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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 Mar 19. 2024

울고 싶을 땐, 베토벤 '비창'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Pathetique 비창(悲愴)은 마음이 몹시 상하고 슬픔을 뜻하는 한자어


피아노 소리를 접한 건 막내 이모 때문이다. 서울에서 자취했던 이모는 우리 가족이 서울로 오면서 함께 살았다. 처음으로 이모에게 피아노를 배우게 된다. 그때 이모는 피아노과에 입학하기 위해 실기시험을 치르기 위해  연습을 하고 있었고, 매일 같이 테이프 안에 들리는 연주용 곡을 듣고 따라 치기를 반복했다. 그 곡은 베토벤 비창 3악장이다.  https://youtu.be/DNouyWhngck?si=FYifxAy3x2aQl2e4


이날 들었던 음악들은 지금도 힘들면 피아노 앞에 앉게 하는 힘이고, 유년 시절을 아름답게 기억하는 조각이다. 엄마가 바빠서 집에 없을 때도 음악이 있어서 외롭지 않았다. 이모가 집에 없는 날이면 베토벤 악보를 뒤져 음표의 한음 한음을치곤 했다.  이모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을 때 혼난적이 많다. 피아노 건반에 내 손가락이 동그랗게 말려 가지 않고 뻗어서 음이 옆으로 새기라도 하면 엄하게 30센티자와 모나미 볼펜으로 내 손등을 때렸다. 그럼에도 나는 마치 피아노 앞에만 앉으면 건반 위의 발레리나처럼 우아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우쭐거리기도 하고, 혼자서 악보 이것저것의 음을 따라 익혔다. 이모는 결혼으로 바이엘과 체르니 100까지만 교습을 해줬다. 그 이후 개인지도를 받지 않은 무레슨(?) 상태의 취미로 40대 중반이될때까지 피아노를 치게 되었다. 


클래식에 관심을 갖고 여러 음악을 들어왔지만, 그 중에서도 피아노 음악이 다른 소리에 비해 더 좋았다. 피아니스트들 공연에 유독 더 눈길이 가고, 예술의 전당이나 롯데콘서트홀의 클래식 공연장에 찾아가서 음악을 들었다. 미친 사람처럼 찾아다녔던 음악적 자양분을 만들어준 시간이었다. 음악을 찾아서 들으면서 마음의 위안을 찾아가고 있었다. 어릴 때 상처받은 내가 보이고 클래식 음악이 내 마음을 고요하게 해주었다.

백건우 피아니스트는 섬마을에 찾아가 클래식음악을 연주했던 적이 있다. 그때 연주했던 곡이 베토벤 비창 전 악장이었다. 섬마을 풍경을 배경으로 듣는 비창은 처연하고 아름답고 구슬펐다. 우리가 어느 장소에서, 어떤 피아니스트에 재현되는지에 따라, 동일한 음악을 아름답게도 비장하게도 허망하게도 들을 수 있다. 우리의 마음을 대변해 주기도 마음이 들여다봐지기도 한다.  https://youtu.be/TqtdehDHz_4?si=ljZ7uooaLrQUuDXn

베토벤 비창(patheque) 2악장은 조성진 피아니스트 버전을 추천하고 싶다. 그는 한국 최초의 쇼팽 콩쿠르 우승자답게 쇼팽 곡을 계속 연주해 왔다. 그러다가 레파토리를 베토벤, 헨델로 확장하는 모습들을 보였다. 유튜브에 '베토벤 비창'만 찾아도 그의 연주가 나올 만큼 조회수가 높다. https://youtu.be/xaHjlsGo1ck?si=wvP2pyl4zpAu3iwt

 베토벤은 32개의 소나타를 남겼다. 그 시기 후견인이었던 리히노프 스키 후작에게 헌정된 베토벤 소나타 제8번 C단조 op. 13은 초기 소나타 중 가장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이 작품에 직접 Pathetique 비창(悲愴)이란 이름을 표제로 달았다는 것이 곡의 의미를 잘 전달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베토벤은 편지에 다음과 같은 구절을 남겼다. “나를 다시 삶으로 불러온 것은 오직 나의 예술뿐이었다. 아아, 나의 내면에 있는 모든 것을 불러내기 전에 이 세계를 떠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것 같다.” 라고. 

비창은 단순하고 명료하게 들린다. 특히 2악장은 들을수록 선명하고 아름다워서 사람들이 많이 듣는 악장이다. 느린 곡의 선율이 가을의 향기를 느끼게 한다. 그의 생각을 다음 비창을 듣노라면, 내 마음 한구석은 서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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