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내 삶은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평온함을 누리고 있다. 머리도 복잡하지 않고 마음도 평온하고 몸과 속도 편안하다. 물론 고민이나 걱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모든 것들이 내 삶 전체에 영향을 끼칠 만큼 험난하지는 않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다만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이 평온함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됐냐는 것이다. 예전에는 잠깐 평화로운 순간이 있어도 곧 이 시간의 고요가 깨질 것에 대한 불안함과 두려움이 가득했었다. 조금 행복하면 이 유한한 시간이 언제 끝날까 불안했고, 조금 불행하면 이 불행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아 불안했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였을지 모르지만 마음속에서는 항상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천둥 치고 우박이 쏟아져 내렸었다. 항상 머리를 복잡하게 하던 태풍은 이제 그 위력을 다하고 잦아들었다. 지금 내 마음속의 날씨도, 나를 둘러싼 주변의 날씨도 꽤 맑음이다. 가끔 흐린 날도 있지만 전처럼 불안해 하기보다는 또 맑아지겠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동안의 괴로움과 힘들던 시간들이 이젠 아득한 과거가 된 듯하다. 사랑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고통에서도 벗어나 비로소 현재를 살고 있는 느낌이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지안이 받았던 "평안에 이르렀니?"라는 질문이 내게 주어진다면 "Yes!"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소란스러웠던 시절에서 벗어나 대부분의 것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마음을 품게 된 것만으로도 참 좋다. 그렇게 나답게 잘 늙어갈 수 있는 마음이 준비되었다. 특별할 일 없는 일상에 특별함을 부여하고, 소박한 삶에 소소한 기쁨을 누리며 매일 감사함을 누리며 살아가고 싶다.
딱 한 가지 고민이 있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평온함에 반비례하여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한때는 넘쳐나던 소재로 부러움을 샀던 적도 있는데, 모든 글소재가 0에 수렴하여 텅 비어버렸다. 항상 사건사고나 그때그때의 마음이 끌리는 대로 글의 소재를 정하던 습관에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된 건가 보다.
그래도 조급하게 마음먹지는 않을 생각이다. 천천히 하루하루 내 속도를 다시 찾아나가다 보면, 좁은 나로부터 시작되었던 글이 주변으로, 사회로 더 확장되어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는 지금처럼 점점 더 나다움을 즐기며 평온에 이르는 시간을 충분히 누리며 보내려고 한다.
이 평온함을 나의 언어로 글 속에 담아 넉넉히 나누며 살아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