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목에 걸린 목련 꽃빛의 목걸이.
아주 오랜만에 외할머니를 만났다. 2년 만에 만난 할머니는 2년 전보다 기력이 많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우리 엄마의 엄마답게 나를 보자 “너는 왜 시집 안 가냐. 니 동생들은 다 결혼하는데 너는 어쩌냐”며 나를 다그쳤다. 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반가움의 표시로 받아들이고 할머니 옆에 앉아 연신 과일을 입에 넣어드리고 할머니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할머니는 계속 내 진주 목걸이를 쳐다보시다가 잠깐 손을 뻗어 목걸이를 만지셨다.
“할머니. 이 목걸이 예쁘죠?” 할머니는 대답 대신에 옅게 웃음을 지으셨다.
“할머니. 이거 드릴까?” 손사래를 칠 줄 알았는데 할머니는 이번에도 대답을 하지 않으시고 웃기만 하셨다.
나는 얼른 내 진주 목걸이를 빼서 할머니 목에 걸어드렸다. 할머니는 내가 목걸이를 걸기 쉽도록 고개를 약간 드셨다. 그런 할머니의 행동이 너무 귀여웠다.
“아, 할머니 너무 잘 어울린다! 완전 딱이야.” 할머니는 정말 그 목걸이가 마음에 드셨던지 내가 집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계속해서 목걸이를 만지셨다.
사촌 오빠의 결혼식이 있기 몇 주 전부터 엄마는 나에게 전화를 해서 그날 꼭 예쁘게 하고 와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사촌 오빠의 친구들도 올 텐데 혹시나 모르니 정말로 예쁘게 하고 와야 한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더랬다. 엄마의 신신당부 때문은 아니었지만 나는 바쁜 와중에 백화점에 가서 네이비 컬러의 원피스를 샀다. 결혼식 당일 아침, 새로 산 원피스를 입었는데 어딘가 허전해 보였다. 화장대를 뒤져 몇 년 전에 사둔 진주 목걸이를 했다. 조금 나이 들어 보였지만 아주 약간 우아해 보이는 것 같았다. 평소에 하지 않던 진주 목걸이가 그날 내 목에 걸렸던 이유였다.
나의 외할머니는 평생을 대학교 청소 노동자로 살아왔다. 한때 기사에 자주 등장했던, 쉴 공간 하나 없어 화장실에서 잠깐 다리 쉼을 하고 운이 좋다면 계단 밑 작은 공간에서 식사를 하던 청소 노동자였다. 학생들이 버린 볼펜을 주워 모아 가끔 만나는 나에게 건네주었다. “이런 거 사지 말어. 할머니가 모아놨다가 줄테니까 괜히 돈 쓰지 말어.” 할머니는 그렇게 알뜰한 사람이었다. 자식들에게 부담주기 싫어서 본인의 노후자금을 청소노동을 하면서 다 모으셨고, 손주들이 결혼하면 백만 원씩 주시는 분이었다. 그런 분의 인생에서 진주 목걸이는 감히 생각조차 하지 못할 것이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왜 할머니가 내 목에 걸린 진주 목걸이를 계속 만졌는지, 내가 목걸이를 걸어드리자 가만히 계셨는지도. 그 마음도.
20만 원이 채 되지 않는 나의 오래된 진주 목걸이가, 화장대에 처박아두고서는 있는 지도 없는지도 몰랐던 내 낡은 진주 목걸이가 할머니께는, 고단했던 삶에 찾아온 목련꽃은 아니었을까. 진주 목걸이를 목에 걸고 환히 웃으시던 할머니가 안쓰러우면서도 귀여웠다.
할머니는 내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그래도 결혼은 해야지. 혼자는 외로워” 우리 엄마가 할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으니 거의 평생을 혼자 사신 분의 조언이었다. 물론 할머니가 살아온 시대와 내가 싱글여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시대는 완전히 다르지만 그 말씀 하나로도 그때의 할머니는 외로움과 가난과 사람들의 시선과 치열하게 싸워왔음을 알 수 있었다.
“야, 너 연하 만난다며?”
느닷없이 사촌오빠가 나에게 물었다.
“응. 나 연하 만나지!”
더 뜬금없는 내 대답에 엄마, 아빠, 이모, 할머니까지 다 눈을 반짝이며 나를 쳐다보았다.
“뭐? 진짜야?”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나에게 물었다.
“아니, 이제부터 찾아본다고~”
“아이씨, 지랄하네, 야! 진짠 줄 알았잖아!”
이모인지 엄마인지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바락 짜증을 냈다. 나는 그 모습이 웃겨서 미친 듯이 웃어댔다. 내 웃음에 할머니도 연이어 웃기 시작했다. 할머니 목에 걸린 목련 꽃빛의 진주 목걸이도 할머니의 웃음에 따라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