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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Mar 13. 2022

할머니와 진주 목걸이

할머니 목에 걸린 목련 꽃빛의 목걸이.



아주 오랜만에 외할머니를 만났다. 2년 만에 만난 할머니는 2년 전보다 기력이 많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우리 엄마의 엄마답게 나를 보자 “너는 왜 시집 안 가냐. 니 동생들은 다 결혼하는데 너는 어쩌냐”며 나를 다그쳤다. 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반가움의 표시로 받아들이고 할머니 옆에 앉아 연신 과일을 입에 넣어드리고 할머니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할머니는 계속 내 진주 목걸이를 쳐다보시다가 잠깐 손을 뻗어 목걸이를 만지셨다.

“할머니. 이 목걸이 예쁘죠?” 할머니는 대답 대신에 옅게 웃음을 지으셨다.

“할머니. 이거 드릴까?” 손사래를 칠 줄 알았는데 할머니는 이번에도 대답을 하지 않으시고 웃기만 하셨다.

나는 얼른 내 진주 목걸이를 빼서 할머니 목에 걸어드렸다. 할머니는 내가 목걸이를 걸기 쉽도록 고개를 약간 드셨다. 그런 할머니의 행동이 너무 귀여웠다.

“아, 할머니 너무 잘 어울린다! 완전 딱이야.” 할머니는 정말 그 목걸이가 마음에 드셨던지 내가 집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계속해서 목걸이를 만지셨다.


사촌 오빠의 결혼식이 있기 몇 주 전부터 엄마는 나에게 전화를 해서 그날 꼭 예쁘게 하고 와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사촌 오빠의 친구들도 올 텐데 혹시나 모르니 정말로 예쁘게 하고 와야 한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더랬다. 엄마의 신신당부 때문은 아니었지만 나는 바쁜 와중에 백화점에 가서 네이비 컬러의 원피스를 샀다. 결혼식 당일 아침, 새로 산 원피스를 입었는데 어딘가 허전해 보였다. 화장대를 뒤져 몇 년 전에 사둔 진주 목걸이를 했다. 조금 나이 들어 보였지만 아주 약간 우아해 보이는 것 같았다. 평소에 하지 않던 진주 목걸이가 그날 내 목에 걸렸던 이유였다.


나의 외할머니는 평생을 대학교 청소 노동자로 살아왔다. 한때 기사에 자주 등장했던, 쉴 공간 하나 없어 화장실에서 잠깐 다리 쉼을 하고 운이 좋다면 계단 밑 작은 공간에서 식사를 하던 청소 노동자였다. 학생들이 버린 볼펜을 주워 모아 가끔 만나는 나에게 건네주었다. “이런 거 사지 말어. 할머니가 모아놨다가 줄테니까 괜히 돈 쓰지 말어.” 할머니는 그렇게 알뜰한 사람이었다. 자식들에게 부담주기 싫어서 본인의 노후자금을 청소노동을 하면서 다 모으셨고, 손주들이 결혼하면 백만 원씩 주시는 분이었다. 그런 분의 인생에서 진주 목걸이는 감히 생각조차 하지 못할 것이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왜 할머니가 내 목에 걸린 진주 목걸이를 계속 만졌는지, 내가 목걸이를 걸어드리자 가만히 계셨는지도. 그 마음도.  


20만 원이 채 되지 않는 나의 오래된 진주 목걸이가, 화장대에 처박아두고서는 있는 지도 없는지도 몰랐던 내 낡은 진주 목걸이가 할머니께는, 고단했던 삶에 찾아온 목련꽃은 아니었을까. 진주 목걸이를 목에 걸고 환히 웃으시던 할머니가 안쓰러우면서도 귀여웠다.


할머니는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그래도 결혼은 해야지. 혼자는 외로워우리 엄마가 할머니의 뱃속에 있을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으니 거의 평생을 혼자 사신 분의 조언이었다. 물론 할머니가 살아온 시대와 내가 싱글여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시대는 완전히 다르지만  말씀 하나로도 그때의 할머니는 외로움과 가난과 사람들의 시선과 치열하게 싸워왔음을   있었다.


“야, 너 연하 만난다며?”

느닷없이 사촌오빠가 나에게 물었다.

“응. 나 연하 만나지!”

더 뜬금없는 내 대답에 엄마, 아빠, 이모, 할머니까지 다 눈을 반짝이며 나를 쳐다보았다.

“뭐? 진짜야?”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나에게 물었다.

“아니, 이제부터 찾아본다고~”

“아이씨, 지랄하네, 야! 진짠 줄 알았잖아!”

이모인지 엄마인지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바락 짜증을 냈다. 나는 그 모습이 웃겨서 미친 듯이 웃어댔다. 내 웃음에 할머니도 연이어 웃기 시작했다. 할머니 목에 걸린 목련 꽃빛의 진주 목걸이도 할머니의 웃음에 따라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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