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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Dec 26. 2021

짜릿했던 첫 골의 기억!

축구 시작 한 달만에 첫 골을 넣었습니다! 


나를 향해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는 팀원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모르겠다. 나에게 하이파이브를 하는 동료들에게 맞춰주면서도 여전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어리둥절했다. 이내 조금 전 내 다리에 맞은 그 공이 골대 안으로 들어간 것을 알아챘다. 불과 축구를 시작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내가 공을 찬 것도 아닌데, 그냥 그곳에 서있었을 뿐이었는데! 과연 내가 골을 넣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 얼떨떨하지만 나는 팀원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기쁨을 나눴다. 


일주에 한번, 집 근처 생활체육공원에 있는 축구장에서 축구를 한다. 벌써 네 번째 참석이다. 그날은 다른 축구회와의 경기가 없었기 때문에 넓은 축구장을 우리 여성축구회가 단독으로 사용하는 중이었다. 다들 모여 준비운동을 하고, 패스 연습을 하고 킥 연습을 했다. 날이 좀 풀렸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추웠다. 나는 이제껏 인사이드 패스에 집중했었는데 그날은 처음으로 킥 연습을 했다. 날이 너무 추우면 축구공도 얼어버리는 것을 몰랐다. 공을 몇 번 차지 않았는데 발이 너무 아팠다. 마스크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내 입김에 앞머리는 축축해졌고, 마스크에 감춰진 내 콧잔등에서는 쉼 없이 땀이 흘러내려 입으로 들어갔다. 짭짤한 내 땀을 핥으면서도 축구가 주는 재미와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한 시간 가량 모든 회원들이 겉옷을 벗어던진 채로 연습을 하고 본격적으로 게임을 시작했다. 참석 인원이 많지 않았으므로 전체 축구장을 사용하지 않고 축구장 한쪽에서 미니 축구 골대를 세워두고 6대 6으로 축구 경기가 시작되었다. 소수의 인원이 작은 면적을 뛰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쉴 틈 따위는 없었고 골키퍼는 정해지지 않았다. 함께 공격하고 함께 수비를 했다. 전반 15분, 후반 15분의 길지 않은 축구경기. 그 짧은 경기중에 드디어 내가! 겨우 네 번째 참석인데! 득점을 했다. 


고백하자면 나는 골을 넣을 의도가 없었다. 그저 골대 근처에 서서 우리 팀의 누군가가 골을 넣어주기를 바랐다. 그랬던 나였는데! 내 다리를 맞은 공은 시원하게 미니 골대로 방향을 틀었고, 정확하게 들어간 것이다. 얼떨떨한 나에게 하이파이브를 하던 회원 중 한 분이 내게 말했다. “언니! 해낼 줄 알았어요!” 정작 나는 해낼 줄 몰랐는데! 의도치 않았지만 골을 넣은 그 흥분은 오래갔다. 빠른 공수전환에 정신을 차리고 수비를 하러 뛰어가면서 마스크로 감춰진 내 얼굴은 실룩실룩 한없이 웃으려는 나의 본능과 남은 경기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성이 충돌했다. 나는 전반전에 골을 넣었지만 그 흥분은 축구를 끝내고 집에 와서도 계속되었다. 팔로워가 얼마 없는 SNS에 자랑을 하고, 동생에게 카톡으로 자랑을 하면서도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실감이 나지 않은 동시에 '아, 이 맛에 축구를 하는구나'하는 자만이 엎치락뒤치락 나를 흔들어놓았다. 어쨌거나 나는 또다시 축구에 빠졌다. 


친구들과의 단톡방에도 나는 또 자랑을 했다. ‘그냥 골대 앞에 서있었는데 공이 내 다리를 맞고 들어갔어’ 담담히 별일 아닌 것처럼 타이핑을 했지만 내 마음에선 ‘별일이지! 니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을 넣었는데. 그건 별일이라구. 마음껏 자랑하라구.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자랑을 하겠어!’하는 말이 들리는 듯했다. 아, 또다시 골을 넣을 수 있다면! 아니지, 이제 첫 골을 넣었으니 두 번째는 어부지리가 아니라 진짜 공을 차서 골을 넣는 것도 그리 어렵지는 않을 테지. 첫 골을 넣은 이후, 나의 시간은 그때에 멈춰 선 채로 그 짜릿한 기분이 계속되는 듯했다.  

나는 연이어 엄마에게도 자랑을 했다. 

“엄마! 내가 골을 넣었어!”

“골이 뭔데?”

“아니, 내가 축구하러 간다고 했잖아. 거기서 축구 경기하는데 내가 골을 넣었다니까!”

“그니까 골이 뭐고? 그거 넣으면 좋은 거가?”

“응! 우리 팀이 이겼다니까!”

“그래. 알았다. 고구마는 다음 주에 보낸다이”

엄마의 심드렁한 반응마저도 나의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여성축구회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골을 넣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더랬다. 그저 공을 차는 것, 초록의 운동장을 마음껏 뛰어다니는 것, 사람들과 함께 공을 주고받는 것, 나의 별 다를 것 없는 저녁시간 중 하루는 사람들과 함께 신나게 뛰는 것을 기대했더랬다. 열심히 수비하는 것, 공격수에게서 공을 뺏아서 우리 팀 사람에게 정확히 패스할 수 있기를 바랐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기대하는 일은 줄어갔다. 내가 지나온 시간들이 쌓여갈수록 사람에게 기대는 마음 따위도 옅어져 갔다. 축구는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다. 축구경기에서 골을 넣는 것은 혼자서는 할 수 없다. 들어갈 수밖에 없는 공을 받아서 골대에 골인시키지 못하더라도 비난하지 않는다. 열심히 뛰다 보면 기대하지 않았던 골이 득점으로 연결되기도 하고, 이번에는 득점에 실패하더라도 언젠가는 또 기회가 온다는 기대, 내가 헛발질을 해도 나의 동료가 잘 살려낼 것이라는 믿음. 언젠가는 나도 그런 믿음을 나의 동료에게 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 이제 겨우 한 달이 지났지만, 축구를 시작하고 난 후 아주 작은 기대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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