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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무 Jul 27. 2021

미용실 아줌마

휴대폰 어플 잘 사용하세요?

서울살이 5년 차, 그중 절반 이상은 이 동네에 머물렀다. 골목 군데군데 옛 기운이 묻어나는 곳. 때 묻은 문 손잡이, 집 앞에서 말리는 빨간 고추, 그늘에 자리 잡고 앉아 담소를 나누는 어르신들. 낮은 건물과 높은 건물이 혼재되어있는 이 동네.


누워서 핸드폰만 바라보다 벌떡 일어나 "머리를 자르러 가야겠어"하며 집을 나섰다.

문을 여는 순간부터 머리 손질까지 모든 과정을 섬세하게 다뤄주는 단골 미용실이 있는데, 그날따라 옛 청취가 묻어나는 미용실이 눈에 띄었다.


'미소 미용실'


통 유리로 된 이 미용실은 나름 안을 가려보겠다고 초록색으로 무장했는데 미용사 아줌마의 화려한 경력을 대변하듯 휘황찬란한 멘트들이 적혀있었다.

미용경연대회 최우수 작품 상


21세기를 살아가는 나는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꺼내 들고 그 미용실의 후기를 찾아보았다.

네이버 검색, 네이버 지도, 카카오 지도...

3개의 플랫폼에 검색해봤지만 장소 등록은커녕 그 흔한 리뷰, 블로그 글이 전혀 없었다.

심지어 손님도 없었다.


'이럴 수도 있나? 이곳, 정말 미용실이 맞을까? 괜히 갔다가 내 머리만 망치면 어쩌지?'

의심은 잠깐, 손은 이미 미소 미용실 문을 열어젖혔다. 딸랑


머리를 단정히 올려 묶으신 미용사 분께서 나를 반겼다.


"뭐 하시겠어요?"

"머리 자르려고요. 단발로요."


단 두 마디에 나는 보자기를 둘러 매고 의자에 앉았다.

그렇게 시작된 미용사 아주머니와의 만담. 아주머니는 내 뒤통수를 바라보고 나는 아주머니를 바라보고.


왜 미용사로 일하시냐 물으니, 젊은 시절 자신에게 빚을 진 사람이 돈 대신 이 건물을 줬고 미용실이 있길래 그 길로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하셨다. 그리고 30년 평생을 이 자리에서 머리를 만졌다고 하셨다.

경이로움을 느꼈다. 어떻게 30년을 똑같은 일만 할 수 있지.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으려나.

하긴 우리 부모님만 봐도 그렇지.


미용실 리뷰가 없던 것이 마음에 걸려서 휴대폰을 잘 사용하시는지 등등 인터넷 활용도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때만 해도 우리 부모님만 휴대폰을 잘 모르나 싶었던 상태였고, 다른 분들은 잘만 쓰시는 줄 알았는데 내 예상은 빗나갔다.


휴대폰으로는 전화만 해요.
저는 은행 어플고 안써요.


아차 싶었다.

우리 부모님만의 어려움이 아니었구나.

미용실 아주머니에게 나의 전화번호와 함께 휴대폰 사용에 어려움이 있으시거나 필요하신 게 있으면 연락 달라고 했다. 바로 근처에 살고 있으니 필요하면 오겠다는 말과 함께.


이야기가 끝나고 바라본 거울에는 단발머리를 한 엄지손톱이 앉아있었다.

아주머니와의 이야기 끝에 만들어진 내 새로운 헤어스타일, 맘에 들었다. 집에 돌아와 한참을 자랑했던 것 같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마음에 든다"라고


그날 나의 단발머리가 "미용경연대회 최우수 작품 상"을 받을 만한 작품은 아니었겠지만,

네이버나 카카오에서는 찾을 수 없던 '내 마음에 드는 미용실'을 발견했다.


 미용실을 찾는 사람들도 '마음에 드는 미용실'이기 때문에 찾을 것이다. 리뷰 없이도 찾아갈  있는 미용실,  인생 처음이었다.


만일 휘황찬란한 가게 홍보 메시지가 카카오 지도에 있었다면, 리뷰가 있었다면, 그것도 좋지 않은 리뷰가 있었다면 나는 ' 마음에 드는 미용실' 찾을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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