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가고 싶은 사람과 거리두고 싶은 사람
○ 계속 이어가고 싶은 관계와 대화
대화가 즐거운 사람이면 함께하고 싶다. 그리고 다음 모임도 늘 계획하게 된다. 나는 모임을 만들고 주기적으로 이어가는데 익숙한 사람이라 순간의 경험이 순간에서 끝나지 않기를 늘 바란다. 대화가 즐거운 사람은 크게 세 가지다. 재미있거나, 유익하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
재미있는 사람은 떠올리기 쉽다. 본인의 일이 아닐지라도, 가령 관찰한 내용이라도 맛깔나게 담아내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관찰자 시점'에서 해설과 주석을 첨가하여 이야기의 감칠맛을 살린다. 듣다 보면 현장감도 느껴진다. 마지막 결과를 듣지 않고서는 화장실도 가기 어렵다. 이야기가 쏜살같이 전개된다. 막힘이 없다. 탄력과 속도감 끝에 다다른 마지막엔 반전이나 한 줄 평 이 숨어있다. 화룡점정이다. 이런 이야기는 마치 스포츠 경기와 같아서 한번 스치면 끝까지 몰입하게 되고 다 끝나고 나서야 몸에 주었던 힘이 풀린다. 정신을 차리면 벌써 술잔이 여러 번 비워져있다.
유익한 사람은 뛰어난 침술사 같다. 이야기의 맥을 짚어 필요한 정보와 방향을 제시한다. 좋은 선배, 상사, 조언자를 만나면 이런 기분이 든다. 단순히 아는 것이 많다는 것에서 더 나아가 듣는 이에게 필요한 내용을 적절한 방식으로 전달한다. 또한 단순히 새로운 정보를 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대화가 깊어질수록 듣는 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조각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정리, 배열된다. 기존과 다른 정보가 아닌 기존과 다른 시선을 알려 주는 것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첫째로 솔직하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허황된 말로 속이거나 자신을 뽐내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이야기가 곧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말의 허황으로 스스로를 훼손하지 않는다. 둘째로 신뢰가 간다.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성찰과 반성을 할 줄 아는 사람이란 뜻이다. 지나간 일을 돌이켜 살펴본다는 뜻이고, 그 가운데 자신의 잘못이 있으면 인정하고 고치려 하는 사람이다. 설사 관계에 문제가 생긴다 하더라도 이를 감지한 순간, 설령 상대방이 사과를 요구하지 않더라도 먼저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이다. 셋째로 정이 많다. 자신의 삶을 내어 타인에게 내어 보이는 이는 타인의 삶에도 잘 공감한다. 타인의 성공에는 진심으로 기뻐할 줄 알고 타인의 고통에 진심으로 슬퍼할 줄 안다.
이런 사람과의 대화는 그 자체로 삶의 활력소이자 충전소다. 소재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이들은 삶이라는 실을 바탕으로 충분히 좋은 이야기를 직조할 수 있다. 만약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재미있거나 유익하기까지 하다면 금상첨화다.
○ 이어가고 싶지 않은 관계와 대화
반대로 거리를 두게 되는 관계도 분명히 있다. 이들도 여러 가지 특성이 있는데, 문제는 '나쁜 놈들은 손잡고 함께 온다'라는 말처럼 나쁜 특성을 하나만 가진 사람보다 여러 개 가진 사람이 훨씬 많다는 점이다. 듣는 이의 입장에서 '도저히 못 참는' 몇 가지를 선정해두고 그 기준으로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본적인 예의나 인성적인 문제를 제외하고 대화의 패턴을 기준으로 할 때 거리를 두고 싶은 사람은 다음과 같다.
1) 남의 이야기만 하는 사람
소음을 불러일으킨다. 회사에서 나누는 잡담의 거의 99%는 남의 이야기다. 남의 이야기는 크게 2가지 문제가 있다. 첫 번째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 이야기의 결론(말하는 이의 생각)이 없다.
회사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A 선배와 밥을 먹는데 오래전 퇴사한 B 선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함께 근무하던 시절 B 선배와 술을 많이 마시며 친해졌다고 말했다. 그러자 A가 말했다. "B 씨가 술을 마셔요? 나는 B 씨 술 안 마신다고 알고 있는데" 익숙한 패턴이었다. 나는 누구에게, 언제 그런 이야기를 들었냐고 물어봤다. "그건 기억 안 나죠" 나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않고 그냥 알겠다고 했다. 회사에서 사람들은 남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정작 이야기에 나오는 당사자와는 커피 한잔해보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다. A 씨와 B 씨도 실제 밥 한 끼 함께한 적이 없다.
