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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뼘 더 자라기 위해

by Pearl K

주인공인 다현이는 아직 관계에 서툴고, 예전처럼 또다시 ‘은따’를 당하게 될까 봐 불안한 마음이 크다. 그래서 ‘다섯 손가락’ 친구들이 하는 말에 동조하거나 선물 공세를 퍼붓는 등의 방법으로 자신의 불안함을 감추려고 노력한다.


사실은 가곡을 좋아하고 블로그에 진지한 글을 쓰기도 하지만, 다른 아이들에게서 ‘진지충’이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걱정되어 친구들에게는 자신다움을 감추고 ‘다섯 손가락’ 아이들이 원하는 모습을 연기하며 살아간다.


친구들이 싫어하는 노은유와 짝이 되고, 조별 과제까지 함께하게 되면서 다현은 자신처럼 주변 친구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은유에게 끌리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다섯 손가락’ 친구들과 은유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다현이. ‘다섯 손가락’ 아이들이 점점 자신을 멀리하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고,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설아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자신들이 욕하던 황효정을 무리에 들인 ‘다섯 손가락’. 결국 설아와 크게 싸우고 틀어진 사건 이후, 다현이는 오히려 자신을 둘러싼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을 느낀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다현이는 체리새우처럼 스스로의 껍질을 벗고 한 뼘 더 자라난다.


십 대에게 또래 친구와의 친밀감을 유지하는 것은 학교생활의 질을 결정할 정도로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다현이의 모습을 보며 과거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친구들과 나름 친하게 지낸다고 생각했지만, 이 아이들이 나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알 수 없어 불안했다. 누군가가 "너 걔랑 친하지?"하고 물으면, “나는 친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친구는 어떤지 모르겠어.”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6학년 때의 일이다. 나도 다현이처럼 반에서 친하게 지내던 다섯 명의 친구가 있었다. 이 그룹에서 나는 항상 깍두기 같다는 불안함이 있었는데 어느 날 2대 2로 패싸움이 일어났다. 기분이 상한 아이들은 나에게 상대방의 욕을 하며, "설마 박쥐처럼 이쪽저쪽에 붙는 거 아니지?" 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나는, 이 얄팍한 관계가 틀어질까 너무 불안해서 나도 모르게 다리를 떨기 시작했다.


패싸움을 하던 친구들은 시간이 지난 후 다시 함께 놀기 시작했지만, 같이 밥을 먹을 때마다 내 다리는 감춰둔 불안감을 표현하듯 마구 떨렸다. 그리고 그 해가 다 가기 전, 그룹은 다시 와해되었고 나는 혼자가 되었다. 엄마는 왜 그렇게 다리를 떠냐고 나를 혼냈는데, 아마도 그건 불안함의 신체화 증상이었던 것 같다.


주제 선택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이 책을 읽고 토론을 진행하면서 사실 조금 놀랐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아이들은 의외로 쿨했다. 친구들 간의 관계가 중요하긴 한데, 잘 맞지 않는 사람에게 억지로 맞춰주면서까지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반 친구가 나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면 그냥 혼자 지내는 게 마음 편하다고 말하는 아이들의 성숙한 사고방식이 놀라웠다.


비단 학창 시절뿐 아니라 사회에 나와서도 가장 어려운 것은 인간관계라는 얘기를 많이 듣게 된다. 회사 일이 많고 힘들어도 나를 격려해 주는 상사와 지지해 주는 동료들이 있다면, 그나마 버틸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사사건건 괴롭히는 상사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뒷말과 험담을 늘어놓는 동료들이 있다면 일의 무게나 양과 관계없이 직장생활이 매우 피곤하고 괴로울 것이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중심을 잃지 않는 비결은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며 나다움을 잃지 않는 것이다. 몰랐던 것들을 배우고 성숙해 가며 나이들 수 있다는 건, 어쩌면 인간만이 가진 특권이 아닌가 싶다. 인간이란 죽을 때까지 성장할 수 있는 존재라고 했던가. 학생들과 함께 나눈 책 한 권을 통해 오늘도 또 한 뼘 더 자라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매일 어제보다 나은 나로 계속 성숙해질 수 있는 삶이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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