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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홍 Jun 27. 2022

형완의 임무(1)

세부 공고문

인도를 가득 메운 파랗고 붉은 네온과 홀로그램 광고물의 조명이 앙상한 벚나무 가로수를 물들이고 있었다. 정체된 도로는 규칙적으로 신호등을 따라 흘렀고, 하수구에서 희미하게 역류한 오수와 음식물 쓰레기 수거차 냄새가 퇴근길 인파를 뚫고 버스에서 막 내린 형완의 비강을 찔렀다. 형완은 숨을 잠깐 참아보았지만 이내 포기하고 흐름과 하나 되기를 택했다.


형완의 집은 채산시에서도 미개발된 달동네 안쪽에 있었다. 허술한 시멘트 담벼락 아래에서 함께 놀곤 하던 친구들은 제각기 어딘지 모를 곳으로 흩어졌으면서도 네트워크 덕에 언제나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채널이 열려있다고 해서 꼭 소통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발걸음을 옮기던 형완은 3개월째 업데이트되지 않는 한 단톡방을 괜스레 열어보았다. 배를 타는 친구는 스물셋에 결혼했다가 6개월 만에 이혼했고, 간판을 만드는 친구는 남아공 여성과 결혼해서 네 자녀를 가졌다. 행복의 미터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메신저 프로필로 행복도를 가늠해보고픈 욕구가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발걸음은 어느덧 달동네 안쪽 굽은 골목길로 향했다. 야트막한 언덕을 따라 늘어선 슬레이트 지붕 아래는 나름대로 다양성의 보고라고 할만했다. 형완과 같은 터줏대감부터 통일 이후 남쪽으로 내려오기를 택한 북한 출신 주민들, 그리고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노동자들.


동네 할머니들이 모여 수다를 떠는 평상과, 노상에서 비바람을 맞아 해진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옆집 무슬림을 지나. 마침내 집에 이르렀다. 차갑게 언 회색 알루미늄 대문을 열려는 찰나, 녹슨 우편함 속 낯선 편지봉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우편물은 ‘무진대학교 의과대학’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한 번쯤 들어본 것도 같은데, 의대에서 나에게 무슨 볼일일까. 피곤에 절은 형완은 편지는 팽개친 채 좁은 마루에 걸터앉아 스마트폰부터 다시 확인했다. 무진대 의대로부터 메시지가 붉은 바탕 숫자 ‘1’을 띄우고 있었다.


메시지를 본 순간 왠지 모르게 먼저 손길이 간 봉투를 뜯자, 정갈한 모조지에 전문가가 손댔을 법한 글꼴과 디자인의 편지가 손끝에서 느껴졌다. “‘의식 다운로드 및 의체 적용’ 참여 연구 임상시험 대상자 선발 안내.” 여러 의미로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제목이었다. 의식을 다운로드한다는 말은 뭐고 어째서 내가 선발된 걸까.


편지에는 임상시험 대상 성별, 흡연 여부, 병력 등 도움이 안 되는 정보와 더불어 “세부사항은 별도로 발송된 SNS 메시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문장과 QR코드만 찍혀 있었다. 그제서 형완은 스마트폰 화면 너머 메신저로 날아온 세부 공고문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본 임상시험의 목적은 건강한 성인의 의식을 디지털화하여 다운로드하고 나아가 의체에 적용하는 기술의 안전성을 시험하기 위해 실시합니다. / 모집 인원: 총 10명.”


“모든 대상자는 8박 9일간의 입원과 3개월의 모니터링 기간을 동일하게 진행하게 됩니다. 입원 중에는 3일간의 의식 다운로드 후 이상반응 검사, 3일간의 인지능력 검사, 3일간의 동작 검사를 거칩니다.


퇴원 후에는 3개월간 자유로운 일상 활동을 누리며 모니터링 기간을 가지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이상반응이 있을 경우 의체에 대한 방문 또는 원격 세부 조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 본 임상시험에 참여하실 경우 일정한 금액의 사례비가 지급됩니다.”


“본 임상시험에 참여를 희망 시 다음의 설문조사를 완료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마감일: 모집 완료 시까지.”


형완은 설문조사 링크를 터치하고 홀린 듯 작성해나가며 제출 버튼을 누를지 말지를 고민했다. 공고문의 이상함을 눈치 채지 못한 탓인지, 9일간의 이색적인 휴가를 즐길 생각에 이끌려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낡은 담장 너머로 고양이의 신경질적인 울음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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