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오지 않을 것 같은 시간들도 끝내 오고야 말았으니.
대략 한 달 전부터 나는 달리기를 다시 시작했다. 나의 달리기 목표는 30분 동안 쉬지 않고 달리기. 작년에는 25분 동안 쉬지 않고 달리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30분 동안 쉬지 않고 달리기에는 실패했더랬다. 지난겨울 동안 달리기를 쉬었기 때문에 다시 그 목표를 향해 조금씩 달리다가 걷다를 반복하고 있다. 지금은 3분간 달리고 2분 걷기를 반복한다. 매일 달릴 때도 있지만 야근을 한다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다거나, 비가 온다는 이유로 달리기를 쉴 때는 가장 마지막에 했던 코스를 반복한다. 그러므로 나의 달리기는 여전히 3분을 달리고 2분을 걷는 코스에서 정체되어있다. 3월 중순에 달리기를 시작할 때는 2분간 달리고 2분간 걷기를 반복했다. 다시 달리기를 시작한 첫날, 나는 내가 작년에 25분간 쉬지 않고 달렸던 것이 진짜였던 것인지 의심이 되었다. 2분이 마치 20분처럼 느껴졌다.
작년 봄, 오랜만에 오랜 친구들을 만났는데 한 친구가 달리기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했더랬다. 나는 지금껏 다양한 운동을 해왔고 또 새로운 운동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실제로도 그러했지만 단 한 번도 달리기가 포함된 적이 없었다. 달리기란 얼마나 단순하고 지루하고 고독한 운동이란 말인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게 하는 달리기는 또 얼마나 고통스럽고 가학적인 운동이란 말인가. 걸어서 갈 수 있는데 왜 굳이 달려서 가야 하는 것인가. 그것이 내가 달리기라는 운동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이었다. 그러나 친구가 달리기에 대한 극찬을 늘어놓자 귀가 얇은 나는 무엇에 홀린 듯 운동화를 비롯한 달리기 용품만 50만 원 가까이 주문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운동화 하나만 있으면 큰돈을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운동으로 달리기를 꼽는다. 그것은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 처음 달리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내가 꼭 필요한 것만 골라서 구입한 물품의 가격은 대략 50만 원이었다. 집으로 날아드는 택배 상자를 열 때마다 나는 반갑기보다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과연 내가 달리기를 할 수 있을까. 걷기는 좋아하지만 평생 뛰는 것을 싫어했던 내가 달리기라니. 이렇게 큰돈을 들여놓고 달리기를 하지 않으면 나는 정말 엄마 말대로 ‘돈 쓰는 귀신’이 될 터였다. 그리하여 작년 5월의 어느 날 저녁 나는 러닝용 타이즈를 신고, 기능성 티셔츠를 입고, 기능성 점퍼를 입고, 운동화 끈을 질끈 묶고 집 밖으로 나갔다.
그날 이후로 나는 퇴근 후에 달리기를 시작했다. 달리기 초보였으므로 ‘런데이’라는 어플의 도움을 받아 ‘30분 달리기 도전 프로그램’에 도전했다. 8주 동안, 주 3회씩 달리기를 해서 끝내 30분 동안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한다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목표였다. 시작은 1분을 달리고 2분 걷기를 5회 반복하고, 두 번째는 1분 달리기와 2분 걷기를 6회 반복하는 것이었다. 1분을 달리고 2분을 걸었던 첫날, 나는 1분이 결코 짧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고작 1분을 달리고도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내 체력에 충격을 받았다. 나는 수영도, 요가도, 필라테스도, 배드민턴도, 자전거도 무리 없이 잘했던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어플 속의 성우가 밝은 목소리로 '힘내세요!' 하는 말에도 화가 났다. 낼 힘이 없는데 어떻게 힘을 내냐며. 달리는 것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 달리는 시간이 길어지자 어플 속의 성우가 하는 '힘내세요'하는 말에도 더 이상 화가 나지 않았다. 그가 그렇게 말한다는 것은 곧 달리기가 끝나는 시간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의미했기에 해맑은 그의 목소리가 반가웠다.
