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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던민화 Oct 13. 2021

손을 쓴다는 것

지난주 모처럼 휴일인 토요일(한글날)을 맞아 이 소중한 새벽 시간을 평소처럼 보낼 순 없다 싶어 꽃 시장에 가서 색색의 거베라와 믿거나 말거나 초 신상이라 아직 이름도 없다는 노오란 장미를 사 왔다. 돌아와서 작업대 위에 펼쳐놓고는 어떤 종류의 꽃을 사던 나는 항상 비슷한 색을 집어온다는 사실에 한 번 놀라고, 오늘 골라온 꽃들이 지금 작업 중인 그림에 쓰인 색과 똑같은 배색이라 한 번 더 놀랐다. 벗어날 수 없는 분홍의 굴레...


꽃들을 다듬고 작은 다발을 만들어 자주 가는 카페에 갖다 드리고 앉아 모닝커피를 마시는데 사교성 좋은 강아지와 함께 와 옆에 앉아있던 손님은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가져간 책을 조금 읽다가 왔고, 그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돌아와서 여름부터 내내 붙들고 있던 작업 몇 개를 마무리하고 이틀 뒤, 집에 가서 일하려고 들고 온 노트북을 켰다가 여지없이 옆길로 새버린 나는 검색창에서 "뜨개 실"을 찾아보고 있었다. 집에 손뜨개 책이 하나 있었는데 그게 아직도 있던가? 하고 뒤져보니 한 일 년 전쯤 책장 정리하며 백 권은 족히 내다 버렸을 때 '다시는 뜨개질에 내 에너지를 할애하지 않겠다'고 그 책도 정리했던 것 같다. 어렴풋한 기억뿐... 책장에서 다시 컴퓨터 앞으로 돌아와 실을 장바구니에 담고, 바늘도 고르고. 겨울이 다 가기 전에 머플러 하나 정도는 뜰 수 있을까? 분명 그냥 하나 사는 게 더 싸고 더 예쁘고 정교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내 손으로 만들어 보고 싶은 건 유희를 갈망하는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 자문하며 장바구니에 담긴 것들을 결제했다. '아 정말 쓸데없는 것만 안사고 살았어도 내가 벌써........ '라고 자책감 비슷한 걸 아주 조금 느끼며. 


그 '쓸데없는 것'에 우리는 참 많은 시간과 체력과 돈을 할애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누군가의 눈엔 영 쓸데없이 보여도 자신에게만큼은 즐겁다면 그걸로 이미 쓸모가 있는 것 아닌가? 늘 합리적이고 유용한 것만 찾으며 살면 인생이 얼마나 재미없을까. 기계화 따윈 없었던 먼 옛날의 공예품을 볼 때마다 나는 그 섬세함에 감탄한다. 인간은 손을 쓰는 것에 이렇게 진심이란 말인가! 필통 하나 만드는데 이렇게 섬세함을 담을 일인가! 도대체 저런 문양을 손으로 파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슨 생각이 머릿속에 들긴 했을까. 그저 무아지경이었을까. 


두 달 반쯤 남은 올 한 해를 보내며 과연 뜨개질을 할 시간이 있을지, 몇 줄이나 떠 볼런진 모르겠다. 한 해가 두 달 반쯤 남았다는 사실에, 여러 가지 작업의 압박에 옥죄어 오는 가슴을 부여잡고 오늘은 오늘의 일을 하며 보내야지.




벗어날 수 없는 분홍의 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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