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에의 강박, 나홍진이 건네는 메세지
완벽한 도미 요리
어느 날, 요리사에게 주문이 하나 들어 온다. 웨이트리스가 건낸 주문서에는 『완벽한 도미 요리』라고 쓰여 있다. 요리사는 고민하며 레시피를 창조해 내고, 실전에 돌입하여 도미를 조리한다.
도마 위 도미의 배를 갈라 내장을 정리하고, 조금 거친 비늘은 벗겨낸다. 말갛게 드러난 표피 위로 레몬즙을 발라 산미를 더하고, 토마토원액을 도미의 뱃속에 채워 넣은 뒤, 향긋한 레드 와인을 발라 색감을 살려 준다. 달궈진 그릴에 도미를 굽기 전, 자신의 손등을 얹어 불의 세기를 확인한다. 바싹하게 구워진 살점을 맛 본 요리사는 만족한 표정이다. 그리고 주사위같은 버터 두조각을 팬에 달구어 녹인 후, 도미의 겉면에 버터를 발라 그릴에 굽는다.
도미를 굽는 시간을 기다리며 각종 야채를 다듬어 볶고, 도미 위에 뿌려질 소스를 완성시키는 요리사. 대파도 가지런히 썰어 접시 밑에 깔고, 도미와 양념을 올려 오븐에 구우려는 순간, 접시를 떨어 뜨려 요리를 망치고 만다. 상심한 요리사. 그러나 결심했다는 듯이 다시 모든 과정을 반복한다.
도미의 배를 가르고, 비늘을 벗기고, 토마토를 주입한 도미에 와인을 바른다. 야채를 다듬어 소스를 만들고 버터를 녹여 도미의 겉면에 발라 그릴에 초벌구이한다. 정갈한 대파 위 모든 재료를 올리고, 조심스럽게 오븐으로 이동해 접시를 밀어 넣는다. 초시계는 적절한 조리시간을 알려주기 위해 쉼없이 뛰고 있는 중이다.
비커와 실린더가 가득한 요리사의 주방은, 주방이라기 보다는 흡사 과학실의 모습을 하고 있다. 여러 차례 이루어 진 실험 끝에, 입맛에 맞는 소스를 개발한 요리사는 본격적으로 조리를 시작한다. 파프리카, 피망, 적양배추, 양파. 야채를 다듬다 검지를 잘라버리지만, 아랑곳 않고 잘린 검지 손가락을 주워 음식물 쓰레기 통 어딘가로 던져 버리는 요리사. 그에게 있어 완벽 추구는 고통에 우선한다.
오븐에서 잘 구워져 나온 도미를 접시에 옮겨 담고 플레이팅을 시작한다. 돋보기와 핀셋을 이용해 자신의 머릿속에 구상한 최고의 레시피 대로 색색의 야채들을 신중히 배열하는 요리사. 마지막으로 스포이드를 이용해 도미의 눈알에 화룡점정으로 소스를 뿌리려다 재채기를 하고 만다. 그로 인해 스포이드는도미의 눈알에 쳐박히고 그렇게 요리사는 또 한 번의 좌절을 맛본다.
결국 완벽한 도미 요리를 마무리 하기 위해 텅 빈 도미의 눈 부분에 자신의 안구를 빼다 박으려는 요리사. 인간의 안구가 도미의 눈두덩이 안에 들어갈 리가 없다. 몇 차례의씨름 끝에 안구를 떨어 뜨려 버리고, 그것을 잡으려다 도미 요리에 손을 짚어 버리고 만다. 그리고 또 다시 반복되는 요리의 전 과정. 몇번이나 시도를 했는지는 단지 추측만이 가능할 뿐이다.
어느덧, 완벽한 도미 요리를 완성한 요리사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돼 있다. 식당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웨이트리스를 지나, 홀의 한 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테이블로 접시를 가져간 요리사 앞에 완벽한 도미 요리를주문했던 그 손님이 포크와 나이프를 쥔 채 죽어 있다. 손님의 포크를 이용해 도미 요리를 맛보려는 요리사.
