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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사회에 계급은 왜 나눠?

by Pearl K

나는 98학번이다. IMF로 대한민국이 뿌리부터 뒤흔들리고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하던 시기에 대학생이 되었다. 마지막 남은 정규직은 95학번에서 끝났다는 말을 할 정도로, 내가 졸업할 무렵에는 그야말로 정규직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되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난 후에 내가 구할 수 있는 직장은 온통 비정규직뿐이었다.


처음에 대학을 졸업해서 취업을 하려고 생각할 때는 전공을 살려 도서관을 우선적으로 떠올렸지만, 대학도서관은 최소한 석사 이상, 공공도서관은 공무원 시험을 통과해야 했고, 학교도서관은 임용시험 티오를 내주지 않았다. 그중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보였다. 울며 겨자 먹기로 데이터베이스 회사라도 들어가려고 했지만 그것마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사회초년생으로 직장인이 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웠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기와 눈물과 배신과 굴욕을 당하며 2년 동안 살아남아야 했다. 때로는 3개월, 때로는 6개월짜리 프로젝트팀으로 눈에 띄지 않는 계약직으로. 수많은 곳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로 살아야만 했다. 마침내 학교도서관에서 일할 수 있게 된 해부터는 일말의 기대감이 생겼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 나다울 수 있다는 더 이상 잊힌 존재로 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말이다.


그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학교는 그야말로 정글이었다. 모두가 평등해야 할 직급의 사람들은 오히려 직급과 관계없이 사람을 더욱 세세하게 계급으로 나누었다. 교대와 사범대, 사범대와 일반대, 주류 교과와 비주류 교과, 교과와 교과도 아닌 비교과, 교사와 행정직원, 교직원도 아닌 비정규직. 나는 일반대에 비교과에 교직원으로도 안 쳐주는 비정규직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인간을 인간답게 대해주리라는 내 기대는 모조리 깨졌고,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처럼 가장 평등해야 할 학교에서 가장 이기적인 비교와 계급화, 분열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분리된 내 업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나는 그저 쓰고 버리는 계약직에 불과했다.


부당함을 부당하다고 말해야 하고, 정의롭지 못한 것을 정의롭지 못하다고 말해야만 살 수 있는 인간이라 나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찌그러져 있거나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래서 더 많은 학교들을 전전해야 했었던 건지도 모른다. 해야 할 것을 제대로 하는데도 불필요한 계급론으로 사람을 한없이 바닥으로 밀어버리는 일부 인간들의 행태에 질렸다. 나도 이젠 정말 나답게 살고 싶다.


김지혜의 책 <선량한 차별주의자>에 보면 그런 말이 나온다. “생각해보면 차별은 거의 언제나 그렇다. 차별을 당하는 사람은 있는데 차별을 한다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다. 차별은 차별로 인해 불이익을 입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차별 덕분에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나서서 차별을 이야기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차별은 분명 양쪽의 불균형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모두에게 부정의 함에도, 희한하게 차별을 당하는 사람들만의 일처럼 이야기된다. 이게 어떻게 된 걸까?”


2022년 올해로 사회인이 된 지 꼬박 20년이 되었다. 그동안 계급이 없는 곳에서 계급을 만들고, 사소한 것으로 사람을 평가절하하고 비교해 가며 차별을 받은 세월도 20년이라는 이야기다. 인도의 카스트제도처럼 눈에 보이는 계급보다 이 나라의 눈에 보이지 않는 부익부 빈익빈의 차별, 여성에 대한 차별, 소수자에 대한 차별, 자기와 다른 누군가를 당연히 차별시키는 태도가 더 고약하고 더 나쁘다.


한국은 분명 공식적으로 계급 사회가 아니건만, 군대에서부터 파생된 상명하복식의 문화는 사회 전반 곳곳에 무의식적인 계급 문화를 뿌려놓았다. 그 사실이 아주 답답하고 화가 날 때가 많다. 대한민국이 새로워지길 간절히 바란다. 공정하다고 착각하며 보이지 않는 차별을 심화시키는 잘못된 계급 문화에서 벗어나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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