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이야기
어느 날 전화가 왔다.
딱 들어도 면접관처럼 느껴지는 목소리의 남성이 면접 안내를 했다.
전화를 끊고 찾아보니 차로는 집에서 20분 거리로 가까웠다.
어색한 넥타이까지 메고 떨리는 마음으로 면접을 보러 갔다.
지은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듯한 신축 오피스텔에 입주한 작은 기업이었다.
어울리지 않게 가구는 올드했고 풍기는 냄새도 올드했다.
면접관은 두 명, 총괄실장과 팀장이었다.
그들은 번갈아가면서 나에게 질문을 했다.
눈빛은 날카로웠으나 질문은 평이했고 젠틀했다.
나 역시 질문에 최대한 예의있고 성실하게 대답했다.
면접은 30분이 좀 지나서 종료되었다.
나름대로 괜찮게 보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모든 질문에 막힘이 없었고 무엇보다 자신있는 태도를 보여줬다고 자부했다.
유독 기억에 남는 질문은 있었다.
"신입으로 우리 회사에 들어오는 거에요. 장교출신인데 괜찮겠어요?"
순간 질문의 의도파악이 되지 않았다.
장교출신이라고 신입으로 일하는게 어려운 부분이 뭘까?
군대와 관계없이 사회에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신입인데 출신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너무나 당연한 질문에 너무나 당연하게 대답을 하며 넘겼다.
며칠 뒤 전화로 합격 통보를 받았다.
처음으로 맛보는 합격이었다.
그럴 듯한 합격문구가 적혀있는 메일을 받지는 못했지만 아무렴 괜찮았다.
길고 긴 좌절의 수렁 속에서 나를 건져준 것이면 충분했다.
첫 출근날은 여유롭게 출발했다.
얼마나 여유가 있었는지 무려 한시간을 먼저 도착했다.
혹시나 하고 사무실 앞에 가보았으나 문이 닫혀있었다.
근처의 카페에서 앉아 심호흡을 하며 시간을 죽였다.
십분을 남기고 문 앞으로 가보니 모든 직원들이 출근해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모든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조용했다. 그리고 부담스러웠다.
최대한 긴장을 하지 않은 척, 부드러운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처음 입사하게 된 일알입니다.. 헿”
잠깐의 적막이 흘렀다.
이윽고 문을 바라보고 있는 안쪽 자리에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어이, 신입! 목소리가 그거 밖에 안나와?! 다시해!”
남자들은 대부분 겪어본 상황이라 잘 알 것이다.
군대에 처음가면 누구나 들어본 말.
“안녕하십니까!!! 신!입!사!원! 일알! 입니다!”
"그래, 이제 좀 맘에 드네. 그리고 앞으로는 더 일찍와라.
선배들이 다 출근해있는데, 신입사원이 일찍와서 자리도 좀 치우고해야지!"
면접때 보았던 젠틀한 팀장은 빨간모자를 쓴 조교가 되어있었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처음보는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기전부터 나는 자세가 불량한 신입사원이 된 것 같았다.
벌써 집에 가고 싶었다.
이후 시간들은 어떻게 지나갔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있었던 것만 빼고 말이다.
다들 바빴는지 아무도 나에게 일도 관심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화장실을 가려 자리에만 일어나도 눈빛들이 나에게 꽂혔다.
관심이 아주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
처음 군대에 갔을 때, 들었던 말이다.
모두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뭘 하던 비판적 시각으로 본다고 했다.
그러다가 새로운 물고기가 들어오면 나는 어항을 물려주게 된다.
그러면 나도 그 어항 속의 물고기를 바라볼 자격이 생긴다.
씁쓸했다.
그렇게도 싫어했던 군대의 모습을 사회에 첫 발을 딛은 순간 다시 떠오르게 된 것이.
어항 속의 물고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일단 출근을 제일 먼저하고 들어오는 직원들마다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누가 봐도 하기 싫은 일들, 이를테면 탕비실을 정리하거나 쓰레기통을 비우거나 서류뭉치들을 복사 혹은 파쇄하는 일 등을 먼저 나서서 하면 되었다.
