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이지만, 아이는 없지만, 육아용품 당근을 합니다.
내 당근 마켓의 키워드 알림은, 입욕제, 강아지 카시트, 커피잔, 화분 등이다. 이제까지 당근 마켓으로 구입한 것들 중 화분이 가장 많고, 커피잔과 에어프라이어 정도였다. 화초를 키우는데 재능이 없어 매번 죽이면서 당근 마켓에서 저렴하게 판매하는 화분을 보면 왜인지 이번엔 잘 키울 수 있을 것만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샘솟는다. 그래서 매번 알림이 뜨면 진지하게 구매 여부를 고민하게 된다. 당근 마켓을 통해 구입한 것 중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단연코 에어프라이어이다. 국민가전의 명성을 얻게 된 에어프라이어를 나는 최근에야 구매하게 되었는데, 엄마가 보내주는 고구마는 에어프라이어 이전과 완전히 다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심심한 밤, 나는 당근 마켓을 켜고 우리 동네에 올라온 여러 가지 물건을 구경하는 재미를 즐긴다. 누군가의 손때가 묻어있는 물건에, 시간이 덧입혀진 여러 가지 물건을 구매하지 않더라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무료한 시간을 달랠 수 있다. 유럽 여행을 가면 나의 일정에는 꼭 벼룩시장이나 중고샵이 들어간다. 그리 싸지 않아도, 완전한 모습이 아니라도 아주 오랜 시간을 거쳐 시장에 나온 물건들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예전에 내가 살던 아파트 단지에는 한 달에 한번, 주말 오전에 아주 작은 벼룩시장이 서곤 했다. 대다수가 육아용품이었지만, 굳이 내가 구입할만한 물건은 없었지만 나는 그날을 기다렸다. 이야기를 담고 있는 물건들, 그것만큼 흥미로운 구경거리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최근에 나는 기존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육아용품을 구매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미혼인 내가, 임신도 하지 않은 내가 당근 마켓에서 육아용품을 구매하는 것은 나의 조카 때문이다. 셋째는 안동에 살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그 동네의 당근 마켓의 육아용품은 종류도 다양하지 않을뿐더러 어쩌다 올라오는, 마음에 드는 육아용품의 중고 가격은 턱없이 비싸게 형성되어있는터라 동생은 우리 동네의 당근 마켓에서 육아용품을 검색한다. 마음에 드는 육아용품을 발견하면 내게 링크를 보내주며 구매해달라고 조르는 것이다. 우리 동네 인증 범위를 벗어나는 곳이라면 나는 시간을 내어 차를 끌고 그 동네에 가서 인증을 하고, 구매 의사를 표하는 메시지를 보낸다.
그렇게 구매자인 나와 판매자의 이해가 맞아떨어지게 되면 서로 일정을 잡는다. 회사 근처라면 평일 저녁에도 거래가 가능하지만 보통 나는 주말을 당근의 날로 정한다. 그래서 나의 주말은 동생이 원하는 육아용품을 당근을 하러 용인으로, 판교로, 분당으로, 광주로 부리나케 다니는 것이다.
육아용품이 비싸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당근 마켓으로 육아용품을 구매하러 다니면서 알게 된 것은 대다수의 육아용품들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비싸다는 것이다. 내가 큰 마음을 먹고 산 퀸 사이즈 침대가 120만 원인데, 유명하다는 아기 침대의 가격은 140만 원이 넘었다! 140만 원이 훌쩍 넘는 아기 침대를 30만 원대에 구매하면서 당근 마켓이 없었다면 어쩔 뻔했나 내 것도 아닌데 안심하게 되고, 200만 원 가까이하는 유모차를 40만 원대에 구매하면서 나도 모르게 희열을 느꼈다. 70만 원대의 카시트도 10만 원대로 사와 낑낑대며 집에 올려놓으면서 조카에게 나중에 생색을 좀 내야겠다며 뿌듯해한다. 책으로 가득했던 나의 책방에는 이제 카시트부터 장난감과 유모차를 비롯한 육아용품이 쌓여있다. 부피가 크고 무거운 물건들을 집에 올려놓을 때면 손수레를 당근 마켓에서 구입해야 하나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구매한 육아용품들은 내가 시골집에 내려가면 하나둘씩 가져다주는데, 아무래도 시간이 흐른 후에 가져다줄 때가 많기 때문에 동생은 자기가 사달라고 요청한 것이었는 지도 까먹고 마는 것이다. 특히 프랑스산 모빌은 우리 집 강아지 꽃님이가 유독 눈독을 들였던 것이었는데, 동생도 그 모빌을 무척 기다렸더랬다. 그것과 함께 구입했던 아기 옷은 까맣게 잊었던 지 눈이 동그래져서 “언니! 이거 왠 거야?”라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자 그야말로 현타가 몰려왔다. 하아, 네가 사달라고 해서 내가 교통체증을 뚫고 오포까지 가서 사 온 거잖아!
새 물건, 새 옷, 새 신발은 나를 기분 좋게 해 준다. 나는 맏이라서 동생들에 비해 새 옷을, 새 신발을 얻을 기회가 많았다. 새것을 구입해 나의 생활습관에 맞게, 나의 체형에 맞추어진 물건에, 옷에 적응이 되면 다음에도 비슷한 것을 계속 찾게 된다. 내가 살면서 구매한 모든 새 물건들이 오래되어 더 이상 사용하기 어렵게 되더라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은 그 물건들에 나의 시간이 덧입혀졌기 때문이다.
십여 년 전, 몇 달을 고민하다가 어렵게 구매했던 나의 소중한 필름 카메라는 현재 중고 가격이 내가 샀던 가격의 두배가 되어있었지만 나는 쉽사리 내어놓지 못한다. 그 카메라에는 제주도에서, 인도네시아에서, 대만에서, 일본에서, 그리고 내가 살던 경주에서의 시간들이, 책을 읽다가 인상적인 구절이 적힌 페이지를 접어놓은 것처럼 내 지난 시간의 페이지들이 접혔던 흔적이 있기 때문이다. 내 물건들에 기록된 나의 이야기를 버리지 못하고, 다른 이의 이야기가 덧입혀진 물건에 흥미를 가지는 나는 절대 미니멀리스트가 되지 못할 것이다.
조만간 새로 태어난 조카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이모가 새 물건들을 사주진 않았지만, 열심히 발품을 팔아서 구매한 카시트며 유모차를 타고 이 세상을 조금 더 흥미롭게 바라봐주면 좋겠다. 그 카시트와 유모차를 타고 세상을 먼저 탐험했던 아이들의 흔적도 호기심 있게 찾아봐주면 더욱 재밌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이미 먼저 살아간 누군가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길이며 앞서 걷던 이가 미처 보지 못한 새로운 길을 발견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저 지나쳤던 풍경에 감탄하는 일이 우리의 삶이라는 것을, 이제 갓 세상에 나온 나의 조카의 세상이 나의 세상보다 더욱 다채롭고 즐거웠으면 한다.
이제 나는 그동안 봐 두었던 블루투스 스피커를 구매하기 위해 당근 마켓 어플을 켜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