교수님.

버스를 갈아타야 했는데 구글 지도에 알려준 버스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질 않았다. 불행하게도 버스 정류장에 있는 그늘막을 제외하면 그늘이 없어서 따가운 땡볕에 쉽게 노출되었다. 그늘이 없었다면 너무 더워서 위험해질 수도 있는 날씨였다. 그런데 교수님께서 그늘에 있기보다 햇빛이 강하게 내리째는 바닥에 앉아서 무엇인가를 촬영하고 계셨다. 자세히 보니 한 도마뱀을 촬영 중에 있었는데 흔하게 보이던 애라 언제가 보이겠지 하고 나는 버스는 왜 안 오는지 버스 말고 다른 수단은 없는지 찾아보았다.


한참을 기다려도 버스가 안 오니 교수님께서도 이상하다 싶어서 지나가던 행인에게 물어보았더니 오늘은 그 버스가 쉰다고 했다. 우리는 결국 택시를 타기로 했는데 교수님과 띵동이 모두 '그랩(Grab)'을 다운로드하고 가지고 있는 카드를 연동시켜 오길 기대했으나 역시나 내 예상대로 안되어 있었다. 결국 내가 어플을 통해 택시를 불러서 2시간 만에 썬게이 블로우 습지보호지역으로 도착했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도마뱀을 보시는 장이권 교수님
우여곡절 끝에 썬게이 블로우 습지보호지역(Sungei Buloh Wetland Reserve)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사진기를 들고 다니시는 분들이 많이 보였다. 관광객은 아니고 현지 사람들이었다. 무엇인가 찍고 있는 것을 무엇을 찍는지 여쭤보니 흰배바다수리(White bellied sea eagle:Haliaeetus leucogaster)의 새끼를 촬영 중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크기도 꽤 커서 새끼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현지인분께서도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독립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자세히 보니 새끼 흰배바다수리도 얼마나 더웠으면 입을 벌리고 혓바닥까지 내밀고 있었다. 열대 지방에 사는 새들도 더위에 지치는데 썬게이 블로우 습지보호지역 입구부터 나는 벌써 더위에 항복을 외치고 있었다. 우리는 부킷 티마 때처럼 시간을 정해두고 둘러보기로 했다. 교수님께서는 다시 숲 속 어딘가로 사라져서 녹음하러 가시고 띵동이는 개미를 보러 간다며 이내 눈앞에서 멀어졌다.


이곳도 마찬가지로 부킷 티마에서 들었던 공사장 소리와 같은 매미 소리로 가득했다. 부킷 티마에서는 직접 매미를 보기 어려웠으나 이곳 썬게이 블로우 습지보호지역에서는 비교적 낮은 위치에서 징매미(국명이 없어서 제가 이름을 만들었습니다:Purana usnani)가 노래를 불렀다. 녀석을 본 덕분에 무슨 종인지도 알 수 있었다. 매미를 여러 나라에서 보았지만 한 종이 압도적으로 서식지를 우점한 경우는 처음 봤다. 웬만하면 다른 매미 소리가 들리거나 들리지 않더라도 보이기 마련인데 징매미를 제외하고는 싱가포르 여행 내내 보질 못했다.

더위에 지쳐 보이는 흰배바다수리(White bellied sea eagle:Haliaeetus leucogaster)의 새끼
드디어 찾아낸 징매미(Purana usnani)

썬게이 블로우 습지보호지역은 워낙 넓은 곳이고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어디를 가나 카메라를 들고 새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는 날아다니는 것만 보고 촬영은 못했지만 사람들은 흰배바다수리의 사냥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일정 거리마다 모여있었다. 나는 싱가포르에서 보고 싶은 새라 하면 코뿔새였다. 남아메리카에도 비슷한 새인 투칸(Toucan)이 있으나 남아메리카는 짧은 미래에는 가볼 수 없으니 투칸에 친척쯤 되는 코뿔새를 야생에서 보고 싶었다. 동남아지역에 여러 종류가 서식하는데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탐조하시는 현지인분께 코뿔새를 보는 팁을 얻었지만 그렇게 도움 되는 내용은 아니었다. 대부분 높은 나무에서 쉬고 있어서 계속 고개를 들고 다녀야 한다고 하셨다. 거북목을 갖고 있는 나에겐 조금이나마 교정할 수 있는 하루가 될 것만 같았다.


