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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ungwon Kim Jul 20. 2022

I’m Francesca

“아임 프란체스카” 


어제도 대화 도중 내가 정색을 하고 이렇게 말하자 아이들이 깔깔거리고 웃는다. 요즘 나는 자주 프란체스카가 되곤 한다. 모처럼 히트 친 유머 코드의 유효기간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 식구들에게만 통하는 이 joke를 처음 쓴 것은 몇 주 전이지만 사실  프란체스카는 오래전부터 내 안에 있었는지 모른다.


농담이라는 것은 구성원들이 경험을 공유하고 있을 때 통하는 것이 아니던가. 꽤 긴 시간이 지났지만 이 간단한 2 형식 문장에 담겨 있는 기억은 우리 가족에게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있다. 1년여 동안 여행에 굶주린 탓일 게다. 우리는 허접한 농담에 얹혀서 기꺼이 추억 여행을 떠난다. 당시엔 그리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었지만 지금은 가장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있는 2019년의 베네치아로.


2년 전 이태리 여행을 계획할 때 아이들이 반드시 여정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노래를 불렀던 도시 중에는 피렌체(Florence), 로마(Rome)와 함께 베네치아(Venice)도 있었다. LAX에서 출발 토론토를 경유해 Venice로 가는 항공편이 있어 우리는 그곳에서 여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베니스 내에는 육상 교통수단이 없기 때문에 이동을 할 때 걷거나 수상버스/택시를 타는 수밖에 없다. 따라서 숙소를 정할 때 동선이 짧고 이동에 용이한 곳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했다. 또한 베니스에서만 맛볼 수 있는 낭만을 즐기기에 적당한 곳을 찾아야만 했다. 우리가 이러한 조건을 충분히 만족시킬 뿐 아니라 리뷰도 좋은 airbnb를 찾아 예약에 성공했다.


기나긴 비행 끝에 우리가 ‘물의 도시’에 도착한 것은 아침 해가 45도의 각도에서 비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비행기에서 밤새 한 잠도 못 잔 탓에 지칠 대로 지쳐있었지만 여행의 첫 발걸음을 내딛는 우리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수로를 끼고 있어 운치가 있고 입구에 화사한 꽃들이 만발한 정원을 갖추고 있는 우리의 숙소는 사진에서 봤던 그대로였다. 집주인이 방문객을 친절하게 맞아주고 유용한 여행 팁도 주었다는 Review를 봤었는데 오늘은 그녀가 다른 볼일이 있어서 부득이 오지 못하고 대신 자기 어머니가 우리를 맞아줄 것이라는 text message를 받았다. 할머니는 영어를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고, 이태리 말로 뭔가를 열심히 말했는데 이번에는 우리가 전혀 못 알아들었다. 손짓 발짓으로도 통하지 않아 결국엔 그녀의 딸에게 전화를 해서 겨우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산마르코 광장의 비둘기 숫자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점 외에는 우리 부부가 배낭을 메고 처음 왔던 2002년과 변한 게 없었다. 우리는 걷기도 하고, 수상버스도 타며 낭만적인 베니스의 곳곳을 즐겼다. 아이들은 아이폰에 자기들의 추억을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리는 아름다운 석양에 물든 베니스 섬을 충분히 즐기고 나서야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는 위치도 좋았지만 내부도 깔끔했고 침대도 편안했다. 긴 하루 동안 겪었던 일들을 말로 풀어내며 웃음꽃을 피운 후 우리는 잠자리에 들었다. 이번 여행은 시작부터 아주 좋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소동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곤히 자던 우리를 아침 일찍 깨운 것은 요란한 기계음이었다. 창 밖을 내다보니 집과 연결된 수로에서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묵고 있는 집과 관련된 공사임에 틀림이 없었다. 집주인에게 전화를 하니 하수 장치에 문제가 생겨 공사를 하는 중이라고 했다. 창 밖에서 인부들과 이야기하던 여성분이 역시나 집주인이었다. 여행 둘째 날인 이날은 아침부터 스케줄을 짜 놓았기 때문에 일찌감치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샤워를 마치고 팬티 바람으로 거실로 나오는데 밤새 잠가놓았던 출입문이 딸깍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아까 창을 통해 봤던 집주인이 집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그리고 화가 나서 이게 뭐 하는 거냐고, 우리의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게 어디 있냐고 말했다. 팬티바람의 내 앞에 마주 선 집주인은 당당하게 나에게 대답했다. “I’m Francesca”.


내가 팬티바람으로 낯선 여자와 마주쳤던 사실이 뭐가 그리 대단한 사건이었을까. 그런데도 우리는 2년이 지났는데도 프란체스카라는 이름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최근 가족들과 저녁을 먹으며 얘기하던 중 내가 “I’m Francesca”라는 말을 하자 모두들 배를 잡고 웃고, 큰 딸은 멋진 joke라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내가 말을 했던 타이밍은 학교에서 누군가 자신이 가진 권력을 남용해서 다른 사람의 권리와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면서도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경험하며 그것의 부당함을 이야기하던 와중이었을 것이다 


당시엔 화가 났었지만 그때 그 경험이 지금도 나쁜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아이들도 혹시 베니스에 다시 가게 된다면 프란체스카의 집에 다시 가보고 싶고 그녀를 만나고 싶다고 얘기한다. 작년 베니스의 바다 수위가 올라가서 대성당을 비롯 많은 가옥들이 침수되었던 적이 있다. 그 뉴스를 보며 가장 먼저 떠오르고 걱정이 되었던 것은 베니스의 유서 깊은 성당이 아니라 우리가 머물렀던 집과 집주인 프란체스카였다. 


가족들, 또는 친한 사람들이 모였을 때 우리는 각자가 겪었던 크고 작은 프란체스카의 경험을 이야기를 하는 일이 많이 있다. 그런데 그것이 일종의 방어기제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내가 “아임 프란체스카”라는 농담을 하면서다. 제삼자를 비난하는데 한 목소리를 내거나, 비난의 강도를 더 높이는 것은 자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이기 위한 것이거나 아니면 사실은 자신도 같은 부류의 사람이지만 그걸 감추려고 오버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내가 아이들에게 호평받은(?) 이 농담을 자주 사용하는 빈도수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나는 프란체스카가 되곤 한다. 사실 프란체스카를 알게 되기 훨씬 전부터 나는 프란체스카였다. 


요즘 베니스에 사는 진짜 프란체스카의 귀가 간질간질할지도 모르겠다. 언제 이 농담의 expired date이 지날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좋은 추억을 떠올리며, 내 민낯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도 되었으니 그녀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아직은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미국에서는 팬데믹의 끝이 저만치 보인다. 아, 떠나고 싶다. 여행이 고프다. 낯선 곳으로 가서 새로운 사람들과 문화, 경치를 마주하고 상상과 기대를 넘어서는 예상치 못한 해프닝을 겪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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