여름이 되자 나는 달리는 시간을 새벽으로 옮겼고, 여섯 시가 되기 전에 일어나 잠이 덜 깬 채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집 밖으로 나갔다. 한여름의 새벽은 전날의 열기가 완전히 식지 않은 채 여전히 남아있었고, 새로이 솟아난 태양은 이른 아침부터 열기를 뻗쳐댔지만 새벽 공기는 상쾌했다. 달리기 시작한 지 5분이 채 되지 않아 내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이쯤에서 포기하고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 때 즈음엔 거짓말처럼 시원한 새벽 공기가 그런 나를 스쳐 지나갔다. 그런 순간에는 마스크 안에서 배시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여름, 불면증으로 하루에 두세 시간을 겨우 자면서도 나는 새벽에 달리기를 계속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을 지나 새벽이 오면 머리는 무겁고, 온몸은 무언가에 두드려 맞은 듯 아팠지만, 나는 지난밤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는 우울한 사실을 새벽 공기가 주는 상쾌함으로 상쇄시키고자 했다. 물론 달리기를 끝내고 상쾌한 기분이 이내 가셔지면 하루 종일 불면의 밤이 주는 우울함으로 몸서리를 쳤다. 어쨌든 달리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에게 잘 맞는 운동이었다.
끝도 없이 가라앉는 기분이 느껴지는 주말이면 차를 몰고 아웃렛에 가서 달리기를 할 때 입을 옷을 산다. 그리고 달리기가 귀찮아지거나 지겨워질 때에도 인터넷 쇼핑으로 달리기 할 때 신을 양말이나 헤어밴드 같은 소품을 사기도 한다. 그렇게 택배를 받으면 빨리 양말을 신고 밖으로 나가고 싶어지고 마는 것이다. 지난해 5월부터 시작한 달리기를 위해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달리기용 타이즈와, 기능성 티셔츠, 바람막이, 양말, 헤어밴드, 장갑, 모자, 비니, 힙쌕, 넥워머가 서랍장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달리기를 하면 할수록 내가 너무 늦게 시작한 것이 후회되는 것이다. 내가 조금 더 일찍 달리기를 시작했더라면, 나는 내가 그동안 다녔던 여행지에서 새벽 일찍 일어나 운동화 끈을 질끈 묶고 현지인처럼 도심의 공원을, 좁은 시골길을, 해변도로를 달릴 수도 있었을 텐데. 런던의 하이드 파크에서, 템즈강변에서, 아일랜드 골웨이의 한적한 해안도로에서, 더블린의 리피강변에서, 스톡홀름 시청사 앞의 산책로에서, 관광객이 없는 새벽시간에 바르샤바와 에스토니아 탈린의 구시가지에서, 길게 뻗은 사이판의 해안도로에서 달리기를 했더라면 나의 여행들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품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는 그 정도로 달리기가 좋아졌다.
퇴근을 하면 강아지들 밥을 먹이고, 산책을 시키고 본격적으로 달리기용 복장으로 갈아입는다. 스포츠 브라를 입고, 드라이핏 티셔츠를 입고, 러닝용 타이즈를 신고, 양말을 신고, 바람막이를 입고, 힙쌕을 차고, 에어 팟을 끼고, 휴대전화와 에어 팟 케이스를 힙쌕에 넣고, 헤어밴드를 하고, 마지막으로 마스크를 쓰고, 현관으로 나가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간다. 엘리베이터에 있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마치 오랫동안 달리기를 한 사람 같다. 어차피 오늘도 나는 3분간 뛰고 2분을 걷는 코스를 반복하겠지만, 그리 오래 달리지 못할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리기는 하면 할수록 더욱 재밌다. 매일 달리지 못하더라도, 먼 거리를 달리지 못할지라도, 오랜 시간 쉬지 않고 달릴 수 없을지라도, 달리기를 하지 않는 것보단 훨씬 나은 것이니까 나는 간헐적으로라도 달린다.
끝내 오지 않을 것 같은 날들도 결국엔 다 오고야 말았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목표했던 시간이 멀게 느껴지는 시간조차 끝이 나고, 다리가 아파서 지금까지 달려온 거리를 다시 되돌아가는 길이 아득하게 보여도 계속 달리고 걷다 보면 어느새 집에 도착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기다린다. 그 시간들을.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달리는 날도 머지않아 올 것이며, 그리하여 운동화 끈을 질끈 묶고 런던의 하이드파크에서, 뉴욕의 센트럴파크에서, 아일랜드의 시골길을 천천히 달리는 날도 마침내 오리라는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