이 사례에서 남의 이야기만 하는 사람의 두 번째 특성도 함께 발견할 수 있다. B 씨가 술을 마시든, 마시지 않든 그것이 지금 이 자리와, 우리 관계와, 우리 대화에 무슨 상관인가. 아무런 영향도 없다. 하다못해 A 씨의 술을 먹자는 제안에 B 씨가 "저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라고 거부한 적이 있었다면 모를까. 이야기는 그렇게 방향을 잃고 그 순간 주저앉았다. 태초에 갈 자리 없이 태어난 이야기였다.
2) 남에게 대화의 책임을 강요하는 사람
피로를 불러일으킨다. 이건 쉽게 말해 물음표 살인마다. 침묵이 이어지는 것은 싫고, 자신이 대화를 이어나갈 능력도 의지도 없으니 타인에게만 말을 계속 시키는 것이다. "주말에 뭐 했어요", "이번 주말에 뭐 해요?", "휴가 계획 없어요?" 물론 이런 질문이 깊은 대화로 들어가는 출입문일 수도 있지만 경험한 그런 일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여러 개의 질문을 던져서 자신이 원하는 말을 듣고 싶어하거나(답정너 스타일), 상대방의 답변 중 자신이 아는 소재가 나오면 그것만 물고 늘어지는 '소재 추심형'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소재(단어나 인명)이 나올 때까지 끊임없이 물음표를 이용해 대화를 자르고 넘겨(swipe) 버린다.
이런 유형은 자신의 원하는 소재를 만나 이야기를 하다가도 금방 방향을 잃고 헤맨다. 그러면 혼란을 스스로 해결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전가한다. 한번은 이런 대화도 있었다. "야 내 친구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회식하면 게임을 한 뒤에 꼴찌에게 식당 쓰레기통을 머리에 씌워 버린다더라 하니까" 나는 그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뒤에 화자의 생각이나 의견이 당연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화자가 물었다. "야, 안 이상해?" "이상하네요" "안 충격적이야?" "충격적이네요" 그러자 화자가 말했다. "근데?" "네?" "근데 왜 가만히 있어" 나는 더 이상 말을 하기 싫어 화제를 돌려버렸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말을 하지 않고 고요히 있는 순간을 견디지 못한다. 그 순간이 아무리 짧을지라도 마찬가지다. (엘리베이터 안,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시간 등) 그리고 자신은 대충 말해도 상대방이 성의 있게 대화를 이어나가 주기를 바란다.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이런 사람들은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대화를 하고 싶은지 알지 못하면서 역설적으로 상대방이 그것을 알아차려 충족시켜주기 바란다. 이들은 대화 상대가 아니라 기쁨조가 필요한 것이다.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관계다.
3) 대화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는 사람
허무를 불러일으킨다. 기본적으로 대화를 주의 깊게 듣지 않고, 어떤 사람(상대방)과 대화했는지 보다 지금 이 순간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중점을 두는 사람이다. 즉, 대화보다는 수다에 가까운 사람들이고 말없이 견디지 못하는 2번 유형의 사람들이 기억력 역시 좋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깊은 관심이나 애정이 없기 때문에 정작 중요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연예인 가십이나 SNS를 통해서 퍼지는 정체불명의 정보(가령, '맥주는 거품을 많이 내야 제대로 따르는 것이다' 등)은 기가 막히게 기억하고 대화 때마다 이야기한다. 이는 상대방이 누구이건 상관없이 통용될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미 말했던 소재를 반복해서 말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처음 안 사실이면 상대방은 분명 모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오해가 내장되어 있는 유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해 역시 상대방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것에서 기인한다. 그들에게 상대방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대명사일 뿐이다.
이런 사람과의 대화는 무용하다고 느껴지기 쉽다. 진지한 말을 해도 쉽게 휘발되어버리고, 오히려 정반대로 기억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슬픈 위안까지 따라오게 된다. 되도록이면 거리를 두고, 대면하게 된다면 기계적인 리액션으로 대화가 되도록 빨리 끝나는 쪽으로 유도하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