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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un 12. 2018

반복되는 일상 위에 펼쳐지는 예술이라는 변주

패터슨, 2017

 생각할 시간이 없는 삶을 살 때, 우리는 여유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만큼 사색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누군가는 미래를 계획하거나 과거를 후회하는가 하면, 누군가는 자신의 삶을 벗어나 공상에 잠긴다. 사색은 '재충전'이나 '일탈'처럼 뭔가 중요한 이벤트 없이 매일을 살아가면서도 중간중간 누릴 수 있는 기쁨이기도 하다. ' <패터슨>은 사색을 통해 반복되는 일상을 염증이 아닌 축복으로 느끼게끔 하는 영화이다.


 패터슨의 일상은 남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 알람이 없이 조용히 눈을 떠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는 삶을 살았기 때문 아닐까? 상상해 본다) 아내에게 입맞춘 뒤 시리얼로 아침 식사를 한다. 늘 같은 출근길을 걸어 같은 노선을 달리는 버스를 몬다. 퇴근하고 나서도 똑같다. 사랑스런 아내가 차려준 저녁 식사를 마친 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 동네 펍에서 맥주를 한 잔 마시고 잠드는 일상. 특별히 불행하지도, 더 행복하지도 않고 그저 그렇게 같은 자리를 빙빙 돌며 살아간다. 그의 삶에서 시간의 흐름을 엿볼 수 있는 것은 작은 노트와 펜이다. 그는 버스가 출발하기 전에, 퇴근하고 잠시 짬을 내 꾸준히 시를 써내려 간다. 때로는 사랑에 대해, 때로는 인생에 대해. 


 패터슨이 빙빙 도는 일상을 살아가듯, 아내도 자신만의 원을 돌며 살아간다. 아침에 자신이 꾼 꿈을 남편에게 들려주고, 하루종일 집 안 곳곳에 패턴을 채워 그리고, 창의적인 레시피로 저녁 식탁을 차린다. 그리고 저녁 후에는 남편에게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다녀오라고 권한다. 패터슨이 반복되는 일상을 '시'로 변주한다면, 아내에게는 쿠키와 기타가 있다. 그녀는 주말에 마켓에서 팔 쿠키를 계속해서 굽고, 기타를 산다. 


 아내는 패터슨보다 자신의 꿈이 무엇인 지 분명하게 표현하고, 더 자주 대화 소재로 삼는다.  패터슨은 주로 듣고, 고개를 끄덕여 미소로 동의한다. 패터슨에게 자신의 일과와 바라는 바를 끝없이 이야기하는 아내와 달리, 그는 아내에게 자신의 시나 일상에 대해 수다를 떠는 경우가 좀처럼 없다. 세탁소에서 우연히 마주친 래퍼 아저씨나, 길가에 앉아 엄마를 기다리는 소녀, 외국인 시인과도 금세 대화를 이어가는 패터슨은 아내 앞에서는 듣는 역할을 꿋꿋이 지킨다. 아마 그의 가장 편안한 소통 방식은 침묵이 아닐까? 상상해 보았다. 때로는 말보다 글이 편한 사람들이 있다. 


 아내는 그의 시를 가장 좋아하고, 어쩌면 그의 시를 공유하는 유일한 사람인 듯 하다. 아내가 소중한 시들이 담긴 노트를 꼭 복사해 두라고 해도 패터슨은 차일피일 미룬다. 아무래도 그는 시를 지키기 보다는 계속 써나가는 데에 더 큰 관심이 있는 듯 하다. 써놓은 시로 뭘 하겠다기보단, 시가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기에 그저 쓸 뿐인 지도 모른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마을 패터슨 뉴저지는 영화에서 종종 나오는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와, 엘런 긴즈버그의 고향이다. 실제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는 <패터슨>이라는 제목의 시를 남긴 바 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그의 시에 감명 받아 이 마을이 궁금해 찾아온 일본인과 패터슨은 일면식도 없고, 같이 앉아 있는 장면만 봐도 웃음이 날 만큼 접점이 없어 보인다. 그런 두 사람이 오래전 살았던 시인을 떠올리며 대화를 이어 나간다. 


 세월이 오래 지난 뒤에도 사람들을 이어주고, 꿈을 꿀 수 있게 해 준 이름있는 시인들과 달리 패터슨은 익명의 버스기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는 그를 '시인을 꿈꾸는 버스기사'라고 부를 것이다. 하지만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도, 조금 평범한 일상을 살면 어떤가. 아침 식탁에 무심코 올려진 성냥갑에서 사랑을 떠올리는 이라면 누구나 그것만으로 온전한 시인이라고 불리울 수 있지 않을까. 영화 <패터슨>은 무엇을 먹고, 얼마를 벌 것인가만 생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골똘히 폭포를 바라보거나, 성냥갑을 응시하며 사색의 축복을 누리는 일상 그 자체를 한 편의 시처럼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노트를 잃어버린 채 허망해진 패터슨에게 일본 시인은 새 노트를 건네며 말한다. "때론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 최근 이미 쓴 페이지를 너덜너덜하도록 고쳐 써보려 애쓰고 있는 나에게 영화가 눈을 똑바로 맞추고 이야기하는 듯 한 대사였다. 왜 잊어버렸을까?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큰 사건이나 변화가 아닌 수없이 펼쳐진 백지를 매일 조금씩 채워 나가는 일상에 숨어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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