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의 고독과 우울
Yves Saint Laurant의 삶
패션 거장 디오르의 타계로 그의 빈자리를 메꾸어야 하는 젊은 청년 이브생로랑. 디오르 없는 첫 패션쇼를 성황리에 마치고 지인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피에르를 만나게 된다. 급속도로 가까워진 그들은 업무에서 벗어나 사적으로도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며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쨍한 햇볕을 즐기고 있는 이브의 곁으로 다가온 피에르. 둘은 너무나도 행복하다.
그러나 입영통지서를 받은 이브는 신경이 예민해지고, 일을 하지 않으면 머릿속은 온통 울음과 침묵의 소리로 휩싸여 버린다. 결국 입대 후 조울증으로 정신병원에 격리되고 마는 이브생로랑. 그의 고향 오랑에서는 게이는 범죄자 취급을 받는데다가, 그가 유년 시절을 보낸 신학교 생루이에선 실제로 호모라고 왕따를 당한다. 그 과정에서 조울증이 형성되었으며, 학교를 졸업한 뒤 나아졌다가 군입대라는 특수한 상황때문에 또 다시 우울증상이 발현되었던 것이다. 그에게서 자유를 앗아가고, 그를 억압하고 통제하는 모든 것에 그의 마음은 굳게 저항한다.
면회를 간 피에르는 죽고 싶은건지 살고 싶은건지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진다. 심적으로 지친 그가 병원에 있는 사이, 설상가상으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는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디오르 측이 수석 디자이너였던 그를 부당해고한 후, 그의 자리에 다른 사람을 임명해 버린 것. 그리고 이브는 피에르가 던진 그 `본질적 문제`에 답한다.
살고 싶다고. 바로 피에르와 살고 싶다고 말이다.
그는 침울해진 인생에 반전을 꿰하기 위해 둘이서 오트쿠튀르 브랜드를 만들자고 한다. 브랜드를 만들면 사랑도 명예도 다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들뜬 이브생로랑.
피에르는 예민하고 유약한 이브 대신 비즈니스를 도맡는다. 이브생로랑의 절친한 친구이자 패션 모델인 빅투아르의 도움으로 투자를 부탁하러 가지만, 투자자들은 그의 정신병력에 문제를 삼는다. 투자유치사업은 족족 실패하고, 그 때문에 둘의 갈등은 심해진다.
그러나 그때 디오르 측의 부당해고에 관한 소송에서 이겼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잠시나마 둘의 갈등은 사그라들고 사업에 다시 활기를 띄게 된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둘의 브랜드를 론칭하고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팀이브생로랑은 새로운 사람들을 고용하고 홍보도 하며 제법 비즈니스의 틀을 갖춘다. 점점 사업이 번창하고 이브 마티유 생로랑은 생로랑으로 이름을 바꾼다. 이는 성정체성으로 인해 부정 당해온 삶을 살았던 그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그로 인해 성공까지 거둠으로써 스스로의 삶에 자신감과 애착이 생긴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패션쇼. 그는 백스테이지에서 초조하게 다른 이들의 반응을 살핀다. 우아하고 세련된 그의 오트쿠튀르에 장내는 박수갈채가 이어지고, 피에르의 권유로 쇼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그. 음악도 점점 고조되며 그의 탄탄대로를 예견하는 듯 하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사회는 천재의 등장을 반기지 않는다. 쇼를 마친 다음날 언론의 혹평이 이어지지만 피에르는 이브생로랑을 예술가로 추대하며 둘만의 밀어를 속삭인다. 패션계에서는 점점 그의 위상이 높아지고 예술성을 인정 받지만, 사업은 예술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돈을 벌려면 계속해서 주문을 받고 수량을 맞춰야하는데 보헤미안처럼 자유로운 이브생로랑은 장사라는 게 버거울 뿐이다.
