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는 열일곱 살, 어느새 퇴소까지는 2년밖에 남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아이의 숫자가 줄었고, 저출생을 극복하자는 캐치프레이즈가 여기저기서 등장했다. 하지만 갈수록 점점 더 상황은 심각해지고 이대로는 나라의 존폐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정부는 큰 결단을 내렸다. 바로 아이를 낳으면 국가가 대신 전담하여 키우겠다는 것. 많은 사람들은 그 결정을 환영했고 그렇게 내가 자라온 NC센터가 세상에 생겼다. 부모가 되고 싶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포기했던 이들은 NC센터에서 아이를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어마어마한 혜택과 양육 비용도 함께 주어졌다.
새로운 방식에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아이를 키우기를 원했다. 물론 돈이 목적이었다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정부가 의도했던 본래의 목적과는 달리 입양된 아이는 각종 학대와 범죄에 노출되었다. 정부는 부모 심사를 강화하고, 열세 살 이하의 아이는 입양할 수 없도록 했다.
아이들이 태어나면 부모가 양육할지, 양육을 포기할지 결정했고, 부모가 포기한 아이들은 NC 센터로 보내어 자라나게 했다. 그리고 열세 살부터는 우리의 보호자이자 선생님이기도 한 가디의 입회하에 부모면접을 볼 수 있었다. 센터 아이들은 부모 면접(parent's interview)을 발음이 비슷한 '페인트'라고 불렀다.
이 내용은 이희영 작가가 쓴 청소년 소설 '페인트'의 내용이다. 오랜만에 읽는 청소년 소설이라 낯설 줄 알았는데, 근미래 설정 자체가 요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아 순식간에 빠져들어서 읽게 되었다. 주인공인 제누 301은 1월에 태어나 센터로 들어오게 된 아이다. 소년은 시니컬하고 시크한 데다 겉으로만 사랑이 가득한 척하는 예비 부모 후보들의 속임수를 꿰뚫어 볼 만큼 눈치가 빠른 편이다.
아이들과 함께 토론하기 위해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어 보고 싶은 문제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소설 속에서 다루고 있는 진짜 부모란 어때야 하는가, 가족은 어떤 관계여야 하는가, 만약 내가 이런 상황이라면? 외에도 저출생의 대책은 바람직한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말로 있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와 같은 확장된 고민들까지 해볼 수 있게 하는 책이었다.
주변에 아이를 양육하는 많은 지인들이 있다. 연령대도 갓난아이부터 올해 고3이 되는 아이까지 아주 다양하다. 주변 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자녀를 양육하는 일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매우 힘들고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 나는 경험해 보지 않았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좀 더 아이의 입장뿐만 아니라 부모의 입장에서도 생각할 수 있는 눈이 생긴 것 같다.
멀지 않은 미래에 나에게도 부모가 될 기회가 마침내 주어진다면, 나는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가 또는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된다. 제누 301의 페인트 시간을 엿보는 것은 내게 숙제와 작은 희망을 동시에 안겨 주었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그만큼 서로를 가장 힘들게 하는 관계 대신 사랑하기에 한 걸음 뒤에서 아이를 배려할 줄 아는 양육자가 되고 싶다.
물론 겪어보기 전엔 모르는 일이다. 오히려 누구보다 사랑하기에 치열하게 아끼면서도 미친 듯이 싸우는 관계가 될지도 모른다. 그 모든 것들이 지금은 단지 꿈같아서 뭐라 말하지 못하겠다. 요즘은 좋은 청소년 소설이 정말 너무 많아서 어른임에도 배울 것들이 참 많다. 괜찮은 사람으로 계속 살아내기 위해 2024년에는 무엇이든 열심히 읽으며 나의 부족함을 채워두어야지 하는 다짐으로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