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결혼식에서 전 남친과 축가를

내 인생에서 가장 쪽팔렸던 그때 그날

by 모단걸




우리 세 자매가 이십 대이던 시절, 지나가는 듯이 이야기를 했었다. 누가 되었든 가장 먼저 결혼하는 사람의 결혼식장에서 나머지 두 사람이 열정적으로 춤을 추며 축하해주기로. 아무래도 내가 첫째니까 확률상 내가 먼저 결혼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에 쉽게 그러자며 동의했었다. 그러나 태어나는 데에는 순서가 있어서도 가는 데는 순서가 없다는 말은 결혼에도 적용할 수 있는 말이었음을 둘째가 결혼식 날짜를 잡고서야 깨달았다. 아, 그토록 순진했던 과거의 내가 이토록 미웠던 적이 없었다. 어쨌든 셋이 깔깔 웃으며 했던 이야기를 둘째가 기억하지 못하리라 믿었다. 나는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를 생생히 기억하며 두려움에 떨었지만 둘째는 기억하지 못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두려움이 서서히 옅어지던 어느 날, 동생이 전화를 해왔다.

“언니, 내 결혼식에서 셋째랑 같이 춤추는 거 알지?”

‘아, 이년이 기억하고 있네. 젠장’ 이럴 때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잡아떼는 게 상수 아닌가.

“무슨 소리야? 갑자기. 내가 왜 니 결혼식에서 춤을 추냐? 미쳤냐?”

“왜 이래. 언니 경주 살 때 셋이 언니네 집에 모여서 이야기했었잖아. 기억 안 나?”

‘아, 집요한 년. 이렇게 장소까지 기억할 줄이야.’

결국 나는 기억난다고 실토하고야 말았다. 휴우

다음 작전은 인정에 호소하기.

그것조차 통하지 않았다. 젠장.


어쩔 수 없었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그렇지만 춤은 출 수 없었다. 클럽에서야 음악에 몸을 맡기고, 술에 나의 정신을 의지한 채 막춤을 춰댔지만 어디 일가친척과 동생의 직장 동료들이 모인 결혼식장에서 막춤을 출 수야 없지 않은가. 시집도 못 간 채, 완전히 정신 나간 언니가 되고 싶지는 않았기에 동생에게 춤 대신 축가를 해주겠다고 제안했고 동생은 그거라도 좋다고 했다. 사실 나는 어릴 때 노래를 곧잘 했었다. 여덟 살 때부터 게을렀던 나는 지각을 자주 했는데 그럴 때면 선생님은 벌로 나를 교실 앞으로 불러 노래 한 곡을 부르게 했었다. 노래가 끝나면 선생님은 시원시원하게 노래를 잘한다며 나를 칭찬하셨다. 동생들과 매일 소리 지르며 싸워왔던 나는 목청이 좋았고, 그때만 해도 음감도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또 어땠던가. 교내 중창단 활동을 했던 나였다. 까짓것 노래는 부를 수 있겠다 싶었더랬다 그때의 나는. 그러나 노래를 부르지 않은 지 15년이 지나고 나니 나는 음치에, 박치가 되어있었다는 것을 차 안에서 연습하면서 깨달았다. 그리고 문제가 또 있었다. 내가 노래방에서 부르는 노래들은 다들 이별 후 심경을 담담히 노래한 발라드 곡들 뿐이었다. 내가 부를 수 있는 노래 중에 축가로 적당한 노래가 없었다. 당시 남자 친구에게 죽을 상을 하고 상황을 설명했다. 내게는 결혼 이야기를 자주 나누고, 서로의 부모님 집에도 몇 번 놀러 간 적도 있었으며, 더군다나 우리 부모님께서도 마음에 들어하는 남자 친구가 있었다. 내 고민 이야기에 남자 친구가 자기가 노래를 곧잘 한다고 하는 게 아닌가. 아! 이 아이가 나의 동아줄이 되어줄 수 있겠다 싶었던 나는 남자 친구에게 듀엣으로 같이 축가를 하자고 제안했다. 남자 친구도 흔쾌히 동의했다.


