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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알 Apr 18. 2023

[퇴사야사 07]퇴사? 내가 조언해줄게

인턴이야기

퇴사의 과정은 이랬다

어느덧 계약만료일이 다가왔다.

길지도 했고 짧기도 했던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처음 입사했을 땐 낯설기도 했고 당황스러운 일도 있었지만 그것도 점점 익숙해졌다.

당황스러웠던 불합리함도 나중엔 익숙해졌다.

학교와 군대에서 겪어와 이미 익숙한 문화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만료일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계약에 관한 이야기가 없었다.

계속 다닐 의사가 있는지도 묻지 않았고 그렇다고 나가라는 말도 안했다.

정규직이라 모집해놓고 계약직 계약서를 들이밀었던 사실을 잊은 것 같았다.

3일전까지도 앞으로의 업무를 지시하는 것을 보고 확신했다.

혹시 ‘내 주제에 어디 다른 회사를 갈 수 있겠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괜한 억측이 들만큼 감정이 좋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나는 이미 결론이 나 있었다.

퇴사에 대한 생각은 확고했고, 여지는 없었다.

오히려 지금 나가지 않으면 관성에 눌려 주저 앉을 것 같았다.

“저… 오늘이 내일이 계약만료입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실장은 당황을 했다.

“니가..? 벌써 그래됐나? 퇴사를 한다고..?”

“계약기간이 다 되었다고 이래 싹 관둔다고?”

입사 6개월차의 신입이어도 실무(허드렛일)을 할 직원이 당장 그만두는 게 당황스러운 듯 했다.

일단은 나를 붙았았고, 나는 거절했다.

같은 상황이 몇 차례 반복되자 소득이 없다고 판단한 실장은 태세를 전환했다.

“니.. 내 충고 하나는 해줄게. 느 회사에 와서 잠자러 가는기, 그거는 아닌기라. 딴데 가더라도 그는 하지 말그라. 내가 진즉에 말할라다 말았던기다”


뜬금없었다

새벽 6시부터 집을 나서 외근을 다니느라 운전을 오래했고 부족한 잠을 점심시간에 참았다.

끼니를 거르고 알람까지 맞춰가며 시간을 지켜 나왔으니 업무시간에 잠을 잔 적은 없었다.

자유시간인 점심시간에 잠을 잔 것을 실장은 못마땅해 했던 것이다.

회사에서 게임까지 하던 실장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었을까?

하지만 퇴사하는 마당에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겠나.

그냥 알겠다, 감사하다 하며 면담을 마쳤다.

충고라는 이름의 비난, 다행히 나는 상처입지 않았다.

절대 다시는 볼 것 같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의 말 따위가 내 삶을 망가뜨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 일도 내일이면  그저 추억이 되겠지.

그보다도 퇴사 이후의 내 삶이 더 걱정되었다.

그렇게 나의 첫번째 퇴사가 마무리 되었다.



다시 백수가 되었다


집으로 돌아왔다.

미래가 두려웠던 입사 전의 모습으로.

하지만 예전과는 같을 수 없었다.

일단 예전과 달리 퇴직금이 없었고

도전에 대한 좌절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이번엔 마냥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조급했다.

닥치는대로 이력서를 넣었다.

직무, 고용형태, 지역…아무것도 상관 없었다.

대신 하나만 따지기로 했다.

‘최소 중견기업 이상’이었다.

작은 기업에 들어가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행복할 거라는 생각은 이제 깨졌다.

이름이라도 있는 곳에 들어가 고생을 하더라도 할만 할 것 같았다.

직무도 상관없었다.

일단은 어디든 들어가고 싶었다.

이쯤되니 토익공부를 하지 않았던 것이 후회가 되었다.

동기들은 이미 대부분 이름있는 기업에 자리잡았다.

내 마음이 조급해질 수 밖에 없었다.

묻지마 지원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기업마다 자소서 항목이 달랐다.

어떤 곳은 지원동기를 원했고, 어떤 곳은 입사 후 포부를 원했다.

