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y May 03. 2020

[생각법] 신입 변호사들이 가장 많이 한다는 실수

00 - 프로의 생각법은 어떻게 다른가?

본 글은 아래 질문들에서 출발했다.

신입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무엇일까?

충분히 경험을 쌓은 숙련된 경력자(이하 '프로')가 신입 시절의 실수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면 무엇 덕분인가?

신입과 프로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다면 신입이 더 빠르게 프로가 되도록 도울 수 있지 않을까?


공통점이 아닌 차이점을 발견하는 '대조'는 배움에 있어서 중요한 작업이다. 경영계의 구루 짐 콜린스는 '위대한 기업'을 만드는 요인을 발견하기 위해 성공한 기업들(디즈니, 3M, GE 등)과 그렇지 않은 기업들에 대한 대조 연구를 시작하며 말했다.

우리가 성공한 기업들의 공통점에 집중한다면 하나의 명확한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그들은 모두 건물을 가지고 있었다.'

- 짐 콜린스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Built to last)>

소기업 창업자인 필자에게 이 결론은 큰 통찰을 주지 못한다(부동산을 확보해두는 게 이점이 있을지 몰라도). 공통점 찾기의 맹점이다.

집단내 공통점이 아닌 집단간 차이점을 발견하는 대조를 통해서 짐 콜린스는 위대한 기업을 만드는 요인을 밝히고 여러 기업가들의 성장을 도울 수 있었다.

이 글에서는 '파트너 변호사'와 '신입 변호사'의 차이를 통해서 직업인이 적용해볼 수 있는 인사이트를 찾아보고자 한다.


왜 하필 변호사인가? 로펌은 흥미로운 표본집단이다. 로펌은 신입과 프로가 가장 가까이 붙어서 일할 수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일반 대기업은 신입사원과 차부장급의 전투력이 직접적으로 대조되기 쉽지 않다(맡는 일이 다르기도 하다).
이에 반해 로펌은 '파트너 변호사'와 '어쏘 변호사'라는 심플한 2종의 직급으로 구성된 조직구조로, 엄청난 '짬'의 프로와 갓 출근한 신입도 부대끼며 함께 일할 수 있는 곳이다.

오차장과 함께 일하지 않고서야 대기업에서 고수의 짬을 피부로 느끼기는 쉽지 않다

이전에 한 로펌에서 파트너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형님(이하 '김파트너')께서, 신입 변호사가 가장 많이 한다는 실수를 넋두리처럼 이야기해준적이 있다.

그 일화를 통해 신입과 프로의 차이를 이해해보도록 하자.


1. 파트너 변호사 '김파트너'의 넋두리(feat. 요즘 신입 '신변호사')


상황은 대략 이렇다. 기억하기 쉽게 상대 신입 변호사를 '신변호사'라고 해두자.

[상황]
새로 A 사건을 수임한 상황. 파트너 변호사 '김파트너'와 신입 변호사 '신변호사'가 팀이 되었다.

김파트너: (의뢰 받은 A 사건의 개요를 설명한다) 이런이런 사건입니다. 리서치 메모 부탁 드릴게요. 

신변호사: (잠시 생각한다) 아무래도 이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대법원 판례가 있는데..(그리고 풍성하게 판례와 법조항을 이야기한다)

신변호사는 무슨 실수를 한 걸까? 김파트너가 지적한 대목은 이것이었다.


이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정리해놓고 보면 '뭐 이렇게 빨리 포기해?', 또는 '수임한 사건인데 다짜고짜 어렵다고 할 수 있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신변호사였던 적이 있다. 정말 안 될 것 같은 일을 상사가 들고 왔을 때를 생각해보자. 거기에다 신변호사에게는 강력한 레퍼런스가 있다. 무려 대법원 판례다.

신입은 '될만한 일'을 '안 되는 일'로 오해하고 빠르게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즉, 신입과 프로는 '된다'와 '안 된다'에 대한 판단의 기준치가 다르다. 위와 같은 일은 업계를 막론하고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필자가 몸을 담고 있는 디지털 마케팅 업계의 사례를 보자.

