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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Jan 29. 2023

나의 등산일지-소백산

첫겨울 산행


소백산에 가고 싶었다. 내 고향은 봉화이고, 과수원에 올라가면 저 멀리 소백산이 보이는 곳이었다. 겨우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소백산을 보고 자랐지만 한 번도 소백산에 올라가 본 적이 없었다. 가까워서였을까, 과수원에 오르면, 할아버지 산소에 서면 눈 덮인 소백산이, 저 말리 구름이랑 맞닿은 소백산이 보여서였을까. 소백산을 넘어 이곳에 살면서, 죽령터널을 지나 경상도 사투리 영향권을 벗어난 곳에 자리를 잡고 나니 소백산에 한 번쯤은 가고 싶었다. 


이번 설 연휴에 막내 동생과 함께 소백산 등산을 하기로 했다. 다행히 4일의 연휴였으므로 차례를 지내고 난 다음날인 월요일에 산에 가기로 했다. 화요일부터 한파가 시작된다고 하니 날씨도 나쁘지 않을 터였다. 일요일 저녁에 등산에 필요한 물품과 입고 갈 옷을 미리 정리해 두었다. 바지 두 벌, 러닝용 겨울 티셔츠 두벌, 스포츠브라, 겨울 러닝용 조끼, 열보존이 가능한 얇은 잠바, 방풍 잠바, 울 양말, 스패츠, 아이젠, 장갑, 모자, 넥워머까지. 보온병 3개, 드립백 커피 두 개, 컵라면, 핫팩 여섯 개, 양갱 두 개, 국립공원 스탬프 투어 여권까지. 새로 산 배낭이 꽉 찼다. 


새벽 다섯 시 반, 엄마가 나를 깨웠다. 대강 세수를 하고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넣었다. 주섬 주섬 옷을 챙겨 입고 막내 동생과 함께 집을 나섰다. 그때가 여섯 시 반. 우리가 선택한 코스는 어의곡 코스였다. 집에서 그나마 가까운 영주에서 시작하는 코스가 아니라 등산 시간이 가장 짧은 어의곡 코스를 선택하였기 때문에 단양까지 넘어가야 했다. 한 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를 가면서 둘이 재잘재잘 꽤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중간에 편의점에 들러 소시지 몇 개와 에너지바 몇 개를 샀다. 


여덟 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주차장에 도착했으나 이미 많은 차들이 주차장에 주차가 되어있어 어쩔 수 없이 길 가에 차를 세우고, 본격적으로 등산 준비를 했다. 화장실에 한 번씩 다녀오고, 배낭을 꺼내 단단히 준비를 한 다음 여덟 시 반에 등산을 시작했다.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고 호기롭게 등산을 시작했으나 앞서가던 누군가가 뒤를 돌아보며 뒤에 오던 일행에게 소리쳤다. ‘아이젠! 아이젠 하고 올라와!’ 그 말에 동생이랑 둘이 주섬주섬 아이젠을 착용했다. 아이젠을 착용하니 발이 더 무거웠지만 겨우 몇 걸음을 걸었을까, 하지 않았더라면 몇 번이고 넘어졌을 것처럼 온통 눈이었다. 한걸음 한걸음 발을 움직였다. 얼마쯤 갔을까. 동생이 배낭이 너무 무겁다며 차에 짐을 좀 빼놓고 오겠다고 했다. 나더러 천천히 올라가고 있으면 따라잡겠다고 했으므로 흔쾌히 알겠다고 했는데, 아무리 걸어도 동생은 오지 않았다. 한 시간쯤 걸었을까. 막내가 전화를 했다. 

“누나, 나 발이 너무 아파서 못 올라가겠어.”

“알았어. 차에 가서 기다려” 

아이젠을 처음 착용해서 그런지 발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산에 오르면 안 되는 일, 나는 혼자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아이젠을 착용해서 그런지 발이 너무 무거웠다. 그래도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걷다 보니 걸을만했다. 국립공원이라 등산로도 잘 되어있었고, 곧게 뻗은 나무들은 멋있었고, 공기는 상쾌했다. 잠깐 딴생각을 하다 아이젠끼리 걸리면서 넘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눈이 많이 쌓인 곳이라 아프지 않았다. 그 많던 등산객들도 내가 넘어지던 시점에는 내 주위에 아무도 없었으므로 나의 ‘엄마야!’하는 소리도 아무도 듣지 않았다. 비식웃으며 훌훌 털고 일어났다. 세 시간쯤 지나자 주위 풍경이 생경했다. 눈앞에 상고대가 펼쳐진 것이다. 고개를 들어 상고대가 고이 내려앉은 나무를 넋 놓고 바라보았다. 바람이 불어오면 상고대의 얼음이 반짝이며 날렸다. 내 빨간 등산 잠바 위로 얼음조각들이 고요히 내려앉는 모습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상고대가 나타났다는 것은 정상이 멀지 않다는 이야기이므로 나는 부지런히 걷고 또 걸었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있던 나무들이 사라지고 어느새 내 키보다 낮은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유명한 소백산의 능선 위로 올라선 것이다. 소백산 등산 전에, 누군가가 남겨놓은 등산 기를 읽었는데 소백산 정상에서 부는 바람이 무섭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었다. 바람이 세차긴 했지만 이 정도 바람이 무서울 정도라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는 견딜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갑자기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었고, 등산 폴을 잡은, 장갑을 낀 내 손은 얼어가기 시작했다. 주머니에 넣은 핫팩을 꺼냈는데 어느새 핫팩은 차갑게 식어있었다. 스키 장갑을 사지 않은 것에 후회가 되었다. 막내 동생 가방에 넣어둔 내 담요가 미친 듯이 그리웠다. 


