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에도 봄이 오기를.
불과 며칠 사이에 바람의 온도가 달라졌다. 여전히 바람은 세차게 불지만 그 안에 실린 온도는 확연히 따뜻하다. 봄이다. 다시 봄이 왔다. 몇 주 전만 해도 아침에 일어나 물 한잔을 마시고 부엌의 창가에 서면 창에는 지난밤 찾아온 성에가 가득했더랬다. 겨울은 아직 깊은듯했고 올해 봄은 유난히 늦게 오는구나 했다. 어떤 날은 안쪽 창문을 열고 바깥쪽 창문에 끼인 성에를 손톱으로 긁어보기도 했다. 내 작은 손톱으로 성에를 긁어낸다고 해도 여전히 공기는 차가울 테고, 봄은 아직 저만치 멀리 있을 테지만 어릴 때부터 이렇게 봄이 기다려질 땐 화가 난 척 창에 끼인 성애를 긁어냈다.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는 유난히 추운 곳이었다. 숨을 들이켤 때마다 폐가 얼어붙을듯한 추위가 겨울마다 찾아오는 곳이었다. 아침 뉴스 속 앵커는 우리 동네가 전국 최저기온을 기록했다는 이야기를 무표정하게 알려주곤 했다. 지금처럼 바깥의 찬 바람을 충분히 막아주는 몇 중의 새시는 없었다. 듬성한 격자모양의 나무 사이에 얇은 유리 한 장이 전부였다. 겨울이 시작되면 매일 마루와 방의 경계를 짓고 있는 얇은 유리에는 얼음이 얼었다. 어떤 날에는 눈처럼 하얀 성에가 끼었고, 어떤 날에는 정말로 얇은 얼음이 유리창 전체를 덮기도 했다. 찬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에는 밤새 창이 덜컹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쓰고 잠에 들곤 했다. 두꺼운 커튼을 쳐두어도 그곳의 바람은 너무 매서워서, 그 밤의 추위는 너무 혹독해서 얇은 유리를 가볍게 통과해, 두꺼운 커튼을 가뿐히 열어젖히고는 불청객처럼 방 안으로 찾아들었다. 겨울이란 내게 너무 춥고 어둡고 또한 길었다. 그러나 봄은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찾아왔다. 내 방 창문엔 새벽마다 지난밤의 추위가 선물한 성에가 끼었는데, 어느 날 학교를 가면서 주변을 둘러보면 진달래가 곳곳에 피어있었다. 강가엔 버들강아지가 도톰하게 부풀어 올랐다. 친구들과 산등성이를 기어올라가 기어이 진달래를 꺾어서 학교에 가져갔다.
그토록 기다렸던 봄인데, 이번 봄에는 지구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전쟁 소식에 마음이 무겁다. 한 나라가 다른 주권국가를 침공하는 일이 이토록 쉽게 이루어지다니. 이제야 길었던 판데믹의 출구가 보이는 이 봄에, 그 어느 봄보다 더 희망찬 봄의 입구에서 전쟁 소식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지만 현실이었다. 이 모든 거짓말 같은 이야기가 사실이었다. 우리는 모두 전쟁에 대해서 배웠다. 특히 우리나라는 직접 전쟁을 겪은 나라이기 때문에, 전쟁이 가져다주는 비참함에 대해서 배웠다. 그러나 인터넷에는 비트코인이니 주식이니 하는 이야기들이 떠돌았다. 전쟁 소식보다 더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이었다.
나의 할아버지는 한국전쟁에 참전하셨다. 동네 친구 10명과 함께 참전했는데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 사람은 할아버지를 포함해서 단 두 명이었다. 그 3년 동안 할아버지가 어떤 일을 겪었을지는 그 이야기 하나로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지난 금요일 우크라이나의 한 대피소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이 우크라이나 의회의 sns를 통해 전해졌다. 그 아이의 이름은 ‘미아’. 그 소식에 우크라이나에서는 ‘전쟁터의 희망’이라는 반응이라고 하니 무거운 마음속에 반가웠다.
겨울이 깊어지면 봄은 바로 앞에 온 것이다.
우리가 히틀러를 전쟁범죄자로 기억하듯이, 우리가 일본군의 만행을 잊지 않고 배우듯이, 우리는 블라디미르 푸틴을 학살자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아마 미아도 먼 훗날, 그녀의 탄생이 희망이었다는 것을 배울 것이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겨울이 깊을 대로 깊어진 만큼 봄은 내일이라도 그들을 찾아올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크라이나에평화를 #prayforUkr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