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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Apr 18. 2022

부모님의 스마트 워치

농부도 스마트 워치가 필요하다구! 


엄마가 스마트 워치 이야기를 꺼낸 건 지난겨울이었다. 

“야, 폰 시계 얼마나 하냐?”

“어? 폰 시계가 뭐야?” 

“그 왜 있잖아. 전화받는 시계 있잖아 왜.”

“아~ 스마트 워치? 그건 왜?”

“현대네 엄마가 그거 차고 다니는데 그걸로 전화도 받고 문자도 보는 게 얼마나 편해 보이든동 나도 하나 살라고”

“엄마. 근데 그거 어떻게 쓰는지는 알아?”

“야! 배우면 되지. 나도 배우면 다 할 수 있어!”

엄마의 야무진 대꾸에 나는 머쓱해졌다. 그렇다. 우리 엄마는 새로운 걸 배우는 일에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스마트 워치를 엄마의 생신 선물로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더랬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 엄마가 또 스마트 워치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엔 아빠를 타깃으로.

“폰 시계 하나 사 주이소”

“그게 뭐가 필요하다고 그 비싼걸 사? 사놓고 쓰지도 않을 거를 쯧쯧”

아빠는 본인을 제외한 사람에게 돈 쓰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다. 게다가 아빠의 말투에서 짜증이 잔뜩 묻어났고 엄마의 간절함도 그에 못지않았기 때문에 가만두면 싸움으로 이어질게 뻔했다. 어차피 사주기로 마음먹은 나는 그 자리에서 말했다.

“엄마, 내가 사줄게 내가! 까짓것 내가 사준다고!”

내 이야기에 반색한 것은 엄마가 아니라 아빠였다.

“그럼 내꺼는!”


결국 나는 두 사람에게 스마트 워치를 사드렸다. 다행히 막냇동생이 스마트 워치 설치를 해주었고 엄마와 아빠는 내가 사 드린 스마트 워치를 매일 하고 다닌다. 한창 일하는 와중에 전화를 받으려다 떨어뜨리기를 여러 번, 액정이 깨진 적도 여러 번, 물에 빠뜨린 적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굳이 전화를 꺼내지 않고 바로 손목시계에서 통화 버튼을 누르고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스마트 워치가 필요했던 것이다. 엄마가 말하길, 엄마보다 아빠가 더 스마트 워치에 만족을 한다고 했다. 엄마는 그나마 문자 메시지도 보내고, 카톡으로 이모티콘도 자유자재로 보낼 수 있지만 아빠의 스마트폰은 유튜브 동영상을 보거나, 문자 메시지를 읽는 수준이라 스마트 워치를 사서 보내면서도 아빠가 안 쓰면 어쩌나 걱정을 했었는데 이 모든 게 나의 기우였던 모양이었다. 


작년에 로봇 물걸레 청소기를 사면서 부모님 댁에 무선 청소기와 무선 물걸레 청소기를 사서 보내드렸다. 나는 다이슨 무선 청소기와 로봇 청소기, 로봇 물걸레 청소기를 구매해서 아주 편하게 사용하면서 한 번도 부모님 집에 있는 청소기(이 또한 내가 다이슨을 사기 전에 쓰던 청소기였다.)를 바꿔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집에 내려가서 부모님 대신에 집 청소를 하다 청소기 때문에 짜증이 난 적이 많았는데도 말이다. 돈 쓰지 말라고, 지금 있는 청소기도 좋다고 하시던 엄마는 이제는 유선 청소기를 어찌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세상이 이렇게 좋아졌는데 촌 구석에 앉아서 그런 것도 몰랐다고 할 때는 왜인지 더욱 미안해지는 것이다. 


며칠 전, 오랜만에 집에 내려갔다. 엄마, 아빠와 함께 커피 한잔을 마시는데 아빠가 갑자기 핸드폰을 어디에다가 뒀는지 모르겠다며 온 집을 뒤지기 시작했다. 나는 커피를 마시다가 뿜을 뻔했다. 

“시계에 내 폰 찾기 기능이 있는데, 왜 핸드폰을 찾으러 다녀?”

“이 시계에 그것도 되나? 아이고 얄궂어라. 별게 다 된다이?”

나는 각 잡고 앉아서 부모님께 스마트 워치 사용법을 알려드렸다. 

“야, 근데 이건 왜 사용설명서가 없노? 박스에 없드라? 요새는 전화기도 글코 마카다 설명서가 없드라.”

아, 그렇지. 생각해보면 예전에 핸드폰을 사면 작은 안내 책자가 동봉되어 있었는데 요즘에는 핸드폰을 사도 사용설명서가 없으니 부모님이 그들의 스마트폰에, 스마트 워치에 있는 기능을 알 리가 없을터, 나는 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한창 바쁘게 일하고 있는 와중에 엄마가 전화가 갑자기 안된다며 아빠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오면 나는 짜증부터 내는 딸이었다. 

“난 또 무슨 일 난 줄 알았잖아! 아니 핸드폰이 안되는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러면 엄마는 슬그머니 

“아이고 바쁜데 미안하다야. 전화가 갑자기 안되니까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그랬지. 일해라이.”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런 날에는 일 하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오죽 답답하면 일하는 내게 전화를 했을까. 그렇게 내지 않아도 되는 짜증을 내고 자리에 앉아 있으면 어디에선가 본 글귀가 내 머릿속을 휘젓고 다닌다. 

‘부모는 내가 태어나서 인간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르쳐준 사람들'이라고, 

'심지어 나에게 똥 닦는 법까지 가르쳐준 사람들’이라고. 

내 부모가 국민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생활 전선에 나선 사람들이라는 것이, 그래서 그들의 언어가 거칠고 생활이 고리타분하다는 것이, 따라서 나와 부모님의 대화가 대체로 평행선이라는 것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이렇게 씻기고, 입히고, 가르친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니 이제는 내가 그들의 질문에 친절하게 대해야 할 때라고, 어쨌든 지금 부모님이 내게 물어온 것은 적어도 똥을 어떻게 닦아야 하는지는 아니니까. 


“야, 내가 이 시계를 이래 딱 차고 말이야, 모임에 갔는데 이런 거 찬 사람은 내빠이 없드라. 내가 그래 가지고 면장을 만나 가지고도 자랑을 얼마나 했는지 아나? 하하하”

아빠는 스마트 워치를 오로지 전화받는 데만 쓰면서도 왜인지 스마트 워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하나에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즐거워했다. 한 명은 과수원에서, 한 명은 고추밭에서 서로 스마트 워치로 통화를 하는 상상을 하면 나도 괜히 뿌듯해진다. 

“여보소, 30분 뒤에 밥 자시러 오소. 오늘은 고등어를 쪼매 꾸우까?”

“어, 알았어. 내 좀 있다 가께”


정말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스마트 워치가 작업복을 입고 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나타난 두 사람에게 어찌나 찰떡처럼 잘 어울리던지 나도 아빠처럼 여기저기에 자랑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저 스마트 워치 제가 사드린 거예요!’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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