어느날 이브는 부처불상을 사오다 기자들을 기다리게 한다. 기자들은 미래 계획에 대해 묻고 그는 젊은 시절을 제대로 즐기지 못해 아쉽다며 자신의 예술을 완성시키는 것은 뒤의 작업자들이라고 겸손을 보이지만, 피에르는 바보같은 소리 말라고 속삭인다. 기분이 나빠진 이브생로랑은 자리를 피해버리고 인터뷰 대상이 사라진 인터뷰장에서 피에르는 작업의 완성은 노동력이 맞긴하다며 인터뷰를 망친 대신 이브의 작업장을 보여주며 기자들의 기분을 달래준다. 이 때의 갈등으로 둘의 사이는 악화일로를 걷고 사사건건 충돌한다.
그와 반대로 사업은 더욱 번창하고 어느 날, 일본 투자자들 앞에서 여성복 라인을 선보이는 이브생로랑. 그리고 샘플 드레스를 입고 모델 일을 하는 빅투아르. 로랑은 빅투아르와 피에르간 부적절한 관계가 있었음을 알아채고 빅투아르에게 일부러 못되게 굴고 빅투아르는 자신에게 모욕을 준 로랑의 뺨을 때리고 쇼장을 나가버린다. 가장 친한 친구와는 사이가 끊어지고, 사랑하는 사람과는 사업으로 간신히 묶여있는 관계다.
이브생로랑은 안좋은 상황에서도 디자인을 계속한다. 그리고 우연히 새로운 색채에 눈을 뜨고 더욱 모던하고 화려한 디자인의 몬드리안 컬렉션 라인을 창조해 낸다. 그야말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온 몬드리안 컬렉션 덕분에 찰스오브더리츠사의 지분도 얻고 경제적으로 훨씬 안정된 삶을 살게 된다. 그러다 클럽에서 한 모델을 캐스팅하고, 베티라는 이름의 모델은 빅투아르를 대신하여 이브생로랑의 새로운 뮤즈가 된다.
몬드리안 라인이 성공한 후, 그는 '기성복은 패션을 일상과 이어주는 길'이라며 오트쿠튀르보다는 더 많은 제작을 할 수 있는 기성복 생산에 박차를 가한다. 점점 컬렉션 준비에 염증을 느끼는 이브생로랑. 그에겐 자유와 휴식이 필요하다.
우연히 파티에서 마쥰을 맛본 그는 최대치의 자유와 행복을 만끽한다. 점점 친구들과 방탕한 생활에 물들어가는 이브, 결국 술과 약에 취한 그의 주사를 기자들은 찍어나르기에 바쁘고 피에르는 그런 그가 못마땅하다. 결국 이브생로랑은 정신병원에 상담을 받기로 하고 피에르는 그의 친구 중 하나인 룰루에게 더이상 그에게 약을 주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재활이 계속되는 시기에, 이브생로랑은 칼라거펠트의 연인인 장 자크 빠세와 외도를 즐기게 된다. 정도만 걷길 원하는 피에르와는 대조적으로 자유롭고 방탕한 자끄는 이브가 누릴 수 있는 비행 중 하나였다.
점점 천재성을 잃어가는 그를 보고, 피에르는 '마라케시(입생로랑의 별장을 부르는 애칭)는 점점 빛을 잃어갔다'고 표현한다.
마라케시는 점점 빛을 잃어갔다.
그렇다. 방탕은 천재의 빛을 앗아갔다. 안타까움은 천재곁을 지키는 범인의 몫이다.
어느날 피에르는 도대체 왜 이러는 거냐고 이러고 살면 좋냐고 묻는다. 입생로랑은 자끄를 가리켜 '세련되고 아름답고 우아한 사람'이라고 칭하며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래도 내 인생의 남자는 피에르 너라고 덧붙이며.