(자리도 탕비실과 복사기, 그리고 쓰레기를 버리러 가기에 적합한 입구자리였다.)
이미 여러 번 경험해본 바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컴퓨터 없이 사무실에 앉아있는 건 너무나도 큰, 예상치도 못했던 곤욕이었다.
내 책상에는 컴퓨터가 없었다.
그래서 가끔씩 일이 주어지면 외근나간 직원들 자리에 앉아서 했다.
그러다가 그 직원이 돌아오면 메뚜기처럼 다른 비어있는 자리로 갔다.
외근을 다녀온 직원들은 자신의 자리에 앉아있는 나를 보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왜 죄송한지 모르면서 죄송하다고 했다.
첫 3일간은 급하게 채용이 되어서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일주일이 지났을 땐, 집에 있는 컴퓨터를 가져갈까 고심했다.
(회사에 개인 컴퓨터를 가져가는 것은 신입사원의 자세가 아니라고 할까봐 참았다.)
딱 이주일이 지났던 날 비로소 컴퓨터를 받았다.
그리고 그렇게 오랫동안 컴퓨터를 받지 못한 이유도 알게 되었다.
내가 받은 컴퓨터는 바로 위 선배가 쓰던 컴퓨터였다.
선배는 팀장이 쓰던 컴퓨터를 받았다.
팀장은 실장이 쓰던 컴퓨터를 받았다.
그리고 실장은 그래픽카드까지 빵빵하게 달려있는 최신형 컴퓨터를 구입했다.
과정은 이랬다.
신입이 출근했고 컴퓨터를 한 대 더 사야했다.
새로운 컴퓨터를 사자니 아무래도 신입에게 주기는 아까웠다.
거슬러 올라가다보니 실장이 새 컴퓨터를 사기로 했고 좋은 사양의 컴퓨터들은 아래로아래로 물려주기로 했다.
그런데 컴퓨터를 고르는게 문제였다.
고작 사무용인데 고사양이 왜 필요했을까?
실장은 게임이 하고 싶었다.(개인 사무실에서)
그리고 고사양 컴퓨터 비교견적을 내야 하는 직원이 일이 바쁘다며 2주를 지연시켰다.
고작 이러한 이유로 나는 출근 2주만에 컴퓨터를 받은 것이다.
신입사원의 자세와 목소리에 대해서는 잘 알았지만, 신입사원에게 보여야할 회사의 자세에 대하서는 몰랐기에,
그리고 실장은 회사 대표의 아들로서 회사에서 게임을 할 자격이 충분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입사 3일 째 되던 날 즈음에 근로계약서를 받았다.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니 계약기간이 적혀있었다.
‘계약기간 6개월’ ‘인턴’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이상했다. 분명 공고에는 정규직이라고 적혀있어서 부모님께도 당당히 말했기에 정확히 기억했다.
이걸 물어봐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던 중에 다행히도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이그는 정규직이 맞는기라. 갸는 정부에서 중소기업애 지원금을 주는기로 행정처리하는 거니께 아무 걱정 안해도 된다잉”
그러니까 나는 분명 정규직은 맞는데 위장으로 6개월만 인턴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회사가 지원금을 받는 것이니 나한테도 좋은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나는 나도 모르는 중소기업인턴제의 수혜자가 되었다.
인턴기간동안의 연봉은 1,800만원, 그 기간이 끝나야 비로소 2,200만원이 된다고 했다.
찜찜했다.
연봉도 그렇고 계약도 그랬다.
정규직이 인턴으로 위장을 하고 있는건지, 아니면 인턴을 정규직으로 위장을 하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더 물어볼 수 없었다.
'신입사원의 자세'
이 말은 나에게 여러모로 위축되게 만들었다.
그저 스스로에게 위안을 했다.
나는 이 회사에 연봉이나 조건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자 들어온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나 자신에게도 위장을 하면서 참았다.