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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an 20. 2019

정확한 호명으로 맞서라 - 냉소주의를 멈추기 위하여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 레베카 솔닛

 고대 악마가 등장하는 공포 혹은 판타지 영화에서는 종종 주인공이 악마의 이름을 찾느라 문서를 뒤적거리는 데에만 영화 절반을 할애하곤 한다. 그 이유는 악마는 자신의 정체를 모르는 이들에게 더 강하지만, 정확한 이름을 호명 당하면 힘이 약해진다는 설화적 설정 때문이다. 비장한 눈빛과 목소리로 "너의 이름은 XX이지." 라는 대사 한 마디에 기세등등하던 악마가 콜라 김 빠지듯 힘을 잃는 모습은 간혹 영화에 따라 우습게 비춰지기도 하지만, 레베카 솔닛은 ‘정확한 호명’에 힘이 있다는 이 설화적 설정을 오늘날 우리 시대가 마주한 악에 맞설 힘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맨스플레인으로 페미니즘 도서의 선두에 섰고, 세계적으로는 침묵하는 주류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환경과 경제 정치 사회 전반에서 활약하는 레베카 솔닛의 신작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의 원제는 Call them by their true names, 즉 "그들을 진실된 이름으로 불러라." 로 번역될 수 있다.  




 이 책이 저자의 전작들에 비해 국내에서 반응을 많이 이끌어내지 못한 게 아쉽지만, 한 편으로는 그럴 법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종 문제나 사형 제도, 트럼프로 인해 불거진 미국 정치나 이민자 인권 등의 문제가 한국인의 주요 관심사가 아닐 수 있으니. 하지만 그것보다도 이 책을 읽어내는 과정이 오래 걸린 것은 ‘정확한 호명’을 위해 사회 문제들을 파고드는 집요한 묘사에 마음이 무겁고 불편해 한 호흡에 뚝딱 읽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이순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병폐를 조목조목 짚어가는 각 글 중간중간 우리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과거의 실패를 근거로 앞으로 펼쳐질 미래 또한 불가피한 일들이 일어날 것이고, 모든 일은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냉소주의에 저자는 ‘가능성을 격추시키고, 상황의 복잡성을 온전히 탐구해 볼 가능성까지’ 잡아먹는 위험한 생각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뉴스에 보도된 기업이나 정치 부패에 대해 ‘다들 썩었지 뭐’ 하는 식으로 가볍게 넘기는 태도는 겉으로는 비난하는 척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용서해 주는 셈이라고 비판한다.


 아닌 게 아니라 정치인들에 대해 대놓고 실망하는 모습을 보이면 ‘다 똑같지 뭐, 별 수 있나.” 식의 대응을 가장 많이 받게 된다. 언젠가부터 정치를 대화 소재로 올리면 무례한 사람이라는 인식마저 생겨나는 듯 하다. 누구나 발언권이 있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왜 정치에 대해 말하는 것이 불편해 졌을까. 아마도 어쩔 수 없는 문제로 열을 올리는 사람과는 대화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비단 정치 뿐 아니라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환경 문제마저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분류돼 감을 느낀다. 종이 빨대를 사용하는 스타벅스 매장에서 불편하다고 토로하는 동료에게 ‘그래도 필요한 변화라고 생각해요.’ 라고 말하면 어쩐지 분위기가 조금 어색해 진다. 답답해서 미세먼지가 심하다는 날에도 마스크는 끼고 싶지 않다는 이에게 ‘1급 발암물질이니 꼭 마스크를 써야해.’라고 권하기 위해서는 오지라퍼로 낙인 찍힐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친구들에게 환경 관련 국민청원에 동참해 달라고 링크를 보냈을 때 왠만한 사소한 잡담도 득달같이 반응이 오는 단톡방에서도 읽씹을 당하는 다소 마음 아픈 경험을 여러 번 겪어야 했다.



 레베카 솔닛은 ‘어쩔수 없지’ 라는 반응에 상처를 받고, 더욱더 과묵하고 조심스러워지려는 나에게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오히려, 지금 정도에서 단념하는 관심은 ‘세상을 방어하는 대신 자신을 방어’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믿는가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라고 역설한다. 수십 년 억압되어 왔던 여성의 목소리가 조금씩 주목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페미니즘에 대해 피로감을 말하지만,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연대하는 이들이 움직임을 이어나가고 있다. 페미니즘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야 하는 여러 어려운 운동 중 하나이다. 동물권 보호, 환경 오염, 정치 부패, 노인 혐오 등 우리의 관심을 필요로 하는 다른 수많은 영역들이 기다리고 있다. 아마도 작지만 더딘 움직임을 가능케 하는 것은 가장 쉬운 길인 냉소주의를 포기하고 어쩔 수 있다 라고 계속 믿는 것이 아닐까.


 "역사적 사건이란 직접적이고 정량적이고 즉각적인 결과를 내야지, 그러지 않으면 중요한 사건이 아니라고 보는 시각 탓도 있다. 무슨 볼링 이야기라도 하듯 말이다. 저 공이 저 레인에서 저 핀들을 쓰러뜨리거나 그러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힘은 볼링공이 아니다. 설령 그런 비유를 받아들이더라도, 그 볼링은 안개 속에서 수십년 동안 펼쳐지는 어떤 형이상학적 게임에 가까울 것이다.
공은 핀 하나를 쓰러뜨린 뒤 15년이 지나고서야 또 하나를 쓰러뜨릴 수도 있고, 우리가 존재마저 잊었던 전혀 다른 레인에서 스트라이크를 올릴 수도 있고, 쓰러진 핀에게 자식이나 정신적 후예가 있을 수도 있고, 그래서 우리의 시야와 예측 능력을 벗어난 곳에서 경기가 계속 펼쳐질 수도 있다. (...)
주류의 순진한 냉소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주변부나 좌파의 순진한 냉소주의자들도 자신에게 변화를 일으킬 역량이 있는지를 의심한다. 이런 생각은 변화에 필요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되도록 면제해주는 편리한 핑계로 기능한다." - 레베카 솔닛,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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