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
1대 1 보습학원
일본에는 강사와 학생을 1대 1로 붙여주는 학원이 많다. 그러면서도 가격은 저렴하기에 많은 학부모들이 1대 1 학원을 찾는다. 시간당 약 삼천 엔을 내면 1대 1로 선생님이 붙어서 수업을 해준다. 선생님은 대부분이 대학생, 시급은 천 엔부터 시작해서, 오래 다니면 오래 다닐수록 조금 더 붙여준다.
내 부모님은 모두 강사셨다. 아버지는 수학 과외, 어머니는 과학 학원. 부모님을 따라서 가르치는 것을 해보자고 첫발을 내디딘 곳이 일본의 1대 1 학원이다.
이 곳에서 강사는 교과 과정을 몰라도 된다. 매번 학생을 맡는 강사가 바뀐다. 매 수업이 끝나면 강사는 숙제와 진도 진행, 학생의 성실도를 사등분된 A4 크기의 공간에 간단히 적으며, 진도는 교과서 혹은 학원 책에 의존한다. 진도를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가, 일본의 교과 과정도 모르는 초보 강사에게 '이끌다'라는 동사는 붙일 수 없다.
강사를 한 달 정도 하게 되면, 중학교 2년생들이 요즘 배우는 부분이 어딘지 가늠이 잡힌다. 그야, 같은 나이 때의 학생들이 같은 책의 같은 페이지를 내게 펴보이니까. 나는 강사로서 학생에게 배운다.
일본에선 고등학생이 되기 위하여 시험을 봐야 한다. 고등 교육이 의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사립고와 공립고 둘 중 한 곳을, 시험을 통해 합격하여 들어가게 되며, 내가 본 모든 학생이 고등학교로 진학하려 했다. 나는 고등학생에게 나의 수능 전략을 어떻게 가르칠까 고민해보며 들어왔는데, 중학교 과정의 수학과 과학, 그리고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학원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링크 1, 링크 2에서 대강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학생들
학원 학생들의 평균 점수는 놀랍게도 50점 부근이다. 50점이라니, 이토록 정규 분표에 따르는 표본 집단이 있단 말인가,라고 나는 생각했다. 평균 점수 50점에 걸맞게 아이들은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모두가 함께 보는 시험을, 나름대로의 최선으로 준비하며, 틀린 문제를 다시 보며 고쳐 풀지만, 틀린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던지, 점수 3,4점에 연연하며 모의고사를 풀지는 않는다.
아이들의 심심해하는 눈빛, 수다를 떨면서 웃는 눈빛, 한국인 선생님을 신기해하는 눈빛이 나는 부럽다. 내가 이 아이들 만할 때 가졌던 눈빛에 이런 감정이 있었던가, 여느 때처럼 친구들과 적당히 놀다가, 적당히 숙제를 하고, 적당히 부활동을 하는, 그런 적당함이 나의 시간에는 없었다. 나는 과학고등학교에 진학하려 했었고, 화학, 물리 따위를 공부했었으니까.
아이들에게 꿈을 물어보는 것이 내 취미인데, 평균의 아이들에게는 특이하게도 꿈이 없다. 가고 싶은 대학이 없는 것은 내게는 더욱 특이했었지만, 이들에겐 당연하겠다. 적당함이 주는 인생의 여유로움과 절박함은 공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뱉어놓고 보면 언듯 맞는 말을, 나는 모르고 살았다.
절박함을 이겨내고 도착한 이상향에는 여유가 있을 줄 알았던 내 망상은 역사가 꽤 긴데, 가방끈을 늘이면 늘일수록 점착되어 벗겨낼 수가 없었던 것을 학생들이 깨우쳐 줬다. 하긴, 내가 바라고 바라던 대학과, 취직 잘된다고 그렇게 소문이 났던 이상향, 공학부가 내게 준 것은 쇠와 생산의 논리였지, '여유' 같은 게 아니었으니까.
조금은 다른 학생
꿈을 물어봤을 때, 조금은 윤곽 잡힌 이야기를 하는 중학생 3년생이 두 명 있었다. 한 학생은 사진 모델로 돈을 벌어 인터넷 방송을 하고 싶어 했고, 한 학생은 간호사를 희망했다.
인터넷 방송을 하고 싶어 하던 학생은 부모님 두 분의 사정을 첫 수업부터 내게 꺼냈다. 학생의 아버지께선 주말에도 일을 나가셨고, 어머니께서는 저녁 여덣시에 돌아오신다. 하루에 50분 수업, 단 한 수업만 듣고 가는 이 학생은, 집에 돌아가면 혼자 저녁을 먹는다. 그러고 나서 책도, 컴퓨터도 없이 스마트폰으로 하루를 보낸다.
간호사를 하고 싶어 하던 학생은 한부모 가정이라는 이야기를 첫 수업부터 내게 꺼냈다. 공립고 한 곳, 사립고 한 곳에 응시한 이 학생은 공립고 결과 발표를 앞두고 무섭다는 이야기를 두 번째로 내게 꺼냈다. 사립고는 떨어졌어?라는 물음에 합격했다고 대답한 학생은, 사립고에 가게 될까 봐 무섭다는 말로 시작해서, 가정을 힘들게 할 순 없다며 고등학생이 되면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일본은 고등학생부터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다).
두 학생은 언듯 봐도 보통 학생들과는 다른 눈빛을 가졌다. 지루하다던가, 재밌다던가, 하루가 지나면 잊힐만한 가벼운 감정이 스치며 짓는 표정과는 성질이 다르다. 인터넷 방송 이야기를 하며 즐거워하던 학생의 눈빛은 침전되어있었고, 간호사를 꿈꾸는 학생의 눈빛은 공교롭게도 취직을 걱정하는 내 눈빛과 닮아 있었다.
이상향 혹은 절박함이 여유로움을 대신한 두 학생에게 50분 동안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숫자가 어쨌느니 따위가 아니었다. 사진 모델로 돈을 벌어서 컴퓨터를 사고, 컴퓨터로 인터넷 방송을 하고 싶다는 학생에겐, 인터넷 방송을 하게 되면 즐거울 것들을 말했고, 간호사를 꿈꾸는 학생에게는 간호사가 되면 즐거울 것들을 말하다가, 아르바이트는 무엇이 편한지, 무엇이 재밌는지, 몇 시간 일하면 얼마를 벌지 떠들었다. 분명 선생으로서 할 말이 아니었는데, 후회가 된다.
중학생 3학년, 나보다 열 살 쯤은 어린데, 침전되어 반쯤 눈을 감고 밑을 보던 두 학생이 일, 돈 이야기에 눈에 초점이 잡히면서 질문을 하던 게, 눈빛과 나이의 이질감이, 기억에 달라붙어 희석되지가 않는다.
미련하게도 오늘 상상을 했다. 그 학생이 내 자식이고, 학원에 보냈는데 강사가 위로랍시고 내뱉은 이야기를 듣고 오는 상상을. 나는 강사라는 호칭이 어울리지 못하는 모자란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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