[상황]
페이스북 중심으로 광고를 하다가 검색광고로 매체 확장을 한 B 브랜드. 검색광고 초기 세팅 후에 성과가 나오지 않자 팀장이 담당 마케터에게 물었다. 

박팀장: 브랜드 검색 외에는 성과가 아직 좋지 않네요. 이보다는 더 잘 나와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하지요?

최마케터: (잠시 생각한다) 이 브랜드는 검색광고에서는 매출이 잘 안 나는 업종인 것 같아서, 아무래도 검색광고를 늘리기엔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팀장이 'a나 b를 해보는 건 어때요? 그 외에도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라고 의견을 주었고, 여러 시도를 해본바 검색광고 성과를 개선할 수 있었다...라는 사례는 너무나 많다.

김파트너가 이야기한 A 사건 역시 결국에 승소로 끝났다고 한다.

'신입 변호사가 가장 많이 하는 실수'
에 대해 김파트너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안 되는 사건이다'하고 포기해야 하나? 그렇게 하면 의뢰인이 변호인에게 사건을 맡기는 의미가 없어. '이러저런 판례가 있기는 하지만, 이 사건은 이런이런 점에서 달라 다른 케이스입니다. a로 보이지만 이런 점 때문에 b에 해당되며, 때문에 B가 적용되어야 합니다. 관련된 판례로는 이것저것이 있습니다.’라고 할 수 있도록 접근해야지."

들어보면 당연한 말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처음 A 사건을 접한 신변호사에게 있어서 이 접근법은 당연하지 않았다. 


2. '신변호사'와 '김파트너'의 차이 


신변호사와 김파트너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 글의 목적을 다시 상기하면 그 차이를 밝혀서 김파트너의 역량을 신변호사에게 이식하는 것이다.


간단하게는 물론 소위 '짬'의 차이일 것이다. '짬'은 중요하다.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vibe)'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하지만 우리가 '짬'이라고 할 때, 단순히 경험이나 지식의 총량만을 말하지는 않는다. '짬'이라는 단어의 뉘앙스에는 그 이상이 담겨 있다.


짬은 지식을 의미하는가? 현존하는 대한민국 법령을 최대한 담은 대법전. 애초에 다 볼 수 있는 분량이 아니다.


김파트너와 신변호사의 일화에서 김파트너가 보여준 차이점 세 가지를 꼽으면 아래와 같다.

'긍정적인 태도' - 승리를 강력히 열망하고 되는 방법을 찾으려 했다

'관련 지식' -  승리의 단서가 될 수 있는 사례들을 알고 있었다

'논리적 사고' - 승리 가능성이 있는 경로를 간파했다


첫 번째는 '긍정적인 태도'다. 이 일화에서 얻을 수 있는, 다소 당연해 보일 수 있는 교훈은 '언제나 방법은 있다'라는 긍정적인 태도로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되게 만든다'라는 말을 참 좋아하다. 이 태도의 여하에 따라 직업인의 퍼포먼스가 극적으로 갈리기도 한다. 너무도 중요한 부분이지만 지금 여기서 짚으려는 건 아니다.


두 번째는 '관련 지식'이다. 경력에 따른 차이가 가장 쉽게 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위 케이스를 보면 김파트너의 '될 이유들에 대한 지식'만큼이나 신변호사 역시 '안 될 이유들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오히려 실무에 가까운 신입이 문제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관련 지식'은 더 많이 알고 있는 경우도 많다. 관리자는 자신이 모르는 문제에 대해서도 실무자에게 조언을 해줘야 할 때가 있다.


세 번째는 '논리적 사고'다. 이거다. 이게 필자가 얘기하고 싶은 주제다.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에서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김파트너에게 있고 신변호사에게는 아직 없는 것, 그것은 프로다운 '논리적 사고'다.


다시 말해, 경력을 통해 쌓은 '지식' 자체가 아니라 경력을 쌓으면서 변화한 '사고구조'와 '생각법'이 중요하다.


3. '신변호사'와 '김파트너'의 머릿속에서 벌어진 일


그럼 '생각법'에 있어서 초보와 고수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신변호사와 김파트너의 사고흐름을 한 번 상상해보자.


