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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활자와 자간, 여백 사이 그 어딘가

by Pearl K

서점이나 책방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판타지 소설을 꽤 좋아한다. 어린 시절 읽었던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가 그 첫 번째 시작이었다.


그 이후에도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바람의 그림자', 요슈타인 가아더의 '마법의 도서관', 발터 뫼르스의 '꿈꾸는 책들의 도시', 랄프 이자우의 '비밀의 도서관'까지 상상에 상상을 더해주는 책들을 잔뜩 읽어왔다. 가장 최근에 출간된 매트 헤이그의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아직 읽지 못했지만, 내게 도서관은 항상 꿈과 환상이 가득한 장소였다.


항상 재미있는 책을 읽을 때마다 책 속의 세계로 직접 들어가 등장인물을 만나는 상상들을 하곤 했다. 재스퍼 포드가 쓴 ‘제인 에어 납치사건'이 바로 이런 상상력을 발휘하여 쓰인 책이다. 대학원을 다니던 시기 새롭게 지어진 대학교 도서관에 과제를 위해 논문을 찾으러 갔다가 발견했던 책이었다. 배경은 1980년대 영국으로 실제 역사와는 다르게 문학과 예술에 전 국민이 열광하는 시대로 묘사되어 있다.


문학과 예술을 증오하는 최악의 악당 아케론 하데스가 등장하고, 그는 디킨스의 소설 원본을 훔쳐낸 뒤 그 안에서 등장인물 하나를 끌어내 살해한다. 그 순간 캐릭터는 소설에서 삭제된다. 하데스의 다음 목표물은 많은 이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에밀리 브론테의 '제인 에어‘다,


하데스를 막기 위해서는 제인 에어에게 경고를 해 주어야 한다. 주인공 서즈데이는 제인 에어 책의 활자와 여백 사이의 그 어딘가로 들어가 제인을 찾기 시작한다. 하지만 제인이 이미 떠나버린 저택에는 슬픔에 잠긴 로체스터 백작만 있을 뿐이다. 서즈데이는 로체스터 백작을 설득하여 제인을 찾고자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좋아하는 책들의 활자와 여백 사이 그 어딘가로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코니 윌리스의 '둠즈데이 북‘이나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같은 시대로 가고 싶진 않다. 그건 좀 무서우니까. 또 활자와 여백 사이에 들어갔다가 나올 방법이 무엇인지도 확실하게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조금은 두려운 마음도 든다. 하지만 활자와 여백 사이로 여행을 떠날 수만 있다면, 영영 돌아오지 못한다고 해도 이 여행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럼 어떤 책으로 여행을 떠나면 좋을까? 지금 문득 떠오르는 가장 가보고 싶은 첫 번째 여행지는 중학교 때 읽었던 스칼렛이라는 소설 속이다. 스칼렛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원작 소설인데 영화로 만났던 스칼렛 오하라도 너무 좋았지만, 원작으로 직접 들어가 씩씩하고 화려하며 자존심 강한 스칼렛과 그녀의 사랑 레트 버틀러를 직접 만나보고 싶다.


책 속에 묘사된 풍경들과 공간, 등장인물들이 맞이하게 되는 어떤 상황들 속에 내가 그것을 직접 지켜볼 수 있다면 얼마나 더 흥미롭고 재미있을까 하는 생각을 늘 했던 것 같다. 빨강머리 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등 추억 속 좋아하던 책들의 세계로 직접 들어가 그 활자와 여백 사이 어딘가를 여행할 수 있다면 그래서 책 속의 장면들을 직접 보고 경험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여전히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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