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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통찰하는 보통여자 Apr 05. 2024

증명해야 하는 순간은 온다

증명해야 하는 순간은 온다.


브런치에 합격했다. 기록의 창구를 늘려 나쁠 건 없으리란 생각에 홧김에(?) 신청해 봤다. 글을 공통분모로 가진 공간에서 스며 나오는 기운이 궁금하기도 했다. 취준생 시절로 돌아가 자소서를 쓰는 듯했다. 작가님이 궁금하다며 자기소개를 요청하는 질문, 앞으로 어떤 글을 발행해나갈지에 대한 물음에 잠시 벙찐다. 느릿하게 움직이는 손가락으로 경직된 글을 써본다. 나를 스스로 묘사해야 하는 압박감이 달갑지는 않았다. 블로그나 인스타에서 늘 거침없이 내뱉어만 왔으니, 공식적인 평가의 순간은 어쩐지 나를 경직하게 했다. 합격 유무의 열쇠를 거머쥔 브런치가 갑이었다. 로봇이 아닌 담당자의 개인적 호불호가 무의식적으로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질문의 의도를 파악해 보려 했지만, 어떤 성향을 가진지 알 수 없을 브런치 담당자에게 보장되지 않은 방법으로 호소해야 했다.


아싸리 각인이나 확실히 되보자는 무리수를 둘까 했다. 과거에 우연히 브런치에서 허접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이리 보고 저리 보고 어느 쪽으로 봐도 완성도가 현저히 떨어진 글이었다. 진심의 흔적이 조금도 묻어 나오지 않는 대충 휘갈겨 쓴 글이었다. '이렇게 대충 막 쓴 글도 올라오네.' 라며 저격한 누군가의 댓글은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그 기억을 덧붙일까 했다. 담당자에게 건네는 인사말을 시작으로, 사실 완성도가 한참 떨어진 허접한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내가 그것보단 공들여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이다. '저것보단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는 도전 해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라며 비장함을 내비췄다. 괄호를 치고 저의 이 언급이 탈락 여부에 영향을 끼치지 않길 바란다며, 호불호가 갈릴 호기로움마저 덧붙였다. 막무가내인 건지 당찬 건지 알 수 없을 이 내용을 뺄 수밖에 없었던 건 300자 글자 수 제한이 있음을 알고서였다. 디스 하는듯한 의견표출만 하다가 내 소개를 마무리할 순 없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귀여운 패기를 뒤로한 채, 본격적인 내 소개를 나름 공손하면서도 너무 겸손하지는 않게 써 내려갔다.


회사 서류 발표를 기다리던 과거 풋내기 시절의 감정을 느꼈다. 별 관심도 없던 브런치를 홧김에 신청한 것치고는 마음을 은근하게 졸이며 이른 시간에 와있지 않은 메일을 확인해 본다. 과거에 봤던 누군가의 정성 없는 글 때문이라도, 탈락하면 솔직히 납득이 안될 것 같았다. 글을 향한 내 정성스러운 진심은 충분히 담았다는 확신에서 오는 마음이었다. 


언젠가는 증명해야 하는 순간을 마주한다. 평가 받는 것에서 괜스레 처음부터 지고 들어가는 것 같아 갑갑하지만서도 나쁘지 않은 긴장감이 있다. 평가받는다는 생각이 아닌, 나를 증명한다고 생각하면 좀 나아진다. 솔직한 마음 같아서는 스스로를 증명해야 할 필요성에도 거부감이 온다. 나는 그저 겉으로 드러나 보여질뿐이지, 내가 누구에게 무엇을 왜 증명해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큰 개념으로 보는 나는 이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 한낱 먼지 같은 존재일 뿐이다. 좋든 싫든,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증명해야 할 순간들은 분명히 온다. 그렇다면 그 증명조차도 나다운 방식으로 해볼 순 없을까? 즐거운 고민거리가 하나 생긴 느낌이다.


p.s. 브런치에게도 내가 반항적인 글을 써 내려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의 글에도 마음껏 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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