① 신변호사의 사고는 어떻게 작동했을까?

신변호사의 사고도 굉장히 논리적이고 타당하게 전개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변호사라면 지식노동자로서 처음 커리어를 시작하는 이들 중에서 가장 많이 공부하고 가장 똑똑한 표본집단에 속할 터이다.

위 사례, A 사건이 '결론 A'에 도달해야 승소한다고 해보자. 이때 신변호사의 사고흐름을 간단히 살펴보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 복잡한 사건의 내용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최대한 도식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필자가 대략 듣긴 했는데 이해할 수는 없었다).

신변호사의 사고 흐름 - 실선: '경로 1'

'전제 1'과 '전제 2'가 사실이라면 '결론 A'에 도달하고, 승소한다. '전제 1' 또는 '전제 2'가 사실이 아니라면 '결론 B'에 도달하고, 패소한다. 위 사고흐름에서는 신변호사는 붉은색 실선(경로 1)의 흐름으로 사고하여 패소에 도달하였다.

이 사고방식은 '연역적 사고’라고 한다. 아주 보편적인 예시를 들면 아래와 같다.

인간은 모두 죽는다. (전제 1)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 (전제 2)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결론)

연역법이란 '보편적인 사실'들로부터 '구체적인 사실'을 도출해내는 방법이다. 의심의 여지없는 진리에 도달하는 가장 손쉬운 추리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이는 지식을 증가시키는 사고방식은 아니다. 전제들이 이미 내포하고 있던 사실의 부분들을 별개로 꺼낸 것일 뿐이다.

즉 연역적 사고, 연역법은 절대적으로 기존 지식의 양에 의존하는 논증방법이다. 이 사고 방식의 문제점은 기존 지식의 범위를 벗어나는 새로운 문제에는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다.


② 김파트너의 사고는 어떻게 작동했을까?

김파트너가 같은 사건을 접했을 때, 어떻게 생각했을지 살펴보자.

김파트너의 사고 흐름 - 점선: '경로 2'

어떤 인사이트가 있는지 위 도식을 잠깐 보고 음미해보도록 하자.

...

충분히 보았는가? 그렇다면 함께 보도록 하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무엇인가? 신변호사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길, 붉은색 점선(경로 2)이, 즉 승소하는 길이 생겼다.

이 길은 도대체 어디에서 생긴 것인가?

김파트너의 머릿속을 상상해보자. 김파트너의 머릿속은 대략 이런 식으로 사고 흐름이 전개되었을 것이다.


'결론 A가 나와야 이긴다. 이 사건이 a사건으로 보이지만 b사건이라고 하고(전제 3-1), 거기에서 c라는 걸 증명할 수 있다면(전제 3-2) 결론 A에 도달할 수 있다.'


주어진 전제들을 바탕으로는 '경로 1'을 통해 '결론 B(패소)'로 갈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신입 변호사의 사고는 멈추지만, 파트너 변호사의 사고는 어떻게든 '결론 A(승소)'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전제들을 상상해내고(초록색 계열 블록), 그것을 검증하는 방법을 고안한다.

이러한 방식을 논리적 추리 기법으로는 '가설연역법'이라 한다. 결론을 위해 필요한 전제를 가설로 상정하고 검증한 뒤에 이를 통해 결론을 연역하는 것이다. 

[가설연역법의 단계]
관찰/연구 → 가설 수립 → 가설 검증 → 법칙 도출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며 간다.' 이길 수 있는 전제가 없다면 전제 자체를 상상한다. 이게 프로의 생각법이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며 간다' - 대산 신용호 회장님의 전기의 제목이기도 한 문구. 직업인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문구다.


'가설연역법'은 '연역법'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기 위해 개발된 것으로 흔히 자연과학/사회과학 등 과학연구 분야에서 활용된다. 연구 분야처럼 전문적이고 의식적으로 가설연역법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탁월한 직업인의 머리는 자동적으로 가설연역적으로 작동한다. 즉 탁월한 직업인의 사고방식은 탁월한 과학자의 사고방식과 닮아 있다.