해당 직무를 할 수 있는 장점을 구술하라는 경우도 있었고,

뚱딴지 같은 퀴즈를 내는 경우도 있었다.

초등학교 때 일기를 안써서 부모님을 학교에 소환했던 나에게는 극심한 고통이었다.

왜 취업을 하는데 탈고(어쩌면 탈모)의 고통이 필요한걸까.

그럼에도 쓰고 또 썼다.

닥치는 대로 쓰는 지원서에 메일함에는 불합격통보가 쌓여갔고 그 와중에 기회는 생겼다.

빠진 머리카락만큼 소중한 면접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운이 좋게 대기업의 면접을 보았다

나는 자신있게 면접에 임했다.

떨림없이 어떤 질문에도 기죽지 않고 당차게 대답했다.

오만하게도 99% 합격을 자신했다.

집에서 회사까지의 교통편을 미리 알아보고 준비했다.

김칫국을 진작부터 크게 마셨다.

결과는 불합격.

나는 인정할 수 없었다.

치기어린 나는 용기가 앞섰다.

인사팀장에게 나의 불합격 사유를 알려달라고 연락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인사팀장은 상당히 좋은 표현으로 애둘러 말해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 지원자가 좌절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느껴졌다.

덕분에 상처없이 겨로가를 인정하게 되었다.

그 경험으로 나 역시 불합격자의 연락을 받으면 최대한 좋은 말을 해준다.


운이 덜 좋게 작은기업의 면접도 보았다

‘최소중견기업’이상이라는 결심을 한번씩은 내려놓았다.

평강공주도 바보온달을 장군으로 만들었으니, 나도 내 능력으로 큰 기업으로 만들 수 있을거야…라는 합리화를 했다.

면접은 회사가 아닌 카페에서 진행이 되었다.

온화해보이지만 눈빛은 강렬한 40대 대표와 단독 면접을 진행했다.

딱딱한 집단면접만 경험해봤던지라 카페면접은 상당해 편안했다.

따뜻한 눈빛으로 대화가 오갔고 물 흐르듯 진행이 되었다.

나에게 새로운 거래처를 개척할 의지도 있는지를 물었고, 당당하게 무엇이든 잘 할 자신이 있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몇 번의 질문이 다녀간 후에 뜬근없이 말했다.

“그런데, 좀 유약해보이시는군요”

순간 당황했다.

‘유약’이라는 단어의 뜻과 화자의 의도를 파악하고자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애석하게도 적절한 대답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아…네…그런가요…하하..”

민망하게 웃으며 면접은 끝났다.

군 시절 나이많은 부사관들과 싸우면서 일를 해내던 나의 모습을 어필하였으면 어땠을까…라는 후회를 해보았으나 이미 늦었다.

그렇게 유약한 사람이 되어버린나는 다음날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도서관에서 얻은 힌트

그럼에도 좌절할 시간은 없었다.

시간을 흘러갔고, 인생은 계속되었다.

취업과정에서 어떤 상처를 입었다하더라도 합격이 모든 것을 치유해준다고 믿었다.

누군가 취업은 199패를 하더라도 1승만 하면 이기는 게임이라고 말했다.

‘게임’이라…확실한 건 즐거운 ‘게임’은 아니었다.

먼접을 보러 오라는 곳이 없을 때면 도서관에 갔다.

그곳에는 인생 선배들의 실패를 넘고 성공한 이야기들이 책장 가득했다.

나도 미래의 성공을 위한 실패를 겪고 있는 중이라 믿었다.

내가 원하는 일을 찾던 중 ‘커리어컨설턴트’라는 직업을 알게되었다.

관심이 갔다. 나의 적성과 잘 맞을 것 같았다.

집에서 저녁을 먹고 취업사이트를 찾아보던 중 ‘커리어컨설턴트’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혹시 이건 내 운명일까?

감이 좋았다.

자소서도 막힘없이 술술 풀렸다.

그렇게 지원을 하였고 면접을 보았다.

그리고 그 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정규직 계약서를 작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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