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알 Mar 27. 2023

[퇴사야사]Prologue

미세먼지 가득한 월요일

중국발로 추정되는 미세먼지가 가득하다

하늘을 뒤덮은 먼지는 지구종말 영화에서 본 하늘과 같았다.

와이프와 주말 내내 붙어서 지냈던 행복한 시간을 뒤로하고서 새벽 일찍부터 분주하다.

서울까지 멀리 출근하기 위해서 경기도인은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바지런 떨어야 한다.

침대에서 이십분씩은 더 밍기적거리고 나서야 출근 준비를 했다.

월요일의 아침, 아니 새벽은 그래서 더욱 바쁘다.

평온했던 주말에서 전쟁같은 평일로, 시간만큼 마음마저도 여유가 없다.



체감온도는 영하

가뜩이나 움츠러져있는 몸이 날씨 때문에 더 굳어진다.

추운 날씨에 출근하는 마음마저 얼어붙곤한다.

지하철역까지는 자전거를 타고 간다.

오늘은 손이 시려우니 버스를 타고 가야지.

빠르게 지나치려던 버스를 손을 흔들어 간신히 잡아 탄다.

주택단지의 좁은 길에서도 과감한 드라이빙, 난폭운전이다.

버스기사님도 월요일이 힘드신가보다.

흔들리는 버스에서 멀미를 하며 뿌연 월요일이 시작된다.

아침 7시, 드디어 지하철을 탔다.

추운 날씨와 반대로 지하철은 매우 덥다.

두꺼운 패딩들을 입어서 붐비는 지하철의 공간은 더욱 좁다.

팔꿈치로 치고, 뒤에서 밀고... 기침과 호흡을 공유하며 좁은 열차칸에 빽빽하게 들어서있다.

어떤 표정들을하고 있을까?

얼굴과 눈빛들에는 생기가 없다.

최소한 내가 탄 칸에는 생글생글하게 웃고 있는 사람은 단언코 1명도 없다.

깔끔한 정장의 젊은 청년도, 이쁘게 화장을 한 아가씨도

표정은 다들 하나같이 회백색이다.

개발이 완료된 도시의 콘크리트 색이다.

불현듯 웃음소리가 난다.

문이 열리고 중학생 한 무리가 탔다.

현장학습을 가는 듯 형형색색의 옷들을 꾸며입고 있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웃고 장난치고 있다.

회백색 어른들 속에 청녹색 아이들이 뿌려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이들이 내리자 지하철은 다시 회백색으로 변했다.



환승역에 도착했다

서울의 정 가운데인 을지로 3가역은 각 지역에서 온 환승객들로 가득하다.

문이 열리는 순간 생기없던 눈빛들은 경주마처럼 변했다.

경쟁하듯히 서로 밀치며 열차를 빠른 걸음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지각을 하지 않기 위해,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경쟁이다.

뛰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고 여유있게 걷는 사람도 없었다.

걷고 있지만 숨이 찬 빠른 걸음.

환승열차를 타기 위해 달려 걷는다.

종착역에 내리면 다들 미세먼지을 뚫고 각자의 일터로 나아가겠지.

그들의 청녹색 웃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8시 20분 회사 도착

취업규칙에 써 있는 출근시간인 8시 30분보다도 1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새벽 6시부터 일어나 분주하게 달려온 성과이다.

사무실에는 나보다 더 먼저 출근한 직원들로 북적인다.

고작 10분전에 도착한 나를 훑는 시선이 부담스럽다.

그 시선속에 '인사팀장이 이제 출근해?' 라는 메세지가 들리는 것은 나의 피해의식이 떠드는 허상이길 바래본다.

20분전에 출근했어도 "신입이 빠졌네 아주."라는 소리를 들었던 트라우마가 떠오른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밝았네~너도나도 일어나~새마을을 가꾸세'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라 들어본 적도 없는 소리가 환청속에 들린다.

노래 가사는 새벽일찍 일어나 열심히 일해서 부자나라를 만들자고 한다.

벌써 40년도 전의 일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명실공히 국민 소득 3만달러의 세계 10위권 부자나라가 되었다.

목표였던 1만달러는 이미 초과달성했다.

그래도 일찍 일어나서 열심히 일을 해야만 한다.

부자나라에 만족하지 않고, 이제는 부자 중에 부자나라가 되어야할까?

3만달러가 넘은 지금의 목표는 어디에 닿아있을까?

그냥 행복하게 살 수는 없을까?



내 목표는 행복이다

10년전에는 행복이 뭔지 몰랐다.

그저 남들하는 대로 살면 잘 살고 있는 거고, 거기서 좀 벗어나면 불행할까 떨었다.

4년제 대학가고, 대기업취업하고, 결혼하고, 집사고, 아기낳고 그 담엔 한 직장 꾸준하게 다니는, 교과서에 쓰여있는 대로 살면 행복하다고 들었었다.

대학간판 자랑하고, 대기업명함자랑하고, 결혼할 때 집안자랑, 집 평수, 아이 낳고나선 아이 성적자랑은 전리품으로 돌아오는거랬다.

행복하게 사는게 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아무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몰랐던 것 같다.

지금의 고난을 발판삼아 10년 뒤에 행복하고 싶은게 아니다.

지금도 행복하고 싶고, 10년뒤에도 행복하고 싶다.

그런데 행복하지 않다.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딱 12시간이 그렇다.

사랑하는 와이프를 얻었고, 금쪽같은 자식을 얻었고, 안락한 집도 있고, 차도 있는데도 행복하지 않다.

오늘은 어떤 말을 들을지, 어떤 일에 쫓길지, 어떤 험담을 들을지 두렵다.

그렇게 고난의 시간을 견디고 나면 퇴근길부터 행복해진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행복하다.

와이프와 음식을 나눠먹으며, 장을보며, 옷을 사며, 아이와 함께 뛰놀며, 산과 들을 다니며, 드라이브를 하며 즐겁다.

취미활동을 하면서, 여행을 하면서 행복하다.

평일은 고난, 주말은 행복이 되었다.


퇴근길,  미세먼지가 걷히고 맑아졌다.

그저 행복하려 한다.

남들이 가는 길을 그저 따라갈 필요는 없다.

그들조차도 왜 그곳을 가는지, 어디로 가는지 모를 것이다.

나는 나의 길을 가겠다.

그 길이 어디에 닿아있는지는 모른다.

그래도 어디를 향해 가는지는 알것 같다.

남들이 다 가지 않아도 그저 가만히 다져가며 걸어가려 한다.


사직서.

퇴사하려 한다.

                    

작가의 이전글 [퇴사야사] Intro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