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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Mar 26. 2022

정말 사랑하는 사이

그렇게 싸웠으면서 이제 와서 꽁냥이라니.



완연한 봄인 줄 알았는데 갑작스레 봄눈이 내린 아침, 봉화에도 눈이 많이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아빠. 거기 눈 많이 온다면서요?”

“어. 여기 지금 눈이 엄청시리 와. 비닐하우스 무너질까 봐 지금 눈 털러 비닐하우스에 올라와있다.”

“엄마도 없는데 아빠 식사는 어떻게 하셨어요?”

“꽃게탕 사서 막내랑 아침에 끓여먹었다.”

엄마 없어도 아빠 드시는  문제없네? 엄마 보고 우리 집에 와서  놀다가 가라고 해야겠다!”

내 말에 아빠는 웃기만 했다. 아빠의 이 웃음은 분명 거절의 표시다.


엄마는 지금 집에 없다. 얼마 전에 출산한 셋째 동생 집에 손주를 봐주러 가셨다. 예정보다 일찍 산후조리원에서 나온 동생이 처음에는 엄마 없이 제부랑 둘이서 아기를 봐도 될 것 같다고 했는데, 만 하루가 채 되지 않아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제발 도와달라고. 조리원을 나가던 날, 이제 조리원에서 나간다고 좋아했던 동생은 아기와 집에 간지 두 시간 만에 나에게 카톡을 보냈다.

‘울고 싶어’

겨우 두 시간이 지났는데 벌써 울고 싶다니. 아기가 우는 이유를 모르는 게 미칠 것 같다고 했다. 또 애가 똥을 너무 자주 눈다며, 아기 똥이 너무 묽은 것 같다며 병원에 전화를 하고 난리였다.

“애가 자주 먹으니까 똥을 자주 싸는 거 아닌가? 그럼 애는 똥을 하루에 몇 번 싸는 게 정상이야?” 내 물음에 동생이 대답했다.

“하루에 한두 번 싸야지!”

두 시간마다 한 번씩 젖을 먹는데 어떻게 성인도 아니고, 심지어 성인도 하루에 두세 번 넘게 싸는데 어떻게 아기가 하루에 똥을 한 번만 싸야 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되었지만 동생이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했는데, 애를 넷이나 키운 엄마가 와서 ‘환경이 바뀌면 그럴 수 있는 거라며 아기들은 원래 그래’라는 한 마디에 동생은 안심이 된 모양이었다.  


그리고   , 엄마는 둘째 동생네 집에 다녀왔다. 둘째의 요청에 의해 일주일 정도 머무를 예정이었다. 처음으로 둘째  집에 오랫동안 머물게 되었는데 엄마는 온통 아빠 걱정뿐이었다. 떠나기 전에 밥을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어두었고, 국도 끓여두고, 반찬도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놨으면서도  그렇게 걱정인    없었지만 통화를  때마다 아빠 걱정이 가득했다. 딸과 사위의 환대에도 엄마는 조금 불편해했다. 제부가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는  보기가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제부가 알아서 집안일 이것저것을 하는 게 마음이 편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위가 나서서 집안일하면 얼마나 좋아! 요즘엔 다들 그렇게 살아!”

머리로는 시대가 변했다는 것을 알겠는데, 직접 눈앞에서 남자가 걸레질을 하고 설거지를 하는 모습을 보는 게 마음이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듣자 나는 아득해졌다. 언제는 나더러 괜찮은 남자 있으면 같이 살아보라고 적극 추천하던, 이 시대 싱글 여성의 바람직한 어머니상이라고 생각했던 우리 엄마가 가사분담 앞에선 조선시대 시어머니와 같은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다니!


“엄마, 아빠가 나이가 이제 곧 70인데, 직접 밥도 못해먹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아?”

“야, 아무리 그래도 너네 아빠가 언제 그런 걸 해봤어야지.”

“엄마가 다 하니까 아빠가 안 한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내 야무진 대꾸에 엄마는 답이 없었다. 어쩌면 엄마는 아빠를 챙겨주는 것을 즐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가끔 나에게 전화를 해서 ‘너네 아빠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며’ 아빠 흉을 보지만 정작 아빠를 혼자 두고 여행을 가거나 집을 비우게 되면 온통 아빠 걱정이다. 아빠는 엄마가 없으면 한껏 신나서 친구들과 마음껏 술을 마시고 이웃집에 가서 밥을 얻어먹을지언정 굶을 사람은 절대 아닌데. 두 사람은 여전히 자주 다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많이 의지하는 것이다.


둘째가 마침내 엄마를 부산에서 집까지의 중간 지점인 셋째 동생집에 내려주자 아빠는 정말 오랫동안 오늘을 기다렸다는 듯이 봉화에서 안동까지 한달음에 달려왔다. 둘째가 장난으로 엄마에게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자고 하자 아빠는 둘째가 정말로 엄마를 부산으로 다시 모시고 가기라도 할까  얼른 엄마를 차에 태우고 집으로 출발했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나는 “둘이 정말 사랑하는 사이라며 놀리듯 평가를 했다.   전만 해도 둘이 '사네  사네 갈라서네'하며 싸웠으면서, 그런  사람을 뜯어말리느라  진이  빠진 날도 있었기에 뒤늦게  사람의 꽁냥을 보면  낯설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다. 작년, 아빠가 화상을 입어 수술을 하고 병원에 입원해있는 동안 아빠가 엄마에게 하루에도  번씩 전화를 하고, 문자 메시지 보내는 법을 배워서 문자를 보냈던 것도, 엄마가 보고 싶냐고 물었을  머뭇하다 보고 싶다고 답했던 것이 어쩌면 노년의 애정일지도 모른다.  


엄마, 아빠는 오늘 아침에 꽃게탕에 식사 잘하셨대. 엄마 없어도 아빠는  챙겨 먹으니까 셋째네 집에   있으면서 아기를 봐주는  어때?”

“야! 안돼. 집에 가야 돼.”

“나 참, 아빠가 그렇게 보고 싶어?”

“그런 거 아니야. 고추도 엉망이고 지금 할 일이 태산이야!”

“거짓말! 아빠 보고 싶어서 그런 거 다 알아. 다 안다고!”

내 억지에 엄마는 대꾸하지 않았다. 엄마의 이 대답 없음은 긍정의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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