이것이 프로와 신입의 생각법의 차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가설연역적으로 생각함으로써
안 되는 것으로 보이는 일도 되게 만들 수 있다.


나가며 - 직업인의 '생각법'과 '사고엔진'

지금까지 고수와 초보의 사고방식의 대조를 통해 직업인의 생각법인 가설연역법에 대해 알아보았다. 가설연역법의 작동방식과 원리는 위와 같이 굉장히 간단하다. 그러면 이 원리만 알게 되면 우리는 바로 저렇게 멋지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자동차가 어떻게 움직이는가 생각해보자. 내연기관에서 연료를 연소하고, 압력으로 직선운동을 만들어내고, 그걸 회전운동으로 바꾸어서 자동차 바퀴에 전달하여, 자동차가 움직인다. 원리는 굉장히 간단하다.

[자동차의 운행 원리]
연료 연소 → 압력 발생 → 직선운동 전달 → 회전운동 전달 → 운행


하지만 이것만 안다고 바로 굴러가는 자동차를 만들 수는 없다. 동력원이 되는 '엔진'이 필요하며 그 물리적 구성은 다소 복잡하다.

가설연역법이 운행 원리라면 논리적 사고는 자동차의 엔진이다. 즉, 가설연역법이 직업인의 '생각법'이라면 논리적 사고는 직업인의 '사고엔진'이다. 


직업인의 생각법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는 이 사고엔진, 논리적 사고의 구성을 이해해야 한다. 


본 매거진, <직업인의 기본기>를 시작하면서 필자가 꼭 다루어보고 싶었던 주제 중 하나가 바로 이 '논리적 사고', 소위 로지컬 씽킹(Logical Thinking)이다. 이를 다루기 위해 [생각법]이란 꼭지로 매거진 내 시리즈를 준비하였으며 본 글은 프롤로그격으로 준비하였다.

'논리적 사고'는 누구나 중요하다고 이야기는 하지만, 경영 컨설턴트나 기획자 등의 일부 직업인의 전유물처럼 취급되기도 한다. 우리가 목표로 해야 할 것은 맥킨지 컨설턴트급의 논리적 사고력이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우리의 다른 역량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수준의 논리적 사고력을 갖추는 것이며, 탁월한 직업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수준의 논리적 사고력은 누구나 키울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필자가 본 시리즈 [생각법]에서 정의하는 논리적 사고는 아래와 같이 네 가지의 부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메타적 사고

추상적 사고

가설적 사고

목적지향적 사고


직업인의 생각법은 이 사고들의 유기적인 조합을 통해서 구현된다. 

다음화에서 그중 첫 번째 사고인 '메타적 사고'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P.S. - <생각법> 파트에서 다루는 범위


필자는 본 <직업인의 기본기> 여는 말에서 직업인의 역량을 '개인 생산 능력 x 협업력'이라고 정의하였으며, '개인 생산 능력''비지식 역량+지식 역량'이라고 하였다.


이번 파트 <생각법>에서 다루는 '논리적 사고'는 위에서 '비지식 역량'에 해당한다.

필자는 지식에 의존하지 않는 역량을 '비지식 역량'이라고 정의한다. 여기에는 논리적 사고 외에도 여러 역량과 강점이 포함될 수 있다. '매력'도 훌륭한 비지식 역량이다. 에이전시 마케터로 일하던 사람이 갑자기 인하우스 기획자 포지션으로 이직을 했다면 '구글 광고의 입찰 방식' 같은 지식은 쓸모 없어지지만 클라이언트를 사로잡던 매력은 여전히 강력한 무기로 활용될 수 있다.

논리적 사고를 갖춘다는 것은 매력을 갖추는 것보다 쉬울 수 있다. 앞으로 쓸 <생각법>을 통해서 그 길을 안내하고자 한다.

'여는 말'을 읽어보지 않은 독자라면 맥락 파악을 위해 일독해보기를 권한다.


https://brunch.co.kr/@jayjayjay/10


매거진의 이전글 8시까지 드리기로 했는데 8시 4분... 어떻게 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