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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홍 May 18. 2016

불빛

2014

가로등 하나 없는 길, 공업사와 저렴하지도 않은 오피스텔이 두어개, 가난해보이는 이단종파 교회 건물이 있을법한 그런 길을 쭉 따라가다 보면 나오는 시내가 있었다. 좋아하는 곳은 아니지만 나는 그곳의 간판을 보기를 즐겼다. 시대가 변하면서 간판의 추세도 바뀌었다. 유행이 바뀌면서 조명을 LED로 교체하는 가게들이 있는가 하면, 오래된 식육식당 같은 곳은 아직도 80년대 90년대의 글씨체와 조명을 쓰고 있다.


        새롭고 현대적인 업소에는 역시 새로운 조명이 어울린다. 대체로 간판은 가게 분위기를 반영한다. 촌스럽고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간판이라도 내용물과 구색이 맞으면 그만이다. 이를테면 설렁탕체라고 이름까지 붙은 바로 그 글씨체. 내가 개인적으로 그런 가게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런 간판들이 모여 뿜어내는 인공적인 조명의 빛과 모양은, 내가 집안이 아닌 밖에 있구나 하는 기분을 준다. 육지 구경을 나온, 폐 호흡법을 배워가는 어류의 기분이 든다. 신선하지만 내가 오래 있을 곳은 아닌 셈이다.


        바로 그런 곳에서 늘 너를 만났다. 너는 으레 파란 간판을 한 편의점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기다리곤 했다. 편의점이라고는 하지만 프랜차이즈는 아니고 개인이 직접 하는, 옛날로 치면 구멍가게같은 곳이었다. 맨 처음 만나기로 약속을 했을때 본 곳이 바로 여기였는데, 그 뒤로는 늘 여기서 만나게 되었다. 어디로 함께 향하기 전에 무언가 필요한 걸 사서 가기에 좋은 것이다. 때때로 로또를 몇 게임 사기도 하고, 너에게 필요한 라이터나 말보로 레드, 술 같은 것을 사갔다.


        희미한 쇠 냄새와 고기 냄새가 나는 길을 지나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들으며, 네 마른 허리에 손을 올리고 걸었다. 시시한 이야기는 하기 싫었지만 그렇다고 중요한 이야기도 없었다. 다들 이렇게 별 볼일 없이 는 걸까? 언제부턴가 내가 아닌 그 누구의 입에서 나와도 상관없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만 하게 되었다. 너랑 함께 뭔가 공유할 수 있다면 꼭 나쁜 일은 아니겠지.


        항상 어두운 밤 시간이 어울릴 법한 길. 이 길에는 모텔이 많았다. 이 쪽의 간판들은 여전히 네온을 사용하면서도 어딘가 세련된, 그러면서도 아주 희미한 퇴폐의 냄새가 있었다. 워낙 흔해져버려 의미도 없는 그런 퇴폐. TV를 틀고 침대에 나란히 누우면, 너는 늘 마른 안주를 뜯으며 TV를 보고 있었고 나는 맥주를 마시며 너를 보고 있었다. 이때는 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평범한 주말에는 월요일 출근할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지만, 돈을 내고 들어온 이 공간에선 그럴 필요가 없었다.


        혹은 단지 너와 함께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너는 술을 마시고서 으레 불을 붙여 줄담배를 피우곤 했다. 그렇게 네가 담배를 태우는 것처럼, 나도 너를 만나면서 하나하나 불을 붙여 마시듯, 소모했던 걸까. 그저 그렇게 소모하고 싶었다. 매번 날카로운 담배의 맛이 났지만 상관없었다. 오히려 그게 좋았다. 그 소리, 작아져가는 TV의 소리. 창문 밖의 불빛. 잠들더라도 불빛은 늘 그곳에 있었다.



커버 사진: http://ggholic.tistory.com/m/post/5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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