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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Jan 03. 2020

멈출 수 없는 나의 시계

서른은 아직 속도를 늦출 때가 아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거칠 것 없었던 여고생들이 언제 30대가 돼버렸는지 세월이 무색 키만 하다.


우리는 여전히, 아직도 미성숙하고 불완전하고 어린애 같은 구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보다도 덜 여물었던 20대 때는 학창 시절 얘기를 할 때 "아, 맞다! 기억나!"라는 말이 주를 이뤘었고 우리는 공통된 추억을 회상하며 마치 여고생처럼 깔깔거리고 웃었다.


그러나 요즘은 가끔씩 그 추억을 끄집어낼 때면 "그랬었나?, "기억 안 나 ㅠ-'ㅠ'가 빠져선 안된다  -"가 태반.


어쩔 수 없는 시간의 변화에 서글퍼할 새도 없이, 나는 우리 엄마와 아빠가 떠오른다.


우리의 나이보다 더 오랜 기억들과 힘겹게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기 때문이리라.


더 중요한 것들을 기억하기 위해 덜 중요한 것들을 금세 잃어버리는 노년의 저장소는 삐걱거리면서도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다.


오랜 것과 나이 듦에 대해 생각해야 할 나이가 되다 보니, 용광로 같았던 시절과 숯 같은 시절 사이에 얼마나 찰나 같은 시간 만이 남아 있는 것인지 느끼게 된다.


20대의 파릇함과 뜨거움이 벌써 사라지려고 할 때, 그보다 더 은근하게 끓어오르는 노년의 사투를 바라보면서 제2의 연료를 태우는 내 나이에 더욱 익숙해져야만 한다.


내 연료는 나뿐만 아니라 내 부모의 열정까지도 데워줄 수 있는 아주 고마운 것.


다시 힘을 내는 나를 보고 희망을 갖고 설레는 마음을 갖는 부모님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자신의 학창 시절은 잊어도 내 학창 시절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그들의 낡은 기억저장소를 보고 있노라면


내 시계를 멈출 수 없다.


내 시계는 내 친구들과 내 부모의 추억에도 기준점이 되기 때문이다.


나 자신과 타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한 번에 담겨있는 신비로운 시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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