피에르는 더이상 망가지는 천재를 두고볼 수만은 없어서 자끄를 따로 만나고, 더이상 로랑과 만나지 말라고 한다. 이후에도 자끄는 둘이 따로 만난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하니, 이브생로랑에 대한 그의 마음은 진심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피에르는 서서히 질 나쁜 친구들로부터 이브생로랑을 떼어 놓는다. 그런 피에르의 마음도 몰라주고, 자신의 자유를 속박하는 그가 미운 이브는 점점 그로부터 멀어진다. 그리고 어느 날, 약과 술에 취해 쓰러지고 마는 이브. 병실에서 그는 초췌한 모습으로 누워있다. 피에르는 그를 봄과 가을에만 행복했던 남자라고 회상한다.
그리고 또 다시 그 시즌이 돌아왔다. 무대뒤에서 착장 순서를 꼼꼼히 챙기는 피에르, 그리고 그 옛날 첫 패션쇼 때 처럼 불안 초조하게 쇼를 바라보는 이브생로랑. 쇼가 진행되고 반응이 좋자, 감격에 겨운 로랑은 어깨에 올려진 피에르의 손에 키스를 하고, 무대로 올라가 인사하라는 그의 말에 무대로 올라가 환호를 받는다. 모든게 처음과 같았다. 그들은 더욱 성장했고 많은 일들을 겪었지만 여전히 순수한 열망을 지닌 채 서로와 함께다.
그리고 페이드 아웃.
화면이 바뀌고 나이든 얼굴의 피에르는 항상 로랑이 스케치를 그리던 책상 곁으로 가지만 그는 더이상 그 자리에 없다. 다만 그의 작품들은 전세계 박물관에 소장되어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천재로서 추앙받고 있다.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한 오페라 La Wally가 갖는 의미
오페라 라 왈리는 왈리와 하겐바흐의 엇갈리고 뒤틀린 사랑이야기다. 첫눈에 반했지만 주변상황때문에 이루어지지 못한 그들은 꼬여버린 상황에 서로에게 복수를 하려고 작당을 꾸미지만, 결국 모든 것을 용서하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그러나 그때 눈보라가 하겐바흐를 앗아가고 극심한 절망감에 휩싸인 왈리 또한 계곡으로 몸을 던진다.
왈리와 하겐바흐만큼이나 엇갈리고 꼬여버린 연인들인 이브과 피에르.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한 이 곡은 서로의 사랑에 대한 믿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모든 것을 용서하고 초심으로 다시 돌아가 새로이 시작함을 나타내는 것만 같다. 불안하고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무대를 지켜보는 이브와 그의 등을 떠밀어 사람들의 환호 그 한 가운데로 밀어주는 피에르. 이브의 말마따나 피에르는 그의 인생남이다.
오페라와 다른 점이 있다면, 피에르는 눈보라에 휩쓸릴 만큼 약하지 않았고, 계곡으로 몸을 던지려는 이브 구해내 무대 위로 올려 주었다는 점.
그 중에서도 쇼에 삽입된 곡(Ebben? Ne andro lontana)은 아버지가 하겐바흐와의 사랑을 반대하자 집을 떠나며 부르는 노래로, 애절함과 그에 상반되는 우아함, 그리고 이브의 심정처럼 극적이고 과장된 감정이 눈보라 처럼 휘몰아 치는 곡이다.
천재와 멜랑콜리
천재성은 왜 항상 유약하고 불안하며 정신적 결함을 동반할까. 보통사람들과 감정의 폭이 현저하게 달라서일까? 예민한 시각과 감각은 결과적으로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들의 작품에 영향을 미치고, 그들의 마스터피스들은 인류 역사에 위대한 유산으로 길이 남는다. 게다가 범인들에게는 크나큰 상실감을 안기기도 한다. 천재의 재능은 노력으로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이브는 항상 고뇌한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돈이나 남의 시선 등 속물 적인 요소를 신경쓸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았던 그는,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만 하고 살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더욱 혼란스러워 한다. 그러나 모든 걸 버리고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기에는 성공이라는 달콤한 보상에 너무도 중독되어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하야 끊임없이 그 천재성을 증명하기 위해 컬렉션을 내놓고 또 내놓아야 했고 자신을 향한 무언의 압박에 짓눌려 방탕을 택하고 만 이브생로랑. 평생을 우울증과 알콜 중독으로 검은 삶을 살았던 그가 패션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천재라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고흐, 이상, 쇼팽 등 모두가 사랑해 마지않는 예술가들은 대부분 정신적 문제를 안고 살았다. 이브가 영화에서 말한 것 처럼, 창조하지 않는 시간에는 머릿 속이 울음과 우울의 소리로 가득 찼던 것일까.
