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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Mar 17. 2022

아직도 CD를 듣는 사람이 있어?

네. 그게 바로 저예요.



최근 BBC라디오를 듣다가 반해버린 곡이 있다. 영국 가수 George Ezra의 ‘Anyone For You’. 찾아보니 2019년 Brit award를 받은 가수였고 두장의 정규 앨범을 발매한 가수였다. 마초 감성이 진하게 묻어나는 목소리에 달달한 가사와 어깨춤이 절로 나오는 신나는 멜로디의 노래들이 많았다. 딱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노래였다. 나는 인터넷을 뒤져 중고로 그의 CD와 Vinyl을 주문했다. 회사로 배달된 CD를 마침 점심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오던 팀장님과 대표님이 받아서 가져다주셨는데 내게 건네주며 물었다.

“아직 CD를 듣는 사람이 있어?”

“그러게요. 근데 그게 바로 저예요”


주말이면 10년도 훨씬 전에 산 오래된 야마하 오디오로 내가 듣고 싶은 CD를 걸어놓고 하루 종일 음악을 흥얼거리며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한다. 음악이 흐르는 거실에서 소파에 누워 SNS를 하고 책을 읽다가 잠깐 낮잠을 자고 일어나 강아지들과 산책을 한다. 내가 야마하 오디오를 샀을 때, 얼마나 설렜는지 전원 버튼을 누를 때마다 그때의 기억이 생생히 되살아난다. 경주에서 구미를 거쳐, 분당으로 다시 이곳으로,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할 때마다 가지고 다녔다. 그럴법한 것이 당시 내 경제사정을 고려하면 나에겐 정말 큰돈이었고 내가 가진 것 중에 소중한 것들의 순위를 매긴다면 의심치 않고 상위에 랭킹 될 것이다.


서랍장에는 대학생 시절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으로 처음 산 파나소닉 CD플레이어가 있다. 내가 CD플레이어를 살 때에도 이미 음악을 듣는 도구로 MP3가 널리 퍼졌던 시기였으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등학교 때부터 갖고 싶었던 CD플레이어를 끝내 샀더랬다. 고등학교 시절 많은 친구들에게는 CD플레이어가 있었지만 나에게는 어디에서 받은 것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카세트 플레이어가 전부였다. 오래된 카세트 플레이어는 자주 고장 났고, 열람실에서 테이프로 음악을 듣기에는 테이프가 돌아가는 소리가 너무 컸기에 조용히 플레이가 되는 CD플레이어가 정말 갖고 싶었더랬다. 작디작은 자존심에 친구들에게 빌려달라는 소리 한번 하지 못한 채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렇게 나의 오랜 염원이었던 CD플레이어를 구입했던 것이다. 가방에 얇은 CD플레이어를 넣고 귀에 이어폰을 꽂고 내가 좋아하는 전람회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세상의 소리와 단절되어 아름다운 음악과 나만 남은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했다. 수업에 늦어 뛰면 CD도 내 발걸음을 따라 튀었다.


나는 주로 애플 뮤직으로 음악을 듣는다. 이전처럼 CD플레이어를 가지고 다니며 음악을 듣지 않고 운전할 때, 운동할 때 다른 이들처럼 스트리밍 서비스를 사용한다. 이 얼마나 편리한 세상인가! 실은 처음 스트리밍 서비스가 시작되었을 때 나는 ‘음악은 CD로 들어야 제맛인데. 흠’ 하는 쪽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왜 음원이 아닌 CD가 더 제 맛인지는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나는 막귀이므로 각종 스트리밍 서비스의 음질의 차이 따위는 알 수 없다. 그러므로 CD와 음원과의 차이 또한 알 수 없다. 음질의 차이는 알 수 없지만 CD로 음악을 듣는 일은 나의 아주 작은 수고를 요하는 것이다. 음원은 핸드폰을 들고 손가락 하나로 원하는 음악의 플레이만 누르면 되는 일이지만 CD는 오디오 전원을 켜고, 원하는 CD를 찾고, 케이스에서 CD를 꺼내 오디오에 걸고 플레이 버튼을 누르는 일을 순차적으로 완료해야만 비로소 내 공간에 음악이 흘러차게 된다. 보통 핸드폰으로 음악을 들을 때면 에어팟을 끼고 음악을 듣고, CD는 공간에 차는 음악을 듣는 일 또한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에어팟을 통해 내 귀에 바로 음악이 들리는 것과 공간에 가득 찬 음악을 듣는 일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나뿐만 아니라 낮잠에 빠진 강아지들도, 내 소파도, 내 티비도 모두 나와 같이 음악을 듣는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음악을 듣는 것은 차창 밖으로 지나치는 풍경과 같다. 반면 물리적으로 음악을 소유하는 CD 어쩐지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에 조금  가까워진 느낌을 준다. 어쩌면 아날로그 시대에 태어나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기를 거쳐온 내게 스트리밍 서비스의 개념이 아직도 낯선지 모른다. 아니면 그저 나의 소유욕이 커서 이렇게라도 나의 소비를 합리화하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의 오래된 야마하 오디오 아래 서랍에는 그 보다 더 오래전에 구입한 CD가 있다. 전람회, 김동률, 윤종신, 이소라, 이문세의 90년대 감성이 가득한 음악들이. 그 옆에는 그리 오래지 않은 잔나비, 에피톤 프로젝트, 검정치마의 CD도 있다. 이제 나의 CD 컬렉션에 George Ezra가 추가되었다. 어찌나 뿌듯한 지 요 며칠 퇴근하자마자 나는 티비를 켜는 대신에 그의 CD를 플레이한 채로 옷을 갈아입고, 집안 정리를 하고, 강아지들에게 밥을 먹인다. 오도독오도독 강아지들이 밥을 먹는 소리 주변으로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깔리면 어쩐지 개 사료도 더 맛있어 보인다. 그래. 이 맛에 CD를 듣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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