1시간 내내 나무만 보고 다니다가 망고 열매 같은 것을 보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망고 열매는 저렇게 높이 열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 햇빛도 비추고 육안으로는 자세히 보이지 않아서 가지고 있는 카메라로 촬영해 보았더니 내가 보고 싶어 했던 코뿔새였다. 근데 애들도 더위에 지쳤는지 열매처럼 나무에 걸려있었다. 동남아에서 가장 흔한 코뿔새 중 하나인 알락검은코뿔새를 볼 수 있었다. 버킷 리스트에 보고 싶은 동물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중 하나가 야생에서 코뿔새를 보는 것이었다. 장 교수님과 띵동이에게도 보여주고 싶었으나 인터넷도 잘 안되었고 무엇보다 연락이 닿기 전에 코뿔새는 자리를 떠났다.

망고처럼 걸려있는 알락검은코뿔새(Oriental pied hornbill; Anthracoceros albirostris)
보고 싶은 동물들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코뿔새를 보았다.

장 교수님과 띵동이를 만난 김에 이제 슬슬 이곳을 떠나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오늘은 야간 탐사까지 할 예정이고 또 대중교통으로만 다녀야 했기에 무한정 숲 속에 있을 수 없어서 빨리 발걸음을 재촉했다. 싱가포르에서는 야간에 다닐 수 있는 숲 속이 많지 않았는데 싱가포르에 있는 친구 덕분에 밤에도 탐사를 할 수 있는 길을 알게 되어서 저녁을 먹은 후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저녁을 먹은 후 친구가 알려준 곳에 도착하였는데 군사 시설이 있는 지역이니 간판을 포함해서 사진 촬영하지 말라는 글이 있었다. 이게  맞는 것인가 하고 있었는데 옆에는 길 안내판이 있는 것을 보니 맞는 것 같아서 들어가 보았다. 현지 친구가 여기가 맞다고 했으니 문제없겠지 싶었다. 고요하고 사람도 없고 아주 깜깜한 곳이었다. 뭐가 튀어나올지 몰라서 긴장하며 걸어갔다. 주변에는 가시가 많은 나무들로 가득했다. 무엇보다 다양한 메뚜기목 곤충의 소리가 들려서 교수님께서는 녹음기를 켜시더니 우리 중에서 가장 행복해 보이셨다. 띵동이가 앞에 걸어가다가 내가 다급하게 "멈춰!"라고 소리쳤다. 다름 아닌 길 위를 그물무늬비단뱀이 지나가고 있었다. 크기로 봐서는 아직 어린 뱀이었다. 

가시나무가 이곳저곳 있었다. 
로드킬 당할 뻔한 그물무늬비단뱀(Reticulated python; Malayopython reticulatus)

발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멀리서 자전거 달려오는 소리와 불빛이 보였다. 얼른 뱀을 구하기 위해 주변에 보이는 나무 막대기로 이동시켰다. 비단뱀은 독은 없지만 어린 뱀이라 해도 날카로운 이빨에 크게 다칠 수 있기에 최대한 안전하게 뱀을 옮겼다. 산악자전거 도로이다 보니 밤에 자전거가 지나가는 것은 100번 이해할 수 있었는데 저 멀리 작은 불빛 하나가 가만히 멈춰있었다. 군부대와 가까운 곳이니 설마 군인인가 했는데 가까이 가보니 카메라를 들고 대나무들이 빼곡한 곳에 무언가를 촬영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현지인 한 명이 카메라를 들고 서있었다. 카메라도 전투복 디지털 무늬의 케이스로 감싸져 있어서 총 쏘는 것처럼 보였다. 현지인에게는 내 소개를 짧게 하며 인사를 했다. 그러더니 일단은 저 멀리 있는 것을 촬영하라고 했다. 사실 보이지도 않고 동물 이름을 같이 말해줬는데... 내가 영어 듣기란... 들리지가 않았다. 영어는 못 알아들었고 일단은 무엇을 촬영하고 있는지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눈을 크게 뜨고 숨은 그림 찾기 하듯이 찾아보니 현지인이 말한 동물은 말레이사향고양이었다. 그 뒤에 서로 통성명을 하였다. 현지인은 '개리'라는 친구였는데 이곳에 거의 매주 동물들을 보러 온다고 했었다. 나는 내 일행이 더 있는데 혹시 같이 동행되냐고 물었고 개리는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사향고양이(Malayan Civet; Paradoxurus hermaphroditus)

