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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Feb 15. 2024

연연하지 않기 위해서

'집착하여 미련을 가지다' 국어사전으로 찾아본 '연연하다'의 의미다. 생각해 보면 살아오는 동안 참 많은 것에 연연해 왔던 것 같다. 


   부모님이 싸울 때마다 가족이 깨어질까 봐 두려워하고, 자라면서는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외톨이가 될까 봐 두려워하고, 새로운 만남 앞에서는 이 관계가 언젠가 끝나버릴 것을 미리 두려워했다. 그런 두려움들을 남들에게 들키지 않으려다 보니 오히려 모든 관계에 자꾸만 집착하고 미련을 가지게 되었다.


   버려지지 않고 싶을수록, 집착하고 미련을 가질수록 내가 지키고자 했던 것들은 반대로 더 빨리 내게서 멀어져 갔다. 가장 최근까지도 텅 비어버린 공허한 마음을 어쩌지 못해 눈물로 하루를 보내는 날들이 많았다. 인생은 본래 외롭다지만 내 삶의 궤적 속에서는 그 외로움의 깊이가 유난히 거대하고 지독하게만 느껴졌다.


   못난 마음을 감추기 위해 여러 가지 것들로 나를 꾸미고, 여리디 여린 속을 들키지 않으려 애써 가시를 세우며 살아오는 동안 진짜 나를 드러내는 방법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몇 년간 계속해서 글을 써오면서 충분히 나를 표현하고 있다고 믿었는데, 진짜 내 감정은 밑바닥에 숨겨둔 채 그럴듯한 글만 쓰고 있었나 보다.


   막상 진짜 감정을 쓰려고 하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써야 할지 전혀 생각이 안 난다. 가득 채워진 척했던 그럴듯한 말들을 넘어 나를 표현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는 공허 위에 내던져진 것처럼 그 어떤 글줄 하나도 생각이 나질 않는다. 제대로 된 글럼프를 맞이한 듯하다. 


   괜찮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인정의 말들에 취해 정작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는 걸. 사방이 비어 있는 막막한 풍경 앞에 선 후에야 깨닫고 배우고 있다. 나도 알지 못하는 순간부터 꽉 막힌 감정의 호스가 뻥 뚫려 콸콸 쏟아지게 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조금 더 잘 쓰고 싶어 연연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고 싶어 연연하던 뽕도 다 빼야 한다. 사실은 너무 두렵다. 내 못생긴 마음이 드러나면 외면당하고 버림받을까 봐 무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용하고 고요하게 내 감정의 물줄기가 졸졸 흐르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래야 더 나다운 글을 쓸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연연하던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내려놓으면 조금은 더 솔직해질 수 있다면 좋겠다. 최소한 괜찮은 척해왔던 가면을 벗고 진짜 내 모습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다. 그리고 그 모습도 사랑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


"나를 자꾸만 부르지 마 / 내 마음 문턱을 넘어오지 마 / 문을 열고 날 알아버리고 / 더 힘들면 어떡하려 그래. / 여기저기 닫힌 자리인데 / 못생긴 마음인데 / 누구도 아닌 너에게만은 / 보이고 싶질 않아 / 사랑 내 가슴을 닳게 하는 것 / 간신히 잦아든 맘 또 연연하게 하고 / 잊혀졌던 지난 상처 위에 또 하나 / 지울 수 없는 슬픈 이름 보태고 / 이내 멀어지는 것."_성시경, 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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