홀 내부를 비추며 쉴 새 없이 깜빡 거리던 전등은, 요리사가 도미를 채 맛보기도 전에 숨을 거두자 마지막 발악으로 환하게 타오른다.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경쾌한 음악을 끝으로 엔딩 크레딧이 올라 온다.
그리고 끝내 맛보지 못한 완벽한 도미 요리 한 점.
완벽은 단 번에 실현되지 않는다. 게다가 세분화된 과정을 수차례 시도하다 보면 완벽에 가까워 질 뿐 실제로 완벽에 이르는 길은 멀고 험난하다. 또한 완벽을 추구하다 보면, 어느 새 모든 것이 달라져 있다. 완벽으로 가는 황량한 도로위를 걷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면 박수를 쳐줄 사람도 격려를 해 줄 사람도 없고, 뒤를 돌아보면 끝이 안보이는 -이미 너무도 많이 걸어와 돌아가는 것이 더 힘들게 돼 버린- 길만이 남아 있다.
그렇다. 완벽한 것은 실재하지 않을 뿐더러 추상을 쫓는 것은 기막히게 고독한 것이다. 또한 집착한다고 원래 존재하지 않던 것이 형체를 갖출리 없는 것. 그러나 <완벽>이라는단어는 마치 주문처럼 우리의 가슴 밑바닥에 깔려있는 욕심과 집착을 일깨운다.
나홍진은, 잔인하게도 이 모든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의 요리사에게 헛된 희망을 품도록 주문서 한 장을 건넨다. 요리사라면 마다하지 않을 <완벽한 요리>라는 미션. 그리고 예상대로 이 미션은 요리사의 무료한 일상에 광기에 가까운 활력을 불어 넣어 준다.
요리사는 완벽을 실현하기 위해 자, 실린더, 핀셋, 돋보기, 비커, 스포이드, 초시계, 온도계 등 강박에 가까운 도구들을 사용한다. 이는 완벽주의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심리 양상이다. 머릿속에 이미 그려진 심상을 그대로 실상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강박적 사고나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특히 순서나 정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징이 있다.
이 영화에서도 가지런히 정렬된 실린더와 비커, 엄격한 조리 순서, 정확히 떨어지는 각의 야채들 등 강박 행동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요리사의 고독한 완벽 추구의 결과로 접시에는 도미, 야채, 소스, 그리고 고매한 직업 정신과 더불어 수 많은 고민이 담겨 있다.
몇 번이나 망치고 내 온 접시 안의 음식, 그것이 진짜로 완벽한지 확인할 길 없이 유명을 달리한 요리사와, 손님 그리고 웨이트리스. 세 구의 시체를 비추는 깜박거리는 조명, 그리고 카메라는 그들의 미완성을 훑어 내린다.
완벽해 지고 싶은 당신, 당신의 도미 요리는 무엇입니까?
완벽을 추구하기 전, 저 문 뒤의 일상으로 요리사의 시간을 되돌리고싶다. 완벽과 거리가 먼, 그렇다고 실패작은 아닌 평범한 사람들 간의 동질감. 그리고 끝내 먹지 못한 도미 요리 한 점에 대한 갈망과 완벽에 대한 의심을 끌어 안은 채 죽어 버린 요리사에 대한 연민과 동정심.
이 모든 것이 범인은 꿈도 꾸지 못할 완벽이라는 지점에 대한 강렬한 거부감과 반항심을 자아낸다. 이쯤에서 나의 도미 요리는 무엇인가 생각해보지 아니 할 수가 없다.
손등을 데이고 검지손가락이 잘리고 눈알이 빠져나가 구르는 동안에도 놓지 못하는,열심과 열정으로 잘 포장된 집착과 욕심을 불러 일으키는 그 무엇. 나에게 있어 완벽이란무엇인가? 모든 것을 잃고도 확인하고 싶고, 결국은 증명해 보이고 싶은 그 신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