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8일 작성
가졌던 것을 놓으면 사라질 뿐이다.
사라진 곳은 비어있는 채로, 바뀌지 않았다.
적당한 시간을 보내는데, 다시 시간을 채울 수가 없다.
다만 언덕과 노을에 뉘어지곤, 내 자리를 잃어버렸다.
내 삶에서 나는 주어였는데, 약을 먹곤 그만 목적어까지 밀려난 것이다.
소리가 나에게 얘기했고, 사물에서 튕겨 나온 빛이 나를 마주 보았다.
우울증을 떼어내니 몸뚱이뿐이었다.
해체되어 수술대에 눕혀진 내 옆에 뉘인 나의 소망과 욕망 그 모든 것이
육신의 욕구를 제하고 탈락된 것이다.
기저의 우울, 종양이 남긴 빈자리를 채우지 못한 채
피와 살만이 들어차서, 내가 육신에 희석되었다.
눈을 부릅뜨고 찾기엔, 내 몸은 그리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것은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겠지만,
모두마다 다른 답을 가져오고, 그것이 저마다 다른 인생이겠지요.
저는 오답을 내버리고 만 겁니다. 오답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다시 다른 길을 향해 걸어야 함을 알게 되고, 저는 또다시 오답을 내버리곤 저만의 길을 갑니다.
저의 오답은 꽤나 주류로부터 먼 것이라서, 남들이 기피하는 길을 걸어오게 된 것인지,
남들이 가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길을 걸어 들어간 것인지 애매해질 때쯤
수면장애와 우울증은 오답의 벌처럼 들러붙었습니다.
이 것이 질병이 아니라는 생각만 2년 했습니다.
수면 장애가 심해져 오후 네시에 일어나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보통의 생활과 마찰이 발생하여 가게 된 병원에서
저는 어느 정도 정상과 거리를 벌리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특별해진다는 것, 그런 면에서 제 자신이 특별해졌으니 좋다고 말할 수 있겠군요.
열쇠를 주머니에 넣었음에도 그것을 5분마다 확인하고, 종국에 까먹는 것,
자신의 가방이 열려있다고 생각해 5분마다 뒤를 돌아보고 가방을 살펴보는 것,
아무 일 없어도 살이 빠지는 것, 밤마다 심장이 뛰는 것,
내려가는 고개와 눈꺼풀을 제 자신이 모르는 것,
하루에 한 번은 그만 울고 마는 것이 제 자신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맞겠습니다.
성질이 어딘가 뒤틀리곤 이것이 불가역성을 가진 뒤틀림이라는 것을,
탈락된 사회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처방받은 약이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었습니다.
다만 일상의 리듬을 주야에 맞추어 복구시키는 것이죠.
망가진 리듬이 단번에 바뀌는 감상은 정말 대단합니다.
시끄러운 지구에서 단번에 달로 순간이동하는 것을 상상해보시면 좋습니다.
난해하기 짝이 없는 마음이 단번에 조용해지는 감각은 실로 저의 주체가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끌어당기는 중력이 없어진 내가 어떻게 될 것만 같아서,
부유하는 마음을 붙잡기 위해 키보드 부여잡고 나의 5월을 쓰게 된 겁니다.
Photo by Sharon McCutcheon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