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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Nov 05. 2020

집에 작은 책방이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작은 집에는 아주 작은 책방이 있습니다. 그 방에는 십 년 된 5단짜리 책장과 제가 직접 벽돌을 쌓아 만든 책장과 오로지 책 밖에 없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저는 책이 많은 집을 꿈꿨습니다. 그래서 방 세 개짜리 아파트로 이사를 오면서 방 하나는 책으로만 가득 채웠죠. 저는 책을 사서 읽습니다. 제가 읽는 책들은 소설에서부터 에세이, 지리, 정치, 문화, 역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이상문학상 작품집이나 젊은 작가상 수상집 같은 책들도 있습니다. 어떤 소설이 어떤 평가를 받고 어떤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전개 해내가는지가 궁금합니다. 게 중에는 이런 것도 소설이 되나 하는 의구심이 드는 이야기들도 있습니다만 다양한 이야기를 읽고 소유한다는 것이 저에게는 기쁨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모아 두고, 제가 관심 있어하는 분야의 책을 읽고 언제든 다시 꺼내볼 수 있도록 저는 책을 삽니다.


저는 세 살 때 한글을 뗐습니다. 제가 재잘재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자 엄마를 저를 앉혀놓고 한글을 가르쳤습니다. 한글을 떼자 저는 읽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할아버지의 낡은 수첩에 적힌 글자도, 아빠가 구독하던 농민신문도 곧잘 읽었습니다. 물론 뜻은 몰랐지만 내가 읽을 수 있다는 것이, 그런 저를 똑똑하다 이야기해주는 가족들의 응원도 저를 자극시켰습니다. 가난했던 우리 집에는 동화 전집도, 백과사전도 없었지만 세상엔 읽을거리들이 넘쳐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동화책 한 권을 갖고 싶었습니다. 백설공주 이야기이든 인어공주 이야기이든, 그림동화든 제 소유의 동화책 한 권 말입니다.


제가 일곱 살 때, 오금에 종기가 나서 걷기 힘들었습니다. 그런 저를 데리고 부모님은 읍내에 있는 병원에 갔습니다. 저를 진찰한 의사 선생님은 종기를 제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진찰실에 있던 저는 의사 선생님의 묘사에 겁을 먹었습니다. 수술을 하기 싫다며 울었죠. 일곱 살 다운 선택이었습니다. 병원이 떠나가라 목청껏 우는 저를 엄마는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엄마의 매질보다 (병원이라 집에서 때리던 것처럼 빗자루나 싸리나무로 만든 회초리가 아니라 손바닥으로 등짝을 때렸습니다) 칼이 더 무서웠기에 급기야 의사 선생님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빌었습니다. 앞으로는 동생들도 안 때리고 거짓말도 하지 않겠다며 지난 7년간의 잘못을 고해성사하며 수술만은 하지 말아 달라고 눈물범벅이 되어 빌었지만 의사 선생님은 단호했습니다. 제가 두 손 모아 싹싹 빌어도 해결이 되지 않자 결국 저는 병원 복도 이쪽에서 저쪽으로 구르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딸의 기이한 행동에 놀란 부모님은 더 이상 때리지 않았습니다. 그런 제가 부끄러웠던 엄마는 저를 일으켜 세우고는 수술을 잘 끝내면 동화책을 사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어린 나이임에도 동화책 한 권으로 끝내기에는 아쉬운 기회라고 생각했던 저는 동화책 두 권을 사달라고 협상을 했고 일곱 살 딸의 낯부끄러운 행동에 놀란 엄마는 결국 승낙했습니다. 저는 제 발로 진료실에 있는 침대에 올라가서 엎드렸습니다. 끝나고 나서 제가 동화책을 받았는지, 받았다면 한 권인지, 두 권인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저희 부모님의 성격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사주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아마도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저의 등짝을 몇 번 더 때렸을지도 모릅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방학이면 외갓집에 자주 놀러 갔었는데 저는 사촌언니의 책장이 무척 부러웠습니다. 부러웠지만 다른 사람이 읽지 않고 처박아두는 책을 빌려 읽는 게 부끄럽지 않았던 저는 백과사전과 세계 명작 동화 전집을 신이 나서 꺼내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집안에 틀어박혀 책만 읽는 저를 외숙모는 대견하게 생각하셨던지, 눈이 나빠질 수 있다고 쉬엄쉬엄 읽으라며 간식을 놓아두고 나가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때의 저는 아마 제가 알고 있던 세상 너머의 세상이 책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 신기하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중학교에 진학하자 학교 도서관에 매일 갔습니다. 시골 중학교의 도서관이니 많은 책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곳은 산골 소녀인 제가 산골을 넘고 시간을 건너 세상을 탐험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습니다. 게다가 도서관은 공짜로 책을 빌려볼 수도 있지 않습니까. 더 이상 가난한 부모를 졸라 책을 사지 않아도, 친구 집에서 눈치 보며 책을 빌려보지 않아도 되었으니까요. 저만큼 도서관에서 책을 많이 대여하는 친구들도 없었습니다. 황순원의 소나기, 염상섭의 실험실의 청개구리, 김유정의 봄봄, 이광수의 유정과 무정, 김소월의 시집, 윤동주의 시집 등 다양한 현대문학을 읽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제가 다닌 중학교로 교생실습을 나갔을 때, 몇몇의 학생들이 저에게 아는 체를 했습니다. 얼마 전, 학교 도서관 전산화 작업을 하면서 도서대출기록카드에 내 이름을 보았고, 저보다 많이 도서대출기록카드에 이름이 적힌 사람은 없었다고 말이죠.


이제 작은 책방을 가진 저는 언제든 제가 읽고 싶은 책을 꺼내서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희망이 없다고 느껴지는 날에는 내 작은 책방에 들어가 ‘빨간 머리 앤’을 펼쳐 놓고 긍정적인 앤을 통해 힘을 얻고, 외로운 날이면 어려워서 꽂아두기만 했던 사회과학 서적을 읽으며 괜히 우쭐해지기도 하고, 업무에 시달렸던 날에는 야한 소설을 자유롭게 꺼내 읽을 수 있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사실 어떤 책들은 과시용으로 꽂혀있기도 합니다. 뭐 그게 나쁜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중학교 때 친구 녀석 중 한 명은 읽지도 않는 시집을 옆구리에 끼고는 괜히 복도를 어슬렁 걸어 다니기도 하고 벤치에 앉아있기도 했습니다. 읽지도 않는 시집은 왜 들고 다니냐는 제 질문에 그 녀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가 뭘 잘 모르네. 자고로 시를 읽는 남자만큼 매력적인 남자도 없다니까. 이래 댕겨야 어? 여자 후배들이 어머 오빠 멋져! 하면서 나를 따르는 것이다 이런 말씀이란 말이야.” 저야 이성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으로 책을 소유하는 것은 아니지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뭐 어떻습니까. 어떤 책은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저의 안목을 가늠케 하는 지표가 될 수 있으니까요. 이유야 어떻든 제 작은 집에는 아주 작은 책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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