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진 Jun 27. 2023

#39 새벽과 닭칼국수

갓 자정을 넘겼다. 00시 18분, 나는 닭칼국수를 삶고 있다. 며칠 전 후기까지 썼던 바로 그 가게의 칼국수다. 칼국수는 다 거기서 거기라는 고정관념을 깨준 곳이라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밀키트를 판매하 고 있었다. 사실 국수 그 자체보다 겉절이를 함께 판매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잠깐 고민했다. 밀키트를 많이 접해보지 않은 사람으로서 섣부른 판단이 오히려 좋았던 인상을 해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니 이미 결제가 끝나 있었다. 


내가 맛집을 선정하는 기준은 다음과 같다. 한 곳에서 5년 이상 장사한 곳, 수 차례 방문해도 맛의 퀄리티가 변하지 않는 곳, 핵심메뉴에 집중한 곳. 얼마 전 찾았던 그곳은 한 곳에서 5년 이상 장사한 곳이긴 했지만 아직 단 한번 방문했을 뿐이었다. 아직 밀키트까지 맛있으리란 보장을 하기 어려웠다. 어쩔 수 없는 척 맛집을 선정하는 기준에 하나를 추가했다. 밀키트를 판다면, 밀키트도 맛있을 것.


나는 칼국수를 즐겨 먹지 않는다. 딱히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찾아 먹은 적은 거의 없다. 가끔 명동에 들르면 명동교자를 찾는 수준에 불과하다. 그 외에는 칼국수 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는 그저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종종 접할 뿐이다. 겨울이니 따뜻하고 간편하게 집에서 몇 번 먹어볼 수는 있겠지. 어차피 많이 구매한 것은 아니니 맛없으면 얼른 치워버리자며 충동구매를 서둘러 정당화했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리니 2번이나 재구매 버튼을 누른 나를 마주할 수 있었고 자정이 넘어 오늘의 3번째 국수를 끓이게 된 것이다. 맛집의 기준에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하루에 두 번 이상 먹어도 괜찮은 곳.


대충 글을 끄적이는 동안 칼국수가 다 완성되었다. 10분도 채 되지 않아 삶아지니 이 또한 장점이 아닐 수 없다. 양도 1.5인분은 되는 것 같은데 왜 자꾸 삶게 될까. 아무래도 나는 칼국수의 매력에 빠져들어 배가 부른 상황에도 정신력으로 국수 가락을 삼키는 것 같다는 망상에 빠져들기도 한다. 나는 왜 이곳을 이제야 알았을까. 평소에는 일기의 분량을 맞추는 것에 집중했지만 오늘은 칼국수의 상태에만 집중하고 싶다. 아직 먹기 전이지만 아마 내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육수, 면발, 고명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는 내일의 나에게 맡긴다.


-


2022년 1월 6일 처음 쓰다.

2023년 6월 27일 고쳐 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