역시 매주 이곳에 와서 그런가 우리와 다르게 숲에서 보는 시야가 달랐다. 특히, 특정 동물에 관심 있는 것이 아닌 식물부터 해서 거미, 달팽이, 물고기 등등 다양하게 하나하나 촬영하면서 갔다. 개리가 찾아준 동물 중 인상 깊었던 것은 초록나무달팽이인데, 초롱나무달팽이는 싱가포르의 고유종이자 보호종이라고 한다. 안타깝게도 계속되는 도시화로 인해 숲이 줄어들어 개체수가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에메랄드빛에 오묘한 색깔을 내기 위해 무엇을 먹고 저런 색을 합성할까?라는 궁금증을 남겼다.


천천히 걸어가다가 개리가 조심하라고 외쳤다. 개리가 앞장서서 우리에게 먼저 정확한 위치를 나뭇가지로 가리켰는데 가리킨 위치로 시선을 돌려보니 살모사 종류의 뱀이 나무 위에 있었다. 와글러살모사라고 불리는 녀석이었는데 사원살모사라고 불리기도 한다. 어떤 사원에 가면 이 살모사들을 엄청 많이 볼 수 있는데 불쌍하게도 독니가 다 빠진 채 그냥 관광객들에 볼거리로 전략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자꾸 빛을 비추니 우리 쪽으로 공격을 많이 시도했다. 그냥 대충 사진만 찍고 더 위험해지기 전에 자리를 떴다. 


마지막 돌아가는 길에 가까이서 보고 싶었던 쥐사슴을 볼 수 있었다. 사실 입구보다 쥐는 아닌데 자꾸 조그마한 녀석들을 우리 앞을 빠르게 도망 다녔는데 그 녀석들이 쥐사슴이었다. 촬영을 하고 싶어도 워낙 민첩해서 찍을 수가 없었는데 한 녀석이 그냥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움직이지 않는 것도 쥐사슴이 천적인 비단뱀으로부터 피하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다. 비단뱀도 움직임을 감지해서 먹이를 사냥하기 때문에 쥐사슴에 이런 방어 전략을 단순해 보일지라도 꽤 유용한 전략이다. 쥐사슴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우제류에 속한다. 우제류는 짝수 발굽을 가진 동물들을 말하는데 예를 들어 소나 사슴 등이 있다.  

싱가포르에 고유종이자 보호종인 초록나무달팽이(Green Tree Snail; Amphidromous atricallosus temasek)
정말 작았던 쥐사슴(Lesser mouse-deer;Tragulus kanchil)
와글러 살모사 또는 사원살모사(Wagler's Pit-viper; Tropidolaemus wagleri)

조금 더 숲에 오래 있고 싶었지만 막차 시간에 맞춰서 맞춰놓은 알람이 울리고 말았다. 지금 못 돌아가면 몇 시간을 걸어야 할지 알 수 없기에 깔끔하게 포기하였다. 개리는 또 보자며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고 쿨하게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갔다. 가끔 서로에게 안부를 묻는 개리에게 다시 한번 감사함을 이 글을 통해 전한다. 개리 덕분에 책 또는 논문에서나 보던 동물을 직접 볼 수 있었다. 동물원이 아닌 야생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은 큰 행운이다. 그 행운에 감사하며 기뻐하며 다음날을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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