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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통찰하는 보통여자 Aug 13. 2024

내 신분은 늘 변하기 마련이다.

요즘만큼 잉여롭게 사는 때가 없는 듯하다. 임산부라는 신분은 죄책감을 덜 느끼며 나태함을 마음껏 누리게 한다. 평소 같지 않은 저하된 체력은 툭하면 소파와 침대에 마음껏 널브러질 합리적 핑곗거리를 주고, 폭발하는 식욕으로 음식을 마음껏 쑤셔 넣어도 2명의 몫이니 합리화가 된다. 괜히 요리조차 버겁게 느껴지는 날에 부쩍 자주 시켜 먹는 배달 음식에서 나의 게으름을 적나라하게 마주한다. 독서도 권태기가 있는지 어쩐지 손에 영 잡히지 않아 책과 거리를 둔지도 꽤 되어간다. 요즘의 일상 패턴은 늘 추구해왔던 부산한 자기발전적 모습과는 사뭇 많이도 달라졌다. 



스스로 게을러졌다는 표현을 했지만서도 막 사는 건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나름 열심이다. 몸은 무거워지지만 첫째 하원 후 늘 밖에서 지칠 때까지 에너지를 빼주고 귀가하며 나름 내 방식대로의 엄마 역할에 힘쓴다. 아기가 어린이집에 가있는 자유 시간에는 일을 하는 시간인데, 온라인으로 부업을 하는 남편을 소소하게 도와가며 가계 수입에 유의미한 보탬을 주고 있기도 하다. 루틴 같은 이 일들에 쏟는 시간을 합산하면 그래도 하루의 반나절이 금세 꽉 채워지곤 한다. 허나 전에는 거뜬하기만 했던 이 정도 강도의 일들도 요즘은 내 체력의 마지노선이라 느껴지는 탓에 주어진 기본 임무를 마친 후에는 체력이 거덜 나 너덜해지곤 한다. 추가적으로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던 이전과는 달리 꼭 필요한 필수적 일들만 하며 스스로 몸을 사리는 느낌에 잉여롭다는 죄책감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임신 초기에는 지겹도록 심한 입덧, 시도 때도 없이 쏟아오는 졸음, 컨디션 저하로 하루하루를 늘 버리는 느낌이 들곤 했다. 체력적으로 가장 버거웠던 시기는 한고비 넘겨 지금은 그나마 일상의 임무들을 해나가고 있지만, 내 기준으로는 이 살랑거리는 얕은 생산성이 어째서인지 불안함을 동반한 불만족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홀몸이 아닌 상황은 일종의 면책을 주기도 하니 이 시기만큼은 마음을 편히 먹어도 되지 않을까? 수행 가능한 일들이 평소 내 기준에 한없이 부족해 보일지라도 말이다.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볼 때 무언가를 쉴 새 없이 바리바리 하고 있다는 것이 늘 발전적이지만은 않았음을 안다. 그보다 중요한 건 내 현재 상황을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해야만 하는 것, 할 수 있는 것들에 전념하는 것이 최선이다.   



나의 신분은 늘 유동적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직장인 신분일 때도, 자발적 백수일 때도, 임산부일 때도, 주부이자 엄마일 때도 있어왔다. 이 중에 어떤 신분 하나라도 내가 아닌 것이 있었을까. 모든 게 물 흐르듯 어딘가에 다다를 뿐 이럴 때도 저럴 때도 모두 유동적인 나의 신분이었다. 우선순위라는 것은 늘 개인이 마주한 상황을 따르며 그래야만 마땅하다. 현재는 임산부라는 신분으로 나 개인의 발전을 위한 '열심'의 강도는 당분간, 아마 최소 1~2년 동안은 하위에 머물지 모른다. 금세 다 까먹어버린 신생아 육아라는 숙제가 기다리고 있기에 말이다. 나 개인의 발전을 위한 우선순위는 잠시 어딘가 고이 넣어둘지라도, 반대로 엄마라는 신분으로 발산할 수 있는 '열심'은 그 어느 때보다 강도가 높을 것이다. 삶의 균형이 늘 짜 맞추듯 떨어지기 힘들다.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기가 있는 반면, 아이가 내 손길과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엄마로서의 수요가 막대한 시기가 있다. 그러니 육아를 하거나 아이를 품는 기간에 나 스스로가 나태해졌다는 감정은 틀릴 수 있다. 소홀해도 되는 신분과 역할은 없기 때문이다. 내 에너지와 시간이 어딘가에 대량 투입되고 있다면 그만큼 내 막중한 임무가 요구된다는 의미이다. 가장 우선순위 되어야 할 영역이 있다는 뜻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 영역은 분명 삶에서 놓쳐선 안되는 소중한 시기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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