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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간도 안아줄 수 있을까?

by Pearl K

출간소식을 듣기 훨씬 전부터 과거의 삶의 시절을 돌아보고, 현재를 감각하며, 미래의 자신을 상상해 보는 내용을 담은 책이 기획되고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될 기회가 있었다.


코로나가 한참 유행하여 모든 것이 멈추었을 때, 공교롭게도 나는 몸과 마음이 모두 아픈 상태로 휴직 중이었다. 이전에 하던 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기에 조금 정신을 차리고 나자 앞으로는 그럼 무엇을 해야 하나,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글을 써 보자는 것이었다.


세계를 휩쓴 전염병 때문에 몇 년 내내 궁금했던 한 글쓰기 모임에 온라인으로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 그 찬스를 힘입어 수년간 묻어두었던 나의 목소리는 글이 되어 조금씩 바깥으로 터져 나왔다. 신기하게도 쓰면 쓸수록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늘어났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을 만큼 커다란 돌덩이가 되어 갇혀 있던 소리를 몇 년간 미친 듯이 토해냈다. 그제야 나를 짓누르고 있던 무거움이 덜어졌다. 밑도 끝도 없이 내뱉는 시간을 통해 만난 고마운 글동무들과 각각의 다정한 우주인들, 글을 쓰면서 온라인으로 글과 마음을 나눈 귀한 분들 덕분에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만 같던 시간을 넘어 터널의 끝까지 통과할 수 있었다.


나 역시 감사한 기회로 어느 책 한 권의 공저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지만, 단지 나의 글만을 수정하여 편집자에게 보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특별하게도 모든 공저자가 한데 모여 서로의 글을 끊임없이 읽고 조언하는 과정을 거친 글이다.


모든 글들은 서로 다른 사람의 삶이지만, 하나의 이야기 같았고, 낯설게 느껴지는 지점도 있었지만, 너무도 친숙한 내 이야기 같기도 했다. <너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를 읽으며 지나간 나의 시절과 청춘과 중년의 경계에 머물러 있는 지금, 아직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 노년의 내 모습까지 모두 엿보고 온 느낌이다.


한때는 과거의 고통 때문에 현재가 발목 잡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믿었던 시절도 있었다. 또 현재를 살아내는 것 자체가 버거워 더 나아질 미래만을 보느라 지금을 놓친 적도 많았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내고 있으면서, 미래에는 무언가 나아질 거라는 허황된 기대를 품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모든 나의 시간들을 이제는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아팠던 나도, 현재의 어중간해 보이는 나도, 언젠가 만나게 될 미래의 나도 결국 전부 나의 삶이라는 것이 새삼스럽게 깨달아졌다.


열두 명의 작가님들 덕분에 내가 지나온 나의 시간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좀 모자라도 부족해도 내 삶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어야겠다는 결심이 이제야 겨우 선다.



ps: 책을 읽는 동안 마음에 와닿는 문장들을 따로 메모했는데, 웬일인지 그 메모가 저장되지 않고 사라졌다. 책 속의 문장으로 멋지게 글을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변명을 덧붙여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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