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도 까르띠에(Cartier)가 있었다

지금 그 반지는 어디에 있을까

by 모단걸






까르띠에(Cartier), 빨간 상자에 담긴 ‘트리니티 링’.


액세서리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 몇몇은 꿈꿔본 적이 있을 그 까르띠에 트리니티 링이 나에게도 있었다. 워낙 손이 못생겨서 반지에는 관심이 없던 나였지만 결혼반지를 한다면 ‘트리니티 링’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허영이 가득했지만 그 허영을 채울 수 없는 경제력을 가졌던 나의 이십 대에. 당시 만나던 남자 친구도 나와 비슷한 경제력을 지녔고, 어쩌면 나보다 더 좋지 못한 상황이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의 부모님은 자식들을 키우면서 지게 된 부채를 당신들이 갚으려는 의지가 있었고, 실제로도 열심히 농사를 지어 조금씩 상환을 하던 상황이었지만 그의 부모님은 주식투자의 실패로 파산하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갓 말단 공무원이 된 그에게 철마다 브랜드 옷을 사달라는 요구를 거침없이 하셨던 분들이었기에.


연애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자주 다퉜다. 그 다툼의 원인은 대부분 나에게 있었지만 이미 나 아닌 다른 여자를 좋아하게 된 그에게 나는 그저 오래 만난, 지겨운 여자 친구였을 것이다. 그 이전이라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들에도 그는 화를 냈고, 화를 내는 일이 별로 없던 그가 화를 내면 나는 그보다 몇 배로 화를 내며 싸우는 일이 반복되었다. 아마 그래서 그는 나에게 잦은 다툼에 대한 사과의 의미에 비록 오래 만난 여자 친구를 배신하고 있지만 결혼만큼은 나랑 해야겠다는 다짐의 의미를 더했던 것인지 결혼반지를 골라보라고 했다. 나는 화를 내지 않던 남자 친구가 자주 화를 내는 것에 대한 복수심에 나의 허영심을 더해 농담처럼 ‘까르띠에 트리니티 링’을 말했고 그는 선뜻 사주겠다고 했다. 막상 그가 그 반지를 사주겠다고 하자 덜컥 겁이 났다. 이 남자가 미쳤나, 둘의 월급이 빤한데 무슨 까르띠에냐. 하지만 그가 공부할 때 내가 냈던 데이트 비용과 오랜 인내심의 보상이라고 내 허영심에 면죄부를 주며 그를 따라 백화점으로 향했다.


금빛을 두른 빨간색 상자가 내 손안에 들어왔다. 나는 이제 이 남자랑 결혼을 하는구나. 6년간의 연애를 정리하고 우리는 머지않아 부부가 되겠구나. 세 개의 링이 교차된 트리니티 링을 왼쪽 약지에 끼자 실감이 났다. 연애 초반, 우리는 매일 천 원씩을 데이트 통장에 차곡차곡 모았다. 그렇게 만든 5만 원으로 실버 커플링을 샀었다. 은반지인지 은도금 반지인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한동안 우리는 그 허접한 싸구려 반지를 무척 소중하게 끼고 다녔다. 그러다 둘이 싸우고 그가 먼저 집어던졌는지 아니면 내가 먼저 집어던졌었는지 연애 중간부터는 끼고 다니지 않았다. 그 후, 반지가 갖고 싶다거나 굳이 커플링으로 우리가 연인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나에게 드디어 금빛을 두른 빨간색 상자가 온 것이었다.


그날 이후 오동통한 내 왼쪽 약지에는 트리니티 링이 끼워져 있었다. 내 손에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어울리지 않은들 어떠하리. 까르띠에 트리니티 링인데. 비록 우리는 가난하지만 나에겐 가난에 어울리지 않는 까르띠에 링이 있다는 것에 나는 마냥 행복했다. 그가 화를 낼 때에도 나는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참을 수 있었다. 그의 다른 그녀가 걸어온 전화에도 나는 그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니까 까르띠에 반지를 살 수 없는 형편의 남자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반지를 사주었기에 그 반지는 그의 사랑은 나뿐일 거라는 오만의 근거가 되었다. 결국 우리는 헤어졌다. 나에게 결혼을 약속하며 내가 원하는 트리니티 링을 사주고 나를 안심시켰던 그는 어쩌면 그 여자에게 가고 싶어 결코 우리 형편에 맞지도 않는 반지를 마지막으로 나에게 선물해주고 싶었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와 헤어지고 고민 끝에 나는 반지를 그에게 돌려주었다. 주변에서는 그 자식이 한 짓이 있는데 그걸 왜 돌려주냐, 끼고 싶지 않으면 팔더라도 돌려주지 말라고 말렸지만 서른의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이미 충분히 아픈데 굳이 결혼반지를 곁에 두고 싶지 않았다. 매일 자책과 한숨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는데 그 반지가 내 공간에 있다면 더 오래 아플 것 같았다. 앞으로 두 번 다시 까르띠에 링을 가질 일이 없을지라도 그것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트리니티 링의 의미는 사랑, 우정, 믿음이라고 했던가. 우리에게 결단코 있을 리가 없던 의미들이었다.


그 반지를 돌려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득 궁금해졌다. 그는 그 반지를 어떻게 했을지. 그 반지가 그 여자에게 갈 일은 절대 없을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가 뚱뚱하다고 했던 나에 비해 그의 새로운 그녀는 여리여리한 사람이었던지라 그 반지는 그녀에게 너무 클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렇다면 그는 그것을 가지고 있을까? 아니면 그녀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선물을 했을까? 결국 나는 보고야 말았다. 중고나라에 올라와있던 나의 까르띠에 트리니티 링을. 그가 사용하던 닉네임에 그의 전화번호까지. 한 번에 알아보았다. 저게 한때는 나의 반지였음을. 그랬다. 전 여자 친구에게 주었던 반지가 되돌아오자 그는 다양한 앵글로 반지 사진을 찍어 중고나라에 올려두었다. 몇 달간 내 손에 끼워졌던 터라 절반 가격에 올려두는 그의 확고한 판매 의지까지.

그걸 보는 순간 예상외로 분노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썅, 이럴 줄 알았더라면 내가 팔아버릴 것을!이라는 후회만 생겨났다. 아마 그도 난감했으리라. 전 여자 친구가 돌려보낸 반지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가늠도 되지 않았으리라. 그래서 그는 중고나라에 반값에 올렸으리라. 그 판매글을 내가 볼 것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한 채로 말이다.

요즘도 가끔 백화점에서 까르띠에 매장을 지나칠 때마다 후회가 된다. 그때 돌려주지 말고 내가 중고나라에 판매할 것을. 서른의 나는 왜 잠깐의 아픔을 참아내지 못했을까? 그랬다면 내 손엔 불로소득 6,70만 원이 생겼을 텐데.


지금쯤 그 반지는 누구에게 갔을까? 그 반지를 끼고 있는 분이 있다면 부디 좋은 일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비록 나는 그러하지 못했지만. 하긴, 이미 절반 가격에 그 반지를 득템 하신 분은 그것만으로도 행운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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