정상석에서 사진만 찍고 내려가려고 했는데 이미 정상석에는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사진을 안 찍고 내려갈 수는 없었으므로 나도 그 끝에 슬그머니 줄을 섰다. 어찌나 바람이 세차게 부는지 그냥 갈까 와 그래도 사진은 찍어야지라는 생각으로 발을 동동 구르는데 내 뒤에 선 아저씨의 ‘그래도 작년보단 바람이 덜 분다’는 이야기에 정신이 아득해지고 말았다. 이 바람에도 나는 휘청일 정도인데 정말 많이 불 때는 어떻단 말인가. 달달 떨면서 그래도 이 정도 바람에 등산을 한 내가 운이 좋은 것이라 생각했다. 결국 정상석에 서서 뒤에 계신 분들께 사진을 부탁했다. 한 십오 분 정도 서 있어서 그런지 내 몸은 차갑게 식었다. 등산 전에 배에 붙인 핫팩을 꺼내 손에 쥐었다. 미열이 남아있어 그것만으로도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었다. 주머니에 넣어놓은 장갑을 하나 더 꺼내려다가 바람에 장갑이 날아가고 말았다. 출입금지구역으로 장갑이 날아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장갑 한 짝은 소백산에 두고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바람이 얼마나 세차게 불던지 내 오른쪽 눈이 감기지 않았다. 눈알이 얼었나. 눈꺼풀이 얼었나. 덜컥 겁이 났다. 좋은 기운을 받겠다고 산에 올라왔는데 눈이 안 감기면 이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장갑을 낀 손으로 연신 눈꺼풀을 만졌으나 그럼에도 눈이 감기지 않았다. 아득해졌다. 


가방에 바리바리 싸 들고 온 컵라면이든 커피든 무엇이든 꺼내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바람이 불었으므로 나는 서둘러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른쪽 눈도 제대로 감기지 않는데 어디에 앉아서 무엇을 마실 기분도 아니었으므로. 이상하게도 능선에서 조금 벗어나니 바람이 불지 않았다. 내 오른쪽 눈꺼풀도 다행히 감겼다. 휴우. 조금 더 내려가니 등산객들이 모여 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다. 나도 거기에 쭈그리고 앉아 커피 한 잔을 내려 마시고, 에너지바를 먹었다. 빈 속에 따듯한 커피 한 잔이 들어가니 몸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다시 가방을 싸고 걷기 시작했다. 올라가면서 봤던 상고대는 이미 다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조금만 늦게 올라왔더라면 상고대를 보지 못했을 터, 어쩌면 올 해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한 해가 되려나. 조금 더 운이 좋은 한 해가 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 보였다. 


나는 산을 오르는 것보다 산을 내려가는 편이 조금 더 편하다. 누군가는 산을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힘들다고 하는데, 어째서인지 나는 산을 내려가는 것이 몸도 마음도 편안하다. 아무래도 이미 가 본 길이므로, 이미 내가 걸었던 곳이기에 그럴지도 모른다. 산을 거의 다 내려왔을 무렵, 내가 새로 산 접이식 등산 폴의 잠금장치가 풀어져 쑥 접히고 말았다. 대여섯 번이나 같은 현상이 발생하자 나는 조금 화가 났다. 27만 원이란 거금을 주고 샀는데, 자칫하면 사고가 날 수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화는 났지만 화를 내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고치면 해결될 문제였으므로, 내가 폴에 힘을 싣고 걷던 순간이 아니어서 사고가 나지 않았으므로, 나는 처음으로 눈 덮인 산을 여섯 시간이나 걸었으므로, 꿈처럼 펼쳐진 상고대를 보았으므로, 한번 넘어졌지만 무사히 등산을 완료했으므로, 해결책이 있는 일에 화를 내는 것은 의미가 없으므로. 


