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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Jul 24. 2020

침묵은 동의가 될 수 없다

인정하기 싫은 것들

요즘 나는 너무 많은 침묵 속에 살아간다. 나 스스로 입을 닫아 버리는 자발적인 침묵이 아니라, 나를 향한 침묵을 곱씹으며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침묵이 오랠수록 희망과는 멀어지므로 긴 침묵에 이어 불안이 따라오는 것은 필연적이다.


누군가는 침묵이 금이라 하였다. 그러나 말을 아끼는 것과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은 완전히 다른 성격의 것이다.


마음에 담아둔 뾰족한 말을 내뱉지 아니하기로 결심한 것은 잘한 일이다. 칼 끝을 남에게 겨눈 것이 아니라 내 안으로 녹여냈으니, 남을 상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것 역시, 침묵이라는 이유로 금에 견줄 수 있을까.


그것은 무시다. 단순히 무시가 아니라 존중이라는 단어의 저 먼 반대편에 위치한 어떤 단어일 것이다.


그동안 무시당하거나 거절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침묵은 금이라고 믿고 싶었지만 이제는 인정해야 할 때가 왔다.


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마주하는 침묵에 대하여

5월, 단편 소설을 투고했다. 총 여덟 군데에 소설을 실은 파일을 보냈다. 한 군데에서는 일주일 만에, 또 다른 한 군데에서는 두 달 만에 거절 메일을 받았다. 처음 써본 소설이니 별 기대는 안 했다. 그런데 기대가 아예 없진 않았나 보다. 아직 답이 없는 여섯 출판사들의 침묵에 대하여 그것이 거절인지 숙고인지 점을 쳐보고 있으니 말이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많은 수의 작가 지망생들이 이런 침묵을 마주하고 있을 것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거절’의 벽을 말이다.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져 오는 침묵이란 벽은 나의 능력마저 한계에 부딪치게 하는 저주를 내린다. 나보다 좋은 작품을 써낸 사람들에게 기회가 갔을 것이라는 낙천적인 생각보다는 내 능력이 그것밖에 안된다는 자학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저주를.


어떤 소설가는 여러 번 퇴짜를 맞고 겨우 겨우 한 출판사와 계약하여 베스트셀러를 넘어선 스테디셀러 작가가 됐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작가는 소수에 불과하다. 우리 주변에는 늙어 죽을 때까지 소설가의 꿈을 품어만 보고 이루지 못한 작가 지망생이 훨씬 많다.


이러한 침묵을 자양분 삼아 훌쩍 성장하여 출판사들을 사로잡는 멋진 작가가 된다면 좋으련만,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다.


치졸한 복수심에 불타 연이어 작품을 써내려 나갈 열정 조차 없다. 나를 놓친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줄 거야!라는 대사를 떠올리면 헛웃음만 나온다. 이름도 없는 무명의 작가 지망생이 쓴 a4 25장 분량의 단편 소설을 읽고, 누가 복수를 당할까 두려워하고 수작을 놓쳤다고 후회를 한단 말인가.


브런치에라도 올려볼까 했지만 그럴 소설도 아니고, 진짜로 그냥 프로토타입일 뿐이라 힘이 빠진다. 무명이기에 핵심기술만 추려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투자를 유치해야 하는데, 사실은 밑천 자체가 없다는 것이 들통났다는 게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오늘부로 여섯 개의 침묵은 확실히 거절이 되었다. 더는 기대하지 않고,


또 다른 소설을 써야지!


사실 단편을 투고한 것은 빨리 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구상해 둔 장편 소설들을 쓰려면 가능성을 인정받아야 하는데, 가장 빨리 가능성을 내보일 수 있는 것이 단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 자체가 실패 요인이었다. 단편 소설은 짧기 때문에 쓰기 쉽다는 편견을 가진 작가 지망생이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을 리가 만무할 터. 내가 원래 쓰고자 했던 장편 소설은 정석으로 써야만 한다. 그전에 더 많은 소설을 읽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맛있는 소설들>이라는 브런치 매거진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브런치에 컨텐츠를 연재한다는 사실을 명목 삼아 좋은 소설을 읽고, 분석하고 글을 쓰면서 내 소설도 재미있게 읽힐 시간을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내가 소설을 읽으면, 사람들이 궁금해한다. 왜 소설을, 그것도 고전 소설을 많이 읽냐며 묻는다. 그러나 별 이유는 없다. 나도 그런 소설을 쓰고 싶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좋은 소설을 쓰고, 좋은 사람들에게 읽히며, 좋은 작가가 되고 싶다.


그때는 침묵이 아니라 박수로 인정을 받을 것이다. 긍정적인 생각이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 내 줄 것이라 믿는 수밖에.


결론적으로 침묵은 절대 동의가 될 수 없다. 침묵은 거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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