축가라면 모름지기 신나는 곡이 제격이지! 라며 우리는 신나는 곡을 찾았지만 나의 노래실력으로 부를 수 있는 신나는 듀엣곡은 없었다. 고민을 계속해가던 어느 날 영화 ‘김종욱 찾기’를 다시 보았는데 공유가 부른 ost, 두 번째 첫사랑이 귀에 꽂혔다. 저 노래라면 내 노래 실력으로도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남자 친구에게 들려주니 그도 ok 했다. 우리는 집 근처 코인 노래방에서 두 번째 첫사랑을 맹연습했다. 그의 노래 실력에 비해 한참 모자란 나의 노래실력을 만회하는 길은 연습, 연습 또 연습뿐이었다. 출퇴근 길마다 열창을 했지만 나의 실력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고, 남자 친구와 나의 관계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처음 친구들에게 남자 친구와 내 동생의 결혼식 축가를 부르게 되었다고 이야기했을 때, 친구들은 그러다가 너희 혹시 헤어지면 어쩌냐며 진심 어린 걱정의 말을 했었다. 그때의 나는 그럴 리가 없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는데 이때의 나는 우리의 관계에 대해 자신이 없었다.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 알면서도 발걸음을 멈출 수 없는 그런 때. 그때의 내가 그랬다. 우리는 더 이상 결혼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함께 있어도 즐겁지 않았다. 그렇지만 동생의 결혼식은 코 앞이었고, 남자 친구에게 우리가 머지않아 헤어질 것 같으니 축가를 부르지 말자고 이야기할 수도 없었다.


어쨌든 우리는 동생의 결혼식장에서 다정하게 손을 잡고 들어가 두 번째 첫사랑을 불렀다. 사실, 전 남자 친구가 모든 파트를 불렀고, 나는 후렴 부분만 따라 불렀다. 내 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모든 친척들은 나도 곧 남자 친구와 결혼을 할 것이라고 기대를 하며 자리를 떠났을 테지만 우리는 머지않아 헤어졌다. 사실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는 순간에도 나는 우리가 헤어질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게 그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을 뿐.


동생이 축가를 불러주어서 고맙다며 30만 원의 수고비를 주며 “언니, 니 남자 친구가 노래를 다 불렀더라? 니는 부르지도 않았으니 이 수고비는 니 남자 친구 다 줘야 해”라고 당부를 하지 않았더라도 나는 그 수고비를 전부 남자 친구에게 줄 생각이었다. 그러면 남자 친구는 나에게 밥을 사준다거나, 꽃 한 다발을 사 줄거라 생각했었지만 역시 그는 나에게 십원 한 장 쓰지 않았다. 물론 그것 때문에 헤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까지 쌓여왔던 서운함에 그는 서운함 하나를 더 얹었다. 동생의 결혼식 2 주 후에, 그는 우리 집에 들어올 때처럼 나와 상의도 없이 짐을 싸서 집을 나갔고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매거진에 있는 ‘우리 집에 왜 왔니’ 참고) 그렇게 우리는 내 동생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른 채로 헤어졌다.


가끔 오랜 시간이 흘러 내가 결혼을 하게 되고, 혹시 누군가의 실수로 둘째 동생 결혼식 영상이 유출되어 내 미래의 남편이 보게 되면 어쩌나 하는 어이없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내가 살아오면서 결혼 결심을 두 번 정도 했었다는 게 비난받을 일은 아닐 테지만 그것보다 나의 어이없는 노래실력이 탄로 나는 게 더 두렵기도 하다. 축가를 부른 우리는 헤어졌지만, 동생 부부는 행복하게 잘 살고 있으니 나의 이 쪽팔린 과거가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나의 쪽팔림을 애써 포장해보지만 여전히 그 생각만 하면 이불을 걷어차고 싶어 진다. 이제 셋째 동생이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 설마 셋째도 나에게 축가를 불러달라고 하지 않겠지? 하긴, 그날 축가를 부른 나 못지않게 쪽팔려했던 셋째였으니 나에게 부탁하는 그런 일은 없겠지.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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