서양에서는 일찍이 멜랑콜리와 천재성의 상관관계에 주목했다. 실제로 모차르트, 베토벤, 고갱, 고흐, 헤밍웨이 등 셀 수 없이 많은 예술가들이 우울증으로 고생하였으며, 창조와 창의력, 그리고 상상력의 시작은 우울감이기 때문에 우울은 예술가의 필수 조건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경조증의 단계에서 인간은 사고와 감정의 폭이 넓어져 행복감, 활력, 자긍심 등이 고조되어 뇌의 반응 속도가 빨라지므로, 상상력, 창의력이 극대화 된다고 한다. 반대로 우울증의 단계에서는 침울한 사색과 비극, 고뇌로 인해 우울한 마음을 달래려고 자기치유의 형태로 예술적 영감이 활성화 된다고 하니, 조울증이나 양극성 장애를 가진 예술가가 많다는 말이 영 거짓은 아닌 셈이다.
또한 우울증 병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는 능력이 탁월하며, 예민한 감각으로 변화를 빨리 알아 챈다고 한다. 이브생로랑 또한 시대를 앞서가는 감각으로는 단연 최고의 디자이너였다. 천재의 우울과 광기는 인류에게는 또다른 축복이기도 하다. 그들의 내면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겠지만, 그것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이토록 아름다운 작품이 탄생하는 고로, 천재의 삶은 화려하지만 확실히 애달픈 면이 있다.
프로이트가 대답하는 피에르의 본질적 질문
이 영화의 초반, 군에 입대한 이브생로랑이 조울증으로 병원에 격리되자, 피에르는 면회를 간다. 그리고 죽고싶은지 살고 싶은지 '본질적 질문'을 던지고, 한참을 고민한 끝애 이브생로랑은 살기로 결심한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이브생로랑이 탄생하는 순간이나 마찬가지다.
이 본질적 질문은 프로이트(S. Freud)의 생의 본능 & 사의 본능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 생의 본능(Life Instinct, Libido): 정신분석 이론에서의 심리적 또는 정신적인 에너지, 즉 욕망이나 동기를 만족시키고 쾌락을 추구하는 생득적 경향과 욕구를 말함.
리비도는 보통 살고자 하는 욕구의 연장선 상에서 생존과 번식의 욕구와도 연관되며 성적 관심과 성적 발달을 촉진하는 원동력이 됨
- 사의 본능(Death Instinct, Thantos): 인간은 원래의 상태를 파괴하거나 전복시키려는 생득적 경향이 있으며, 자기 자신을 파괴하려는 본능 (자기파괴충동) 이 있음 * 네이버 발췌
이브생로랑의 방황도 자기파괴충동과 동일 선상에 있다. 그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고뇌했으며, 자유에의 갈망이 사의 본능을 일깨워 평생을 술과 약, 그리고 우울증에 잠식된 검은 삶을 살았다. 피에르가 정신 병동으로 와 본질적 질문을 던졌을 때, 생의 본능에 의해 일과 사랑을 택했으나, 결국은 오트쿠튀르 컬렉션 때문에 사랑하는 디자인이 자신을 억압해오자, 절대적 자유, 즉 죽음에의 충동으로 자기파괴적 방탕을 해 온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