산을 내려와 국립공원 스탬프 투어 여권에 야무지게 ‘소백산’ 도장을 찍었다. 주차장에서 동생을 만나 정상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차 안에서 커피 한잔을 더 내려 마셨다. 동생에게 정상에서 바람이 어찌나 불었던지 오른쪽 눈이 안 감겨서 겁이 났다는 이야기를 하자 막내는 거짓말 좀 하지 말라며, 그게 말이 되냐며 나를 허언증에 걸린 사람 취급을 했다. 함께 와서 함께 등산을 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막내의 말에 나는 만약 몸이 안 좋은데도 고집을 부려 등산을 했으면 더 큰일이 있을 수도 있었다며 동생을 위로했다. 평소 서로 디스를 일삼는 우리 남매에게 볼 수 없는, 오래간만에 따듯한 모습이었다. 큰 산을 올랐다 와서 그런지 나의 좁은 마음이 조금 넓어졌다. 이래서 사람들은 산을 오르나 보다. 


조카가 집에 왔다는 전화를 받고 우리는 서둘러 집으로 출발했다. 죽령터널을 지나, 내가 올랐던 소백산을 등에 지고 집으로 가는 길은 어쩐지 설렘으로 가득했다. 





<이번 등산을 위해 내가 구매한 것들>


등산화 - 기존에 가지고 있던 등산화, 국내 브랜드의 등산화를 어디에 두었는지 찾지 못해 지난가을에 아웃렛에서 가벼운 등산화를 샀다. 그러나 봄, 여름용이므로 메쉬소재라 겨울 산행에 적합하지 않았다. 친구가 산 등산화가 예뻐 보여서 거금을 들여서 같은 등산화를 구매했다. 그리고 현관청소를 하다가 쇼핑백에 처박아두었던 내 등산화를 발견했다. 눈길을 등산할 예정이므로 새 등산화는 넣어두고, 기존에 신던 등산화를 신기로 했다. 


방수 방풍 점퍼 - 동생이 쓰던 등산 잠바가 있었다. 15년은 족히 넘었을 오래된 등산 잠바는 색이 바랬고, 모자에 고무소재로 덧된 부분은 오래되어 갈라져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 살이 찐 나에게는 조금 작았다. 결국 하나밖에 없는 등산 잠바는 버리고 아웃렛에서 요즘에 유행이라는 해외 브랜드의 방풍 잠바를 샀다. 마음에 드는 제품은 60만 원이 훌쩍 넘어갔고, 그 잠바는 봄에서 가을까지 입기엔 너무 두꺼운 것 같아 1/3 가격의 얇은 방풍 잠바를 구매했다. 낙낙하게 입을 생각으로 라지 사이즈로 구매했더니 팔길이가 어찌나 길던지, 그걸 잘라서 양말을 만들어도 될 정도였지만 예쁘니까 감내하기로 했다. 


등산 폴 - 예전 회사에서 직원들과 등산을 갔을 때 누군가가 버리고 간 등산 폴을 주워왔던 적이 있다. 그것과 동생이 쓰던 등산 폴을 가지고 다녔는데, 지난번 치악산 등산을 갔을 때 친구에게 등산 폴 하나를 주었다. 알고 보니 등산 폴은 양쪽 모두를 써야 한다고 하길래, 십 년을 쓸 마음으로 27만 원을 주고 유명하다는, 접이식 등산 폴을 새로이 구입했다. 


스패츠, 아이젠 - 막내 동생이랑 북한산을 등산하기로 했을 때, 동생이 급히 우리 집으로 아이젠 두 개를 사서 보내왔다. 결국 등산을 가기로 한 날 눈이 와서 포기했지만 그 덕에 스패츠와 아이젠이 생겼다. 양말 하나를 사더라도 며칠씩 고민에 고민을 하는 나에게 각종 아이젠을 비교 분석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으므로 다행이었다. 


등산양말 -  아웃렛에서 등산 양말 몇 개를 사서 집에 왔더니 울 소재가 아니었다. 등산초보인 나도 겨울 산행에서는 울 소재의 양말을 신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친구가 고맙게도 울양말을 추천해 주어 그것을 급히 구매했다. 러닝을 할 때도 울 소재의 양말을 신을 것을 권고하고 있으므로 면소재의 양말은 추운 날씨에 땀이 나면 얼어서 동상에 걸릴 수도 있으므로 비싸더라도 울 소재의 양말을 구매했다. 


장갑 - 러닝용 장갑이 있긴 하지만 겨울 산행용으로 부적합한 것 같아 울소재의 장갑을 급히 구매했다. 그러나 손 모아 장갑을 샀어야 했는데, 나중에 러닝을 할 때도 사용할 목적으로 손가락장갑을 샀더니 산 정상에서 너무 손이 시렸다. 다음에 또 겨울 산행을 간다면 스키 장갑을 하나 장만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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