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탄신일이 다가오면 서울 여기저기 연등이 걸린다. 어린 시절 내가 살았던 동네에서는 연등을 달았던가. 아마도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오래된 사진을 보다 도시와 연등이 보이면 나는 그곳을 서울이라고 쉬이 짐작한다. 다시 말해 도시에 핀 연등은 내가 기억하는 서울의 단면이다.
이번 석가탄신일에는 다시 열린 광화문 광장에 연등이 피었다. 퇴근 후 그곳을 걸으며 2가지를 생각했다. 먼저 경복궁 앞에 놓인 정암사 수마노탑에 대한 반가움이었다. 작년 겨울 오들오들 떨며 멀리서 바라만 보고 갔던 탑이 서울 한복판에 놓여있다니. 마치 그날 왜 그리 서둘러 갔냐고 나에게 따지는 것 같았다.
눈 내린 영월이 보고 싶어 강원도로 떠났던 지난겨울. 나는 만항재로 가는 길에 정암사라는 절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 큰 절은 아니었지만 여행의 길목에 가지런히 자리하고 있어 외면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날이 춥지만 않았다면, 그리고 대웅전이 대대적인 공사에 들어가지만 않았다면 조금 더 머물렀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여정이 급한 나머지 대웅전 밖의 스님께 합장 인사를 드린 뒤 곧장 나와버렸다. 많고 많은 연등 중에 수마노탑에 눈길이 간 건 그때의 그 아쉬움 때문이리라.
걱정하지 마시라, 정암사는 곧 다시 갈 테니. 나는 짧은 인사를 수마노 탑에 던지고 돌아섰다. 경복궁 앞은 연등으로 빛나고 있었고 사람들은 거리의 가로등 사이를 빠르게 지나갔다. 탑은 그곳이 제자리인 것처럼 서 있었고 나는 몇 번이고 그 모습을 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